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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 레이어제로가 그리는 블록체인의 엔드게임

    2026년 2월 12일 · 1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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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y Takeaways

    • 레이어제로가 공개한 L1 블록체인 '제로(Zero)'는 시타델 증권, DTCC, ICE 등 월스트리트 핵심 인프라 기업들의 전략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는 아직 메인넷도 출시되지 않은 블록체인에 대한 것으로, 기존 블록체인들이 구조적으로 제공하지 못했던 기관급 금융 인프라의 요구사항을 제로가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한다.

    • 제로는 졸트(Jolt) zkVM 기반의 실시간 증명 생성, FAFO를 통한 자동 병렬 실행, QMDB의 초당 300만 건 상태 업데이트, 그리고 SVID 기반 데이터 가용성 등 풀스택 기술 혁신을 통해 200만 TPS와 라즈베리파이 수준의 탈중앙화 검증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제로는 기존 블록체인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대신 처음부터 전면 재설계하는 접근을 택했으며, 특히 수요를 먼저 확보한 뒤 기술을 구축했다는 점이 차별적이다. 시타델, DTCC, ICE 등의 파트너십은 메인넷 출시와 동시에 대규모 트래픽이 유입될 수 있는 경로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1. 레이어제로의 블록체인, 제로

    Source: LayerZero

    이번 주 크립토 산업에서 가장 큰 화두는 레이어제로(LayerZero)가 공개한 자체 레이어 1 블록체인 '제로(Zero)'였다. 상호운용성 프로토콜의 절대적 선두주자인 레이어제로가 자체 블록체인을 발표했다는 사실 자체도 이목을 끌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발표에 동행한 이름들이었다.

    미국 상장 리테일 주식거래량의 약 35%를 집행하는 세계 최대 시장조성자 시타델 증권(Citadel Securities)은 ZRO 토큰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으며, 미국 주식 거래의 결제 인프라를 담당하는 DTCC는 토큰화 증권 및 담보 관리에 제로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모회사 ICE(Intercontinental Exchange)는 24/7 토큰화 시장 인프라로의 적용을 탐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아크 인베스트의 캐시 우드(Cathie Wood)는 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월스트리트의 핵심 인프라 기업들이 아직 메인넷도 출시하지 않은 블록체인에 이 정도 수준의 관심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블록체인이 아니라 제로를 선택했을까?

    필자는 이것이 제로가 분명 기존 블록체인들이 구조적으로 제공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타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로의 구조 자체에 다루는 글은 레이어제로 측의 기술 블로그를 제외하면 찾기 힘든 상태이며, 리테일들 또한 한정적인 이해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들을 기반으로 제로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 어떤 설계적 맥락에서 특정 디자인을 채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지점들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거나 해결이 필요해 보이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다루어보겠다.

    2. 제로의 구조와 특징

    2.1 개괄적 구조

    제로 역시 하나의 블록체인이다. 따라서 트랜잭션의 실행과 상태전이, 블록의 생성, 상태값의 검증, 상태값의 저장이라는 블록체인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 제로의 구조상 가장 특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토미시티 존(Atomicity Zone)"이라는 분리된 실행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Source: LayerZero

    이더리움 생태계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비유하자면, 각각의 아토미시티 존은 일종의 내재화된 영지식 롤업에 가깝다(자의적 해석임에 유의해달라).

    각 아토미시티 존은 독립적으로 상태 전이를 처리한다. 쉽게 말하자면 각자가 EVM, SVM 등 임의의 실행환경을 통해 상태값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각 아토미시티 존에는 블록 생산자(Block Producer)라는 구성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는 기존 이더리움 롤업 아키텍처에서 시퀀서가 수행하던 역할과 유사하다. 블록 생산자는 사용자의 트랜잭션을 실행하여 상태전이를 발생시키고, 블록을 생성하며, 해당 실행의 정당성을 입증 가능한 영지식 증명을 생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지식 증명은 제로의 정산 레이어(Settlement Layer)를 담당하는 블록 검증자(Block Validator)들에 의해 검증된다. 각각의 존은 제로에 의해 병렬로 운영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혹자는 제로를 단순히 앱체인들을 묶어놓은 집합체로 취급할 수 있으며, 어쩌면 기존에 병렬적인 실행 체인과 하나의 정산 체인의 구조를 구축한 폴카닷의 파라체인 / 아발란체의 서브넷 / 톤 네트워크의 워크체인 등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제로가 갖는 여러 기술적인 특징들은 제로를 기존의 어떤 블록체인과도 본질적으로 구분시키며,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2 하드웨어 가속 기반 실시간 검증 메커니즘

    2.2.1 실행 환경의 추상화

    제로의 가장 큰 차별점은 각 아토미시티 존이 특정 가상머신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VM이든, SVM이든, 혹은 아예 새로운 실행 환경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검증 파이프라인 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로가 졸트(Jolt)라는 zkVM을 핵심 엔진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졸트는 Rust, C++ 등의 고수준 언어나 Geth, Reth 같은 기존 블록체인 클라이언트를 범용 명령어 집합인 RISC-V로 컴파일하여 실행한다. 즉, 블록 생산자가 어떤 언어나 로직으로 트랜잭션을 실행하든, 증명 생성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RISC-V 명령어의 실행 흔적으로 치환된다.

    이러한 설계는 각각의 아토미시티 존이 서로 완전히 다른 로직을 구동시키면서도 동시에 실시간 검증을 가능하게 만든다. 예컨대, 하나의 Zone은 고빈도 매매에 특화된 실행 환경을 운영하고, 다른 Zone은 EVM 호환 환경을 제공하더라도, 정산 레이어에는 동일한 규격의 RISC-V 기반 증명을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2.2.2 실시간 증명 생성

    제로의 아토미시티 존은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영지식 증명을 생성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려면 먼저 졸트의 설계 철학을 살펴봐야 한다.

    기존의 zkVM들은 CPU의 연산을 복잡한 다항식 기반의 산술 회로(Arithmetic Circuits)로 변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접근법은 정확하지만, 증명 생성 속도가 느리고 연산 오버헤드가 클 수밖에 없었다. 졸트(Just One Lookup Table)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졸트는 '룩업 특이점(Lookup Singularity)'이라는 개념을 실현하여, 복잡한 계산을 직접 수행하고 증명하는 대신, 모든 가능한 명령어의 입출력 결과가 담긴 거대한 테이블에서 답을 조회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2 + 2를 계산하고, 그 계산 과정이 정당함을 증명하라"는 문제를 "이미 계산된 테이블에서 2 + 2의 결과가 4인 줄을 가리키고 있음을 증명하라"는 훨씬 단순한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증명 생성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 레이어제로는 졸트 프로라는 기술로 졸트의 성능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졸트 프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기술로, 레이어제로가 a16z crypto의 오픈소스 졸트를 기반으로 자체 암호학자 팀을 구성하여 개발한 것이다. (a16z crypto와는 GPU 친화적 알고리즘 설계 과정에서 협업이 이루어졌다.)

    졸트 프로는 룩업 테이블 방식의 핵심인 메모리 접근 패턴을 대규모 병렬 처리에 최적화하여, 고성능 GPU 및 FPGA 클러스터에서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쉽게 말해, 졸트라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하드웨어 가속으로 한 번 더 증폭시킨 것이다.

    공개된 스펙에 따르면 졸트 프로는 RISC-V 명령어를 셀(단위 클러스터)당 1.61GHz 이상의 속도로 증명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 경쟁 모델 대비 100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레이어제로 측은 주장하고 있다.

    2.3 200만 TPS의 초고성능 처리량

    기존 블록체인이 확장성의 벽에 부딪힌 원인은 단순히 CPU 연산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는 스케줄링과 데이터베이스 I/O라는 두 가지 숨겨진 병목이 더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제로는 이 문제를 FAFO와 QMDB라는 두 가지 기술로 정면 돌파한다.

    2.3.1 FAFO (Fast Ahead of Formation Optimization)

    기존 블록체인, 특히 이더리움은 트랜잭션을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하나의 트랜잭션이 완료되어야 다음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전체 네트워크의 속도가 사실상 단일 CPU 코어의 성능에 갇혀 있었다. 제로는 FAFO 엔진을 도입하여 이 근본적인 제약을 해소한다.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트랜잭션을 순차적으로 처리한다. 서로 관련이 없는 작업들조차 오류 방지를 위해 일렬로 줄 세워지며, 이 순차 처리 요건이 하드웨어를 아무리 추가하더라도 시스템 확장을 막는 원인이 된다. FAF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FAFO의 핵심은 트랜잭션 간 충돌 여부를 엔진 수준에서 자동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FAFO는 충돌이 없는 트랜잭션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이를 병렬 실행을 위해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나 사용자에게 별도의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다. 즉, 개발자는 기존처럼 순차 실행을 전제로 코드를 작성하면 되고, 병렬화의 복잡성은 엔진이 흡수하는 구조다.

    FAFO가 제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핫스팟 격리(Hotspot Isolation)'다. 특정 아토미시티 존이나 특정 상태에 트래픽이 집중되어 혼잡이 발생하더라도, 해당 혼잡과 무관한 다른 트랜잭션들의 수수료나 처리 속도에는 일절 영향을 주지 않는다.

    2.3.2 QMDB (Quick Merkle Database)

    200만 TPS라는 수치가 단순한 마케팅 슬로건이 아닌 실제 기술적 목표가 되려면, CPU 성능보다 스토리지 속도가 더 중요해진다. 이더리움이 사용하는 머클 패트리샤 트라이 구조는 데이터에 접근할 때 트리를 순회해야 하므로 O(log n)의 복잡도를 가지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디스크 I/O가 심각한 병목의 원인이 되어왔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업계 전반에서 인식되어, 모나드는 자체적인 MonadDB를 구축했고, 이더리움 역시 버클 트리(Verkle Tree)로의 전환을 논의 중이다.

    제로는 QMDB(Quick Merkle Database)라는 완전히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한다. QMDB는 최신 SSD의 하드웨어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로그 기반 평면 저장소 구조를 채택했다. 기존처럼 트리 구조를 따라 데이터를 찾아 내려가는 대신, 데이터 접근을 O(1)에 가까운 상수 시간으로 처리한다. 쓰기 작업 역시 개별적으로 커밋하지 않고, 비동기로 모아서 한꺼번에 기록하는 방식을 취한다.

    Source: LayerZero

    그 결과 QMDB는 초당 300만 건의 상태 업데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 대비 약 100배, Meta가 개발하고 업계 표준으로 널리 사용되는 RocksDB 대비 약 6배 빠른 속도다. 200만 TPS라는 수치가 실현 가능한 목표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은 QMDB의 존재 덕분이다.

    2.4 탈중앙성의 보존

    200만 TPS라는 처리 속도는 필연적으로 데이터 가용성(DA) 문제를 야기한다. 초당 기가바이트 단위로 쏟아지는 데이터를 일반 노드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성능 처리량과 탈중앙화된 검증은 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인다. 제로는 이 딜레마를 검증의 비대칭성과 SVID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해결한다.

    2.4.1 검증의 비대칭성

    제로 설계 철학의 핵심은 명확한 역할 분리에 있다. 실행은 고성능 하드웨어를 갖춘 블록 생산자가 담당하고, 검증은 초저사양의 탈중앙화된 검증자가 담당한다. 이 비대칭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영지식 증명의 본질적 특성에 있다. 블록 검증자는 트랜잭션을 재실행할 필요가 없다. 졸트가 생성한 영지식 증명만 검증하면 되며, 이 검증 과정은 증명의 크기나 원본 연산의 복잡도와 무관하게 사실상 상수에 가까운 비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검증자의 하드웨어 스펙은 매우 낮아도 무방하다.

    2.4.2 SVID (Scalable Verifiable Information Dispersal)

    그러나 진짜 문제는 증명이 아니라 데이터에 있다. 검증자가 영지식 증명을 확인하려면, 해당 블록의 데이터가 실제로 네트워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0만 TPS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기존 블록체인처럼 P2P 가십(Gossip) 프로토콜로 전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SVID(Scalable Verifiable Information Dispersal)다. SVID는 블록 데이터를 이레이저 코딩(Erasure Coding)을 통해 잘게 분할하고 네트워크 전반에 분산 배치한다. 검증자는 전체 블록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지 않고도, 무작위 샘플링만으로 데이터가 정상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통계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SVID가 노드 간 통신에 인증된 고속 채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더리움 PeerDAS보다 1,000배 이상 빠른 10GB/s의 데이터 전송 대역폭을 확보함으로써, 데이터를 모든 노드에 저장하는 대신 고속으로 전송하고 샘플링으로 검증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는 데이터 가용성 문제를 '저장'이 아닌 '전송'의 관점에서 재정의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Source: LayerZero

    이러한 기술적 조합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인상적이다. 뉴욕에서 진행된 발표 시연에서, 라즈베리파이로 구성된 검증자 노드가 이더리움 메인넷의 한 달치 트랜잭션 분량(약 3000만 개)을 단 30초 만에 검증해내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목표, 즉 초고속 처리량과 초저사양 탈중앙화 검증이 동시에 달성 가능함을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2.5 거버넌스 기반의 Zone 관리

    앞서 살펴본 고성능 Zone들이 파편화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를 조율하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제로는 이 과제를 기술적 제약이 아닌, 정치적 시스템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2.5.1 통합된 거버넌스

    이더리움 L2 생태계가 현재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파편화된 거버넌스와 로드맵이다. 각 L2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며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에 유동성은 흩어지고, 사용자 경험은 복잡해지며, 생태계 전체의 효율은 저하되어왔다.

    제로의 아토미시티 존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 위에 서 있다. 각 존은 독립적인 주권을 갖지 않는다. "모든 존은 제로에 의해 소유된다"는 원칙 하에, 존의 추가, 업그레이드, 폐기는 오직 제로 프로토콜의 온체인 거버넌스를 통해서만 결정된다. 이 구조를 비유하자면, 제로는 운영적으로 '단일한 헌법을 따르는 연방 국가'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각 존은 자율적으로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되, 궁극적인 통치 권한은 제로에 귀속된다. 이를 통해 유동성 파편화를 원천 차단하고,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2.5.2 상원의원(Senator) 모델

    블록체인 거버넌스의 고질적 문제는 전문성의 부재와 유권자의 무관심이다. 복잡한 영지식 기술이나 경제 모델의 변경 사항을 일반 토큰 홀더가 독립적으로 검증하고 합리적으로 투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 결과 대부분의 거버넌스는 소수의 대형 홀더에 의해 좌우되거나, 투표율 자체가 극히 낮은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제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원의원(Senator) 모델'을 도입한다. 이 모델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전문가 주도성이다. 암호학,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검증된 전문가들이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기술적 의사결정을 주도한다. 일반 투표자들이 개별 안건의 기술적 세부사항을 모두 이해할 필요 없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판단을 위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둘째는 유동적 민주주의다. ZRO 홀더들은 자신의 투표권을 신뢰하는 상원의원에게 위임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와 유사하되, 블록체인 특유의 투명성과 즉시성이 결합된 형태다.

    셋째는 비영구적 위임이다. 홀더는 언제든지 위임을 철회하거나, 상원의원의 결정에 반대하여 직접 투표(Override)로 최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위임의 편리함과 직접 참여의 견제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설계다.

    2.5.3 자동 슬래싱의 제거

    제로는 "탈중앙화는 검증자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하게 만드는 것에서 온다"는 철학을 경제 모델에도 일관되게 적용한다. 일반 사용자가 검증자로 참여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심리적, 경제적 장벽은 슬래싱에 대한 공포다. 노드가 일시적으로 오프라인이 되거나, 소프트웨어 버그로 잘못된 응답을 보내면 스테이킹한 자산의 일부가 강제로 삭감될 수 있다는 위험은, 기술적으로 숙련되지 않은 참여자들을 네트워크 밖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낳는다.

    제로는 합의 레이어에서의 자동 슬래싱을 과감히 제거했다. 이중 서명과 같은 명백한 악의적 공격은 거버넌스를 통한 사법적 절차로 처벌하되, 단순한 노드 오프라인이나 소프트웨어 버그로 인한 자동 처벌은 없앴다. 이 결정은 라즈베리파이 수준의 저사양 검증자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핵심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2.5.4 ZRO 토큰의 위상 변화

    기존 레이어제로 프로토콜에서 ZRO는 단순한 거버넌스 토큰에 그쳤다. 그러나 제로 체인의 등장과 함께 ZRO는 네이티브 가스 토큰이자 네트워크 보안의 핵심 요소로 그 위상이 근본적으로 격상된다. 사용자는 200만 TPS의 처리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 ZRO를 가스비로 지불하며, 이렇게 수집된 ZRO는 검증자와 상원의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재분배된다. 이는 네트워크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검증과 거버넌스에 대한 보상도 함께 커지는 경제적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2.6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제로가 제시한 청사진이 매우 신선한 접근임에는 분명하다. 블록체인 트릴레마에 대한 가장 현대적인 해답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중요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2.6.1 검열 저항성

    제로의 설계는 검증자가 잘못된 블록을 거부할 권한을 명확히 갖는다는 점에서 안전성(Safety)에 대한 보장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라이브니스(Liveness), 즉 네트워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할 것이라는 보장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블록 생산자가 특정 사용자의 트랜잭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블록 생산자들이 담합하여 블록 생성을 중단할 때 이를 강제로 재개할 메커니즘이 아직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이더리움의 L2들은 시퀀서가 검열을 시도할 경우, 사용자가 L1으로 직접 트랜잭션을 제출하는 '비상 탈출구(Escape Hatch)'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제로는 L2가 아니라 L1 그 자체다. 고성능 블록 생산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할 경우, 라즈베리파이 검증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블록을 거부하여 네트워크를 사실상 멈추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 검열에 대항하는 능동적 메커니즘이 존재하는지는 메인넷 출시 전까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질문이다.

    2.6.2 상원의원의 권한

    상원의원 모델은 전문성을 확보하는 우수한 거버넌스 도구다. 하지만 거버넌스 기반의 '사법적 절차'가 블록체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블록체인은 밀리초 단위로 작동하지만, 거버넌스 투표와 합의 도출에는 수일에서 수주가 소요될 수 있다. 상원의원들이 담합하거나 매수되었을 때, 일반 토큰 홀더들의 '직접 투표(Override)'가 실질적인 견제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투표 과정이 충분히 신속하고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인지, 구체적인 거버넌스 파라미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이다.

    2.6.3 증명 검증의 구체적 메커니즘 본문 2.2절과 2.4.1절에서는 졸트 프로가 영지식 증명을 생성하고 블록 검증자가 이를 검증한다는 구조가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검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기술 세부사항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첫째는 증명의 단위 문제다. 블록 생산자가 생성하는 영지식 증명이 트랜잭션 단위인지, 블록 단위 배치 증명인지, 혹은 아토미시티 존 별로 상이한 단위가 적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QMDB 논문에서는 "원하는 경우 트랜잭션 단위로 상태 루트를 생성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어 기술적으로는 트랜잭션 단위 증명이 가능하지만, 제로에서 실제로 어떤 전략을 채택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둘째, 검증자 측의 연산 구조가 불분명하다. 검증이 온체인 프리컴파일(Precompile)을 통해 수행되는지, 프로토콜 네이티브 레벨의 합의 로직에 내장되어 있는지가 공개되지 않았다. 제로의 각 아토미시티 존이 서로 다른 실행 환경을 운영한다면, 각 아토미시티 존에서 생성되는 증명의 형식이 동일한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본문에서는 졸트가 모든 실행을 RISC-V 명령어로 통합한다고 설명하므로 하나의 통합 검증자(Unified Verifier)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공개된 바는 없다.

    셋째, 다수의 아토미시티 존에서 동시에 생성되는 증명들이 재귀적으로 집계되는지 여부다. 만약 수십 개의 존이 각각 블록 단위 증명을 생산한다면, 검증자가 이를 개별적으로 검증하는 것과 하나의 집계 증명으로 압축하여 검증하는 것 사이에는 검증 비용과 최종성 시간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은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물론 현재 아토미시티 존은 일반 목적 존, 글로벌 마켓 존, 페이먼트 존 세 가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기에 해당 부분은 이른 질문일 수 있다.

    2.6.4 합의 프로토콜과 최종성

    본문에서는 합의 메커니즘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거의 없다. 레이어제로 공식 블로그에서는 "위임 지분 증명(DPoS)"과 "초다수 합의(Supermajority Agreement)"라는 표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합의 체계나 최종성 도달 시간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제로가 기관 금융 인프라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트레이딩 및 결제 워크플로우에서는 최종성의 확정 시간이 시스템 설계의 핵심 파라미터이며, DTCC나 ICE가 실제 적용을 검토하려면 이 수치가 명확해야 한다. 200만 TPS의 처리량이 달성되더라도 최종성 지연이 수 초 이상이라면, 고빈도 매매와 같은 시간 민감도가 높은 유스케이스에서의 적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2.6.5 아토미시티 존 간의 상호운용성

    제로가 다수의 아토미시티 존을 병렬로 운영하는 구조를 채택한 만큼, 존 간의 상호운용성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가 질문으로 남는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첫째, 레이어제로가 이미 165개 이상의 블록체인을 연결하며 검증해온 인터체인 메시징 프로토콜을 존 간 통신에도 활용하는 방식이다. 둘째, 모든 존이 단일 프로토콜에 의해 소유되고 동일한 정산 레이어를 공유한다는 구조적 특성을 활용하여, 외부 메시징 없이도 프로토콜 네이티브 수준에서 아토믹한 트랜잭션을 지원하는 내재된 메커니즘이 존재할 가능성이다. 후자의 경우 지연시간과 신뢰 가정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이상적이나, 이에 대한 언급은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3. 시사점

    3.1 이더리움의 미래를 보는 것과 같은 모습

    제로의 아키텍처를 면밀히 분석하면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제로의 설계는 이더리움이 수년에 걸쳐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형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제로는 이더리움의 레거시에 구속받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여 그 목표를 단기간에 구현해버렸다는 점이다.

    3.1.1 파편화 없는 확장의 실현

    이더리움은 확장성을 위해 롤업 중심 로드맵을 채택했으나, 이 선택은 유동성 파편화와 사용자 경험의 복잡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스드 롤업이나 내재화된 롤업과 같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독자적인 생태계와 이해관계를 구축한 기존 L2들의 저항과 기술적 복잡도로 인해 실현은 요원한 상황이다.

    반면 제로의 아토미시티 존은 이더리움이 꿈꾸는 Enshrined Rollup(내재화된 롤업)에 가장 가까운 구현체라 할 수 있다. 모든 Zone은 제로 프로토콜의 일부로서 L1의 보안과 거버넌스를 공유하며, 수천 개의 실행 환경이 마치 하나의 체인처럼 작동한다. L2의 확장성을 취하면서도 L1의 통합된 유동성과 사용자 경험을 포기하지 않는, 그 이상적인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에 내장한 것이다.

    3.1.2 RISC-V zkVM

    비탈릭은 최근 이더리움 실행 레이어의 간소화를 위한 장기 제안을 Ethereum Magicians 포럼에 게시하며, EVM을 RISC-V와 같은 범용 명령어 집합(ISA)으로 대체하여 SNARK 증명의 효율을 극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EVM의 모든 연산(Opcode)을 각각 영지식 회로로 구현하는 내재화된 zkEVM 방식은 EVM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회로의 복잡도가 폭증한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EVM 실행 코드를 RISC-V와 같은 단순하고 표준화된 ISA로 컴파일한 뒤, 해당 ISA의 실행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제로의 졸트는 비탈릭의 이 가설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로는 영지식 친화적이지 않은 EVM을 억지로 최적화하는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고, EVM 클라이언트 자체(Geth, Reth 등)를 RISC-V 위에서 구동시킨다. 이를 통해 실행 환경의 추상화라는 목표가 달성된다. 향후 EVM의 변화나 완전히 새로운 VM의 도입이 이루어지더라도, 검증 레이어는 RISC-V라는 단일한 명령어 집합만 다루면 되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3.1.3 Stateless Client

    이더리움은 상태 비대화(State Bloat) 문제로 인해 일반인이 풀 노드를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버클트리와 무상태 클라이언트(Stateless Client) 도입을 추진 중이나, 이 전환 역시 기존 인프라와의 호환성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로는 이 문제를 처음부터 겪지 않는다. 검증자가 트랜잭션을 재실행하지 않으므로 상태 자체를 저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상태가 기본값인 셈이다.

    3.1.4 DAS와 SVID

    이더리움은 댕크샤딩(Danksharding)을 통해 데이터 가용성을 샘플링 방식으로 검증하여 롤업의 확장성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 SVID는 이미 10GB/s 대역폭과 샘플링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댕크샤딩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처리량을 훌쩍 뛰어넘는 성능을 메인넷 스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 관계들을 종합하면, 제로는 이더리움 로드맵의 각 구성 요소를 레거시 없이 처음부터 최적의 형태로 설계한 버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3.2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빌딩하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3.2.1 부분적 개선 vs 전면적 재설계

    그동안 수많은 고성능 EVM 프로젝트들은 이더리움이라는 거대한 배를 운항 중에 수리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택해왔다. 병렬화, 데이터베이스 개선, 합의 알고리즘 최적화 등 각 영역에서 점진적인 개선을 이루어낸 이 프로젝트들의 성과는 분명히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제로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이더리움의 핵심 가치, 즉 탈중앙화된 검증과 프로그래밍 가능한 블록체인이라는 유산은 계승하되, 그것을 구현하는 뼈대 자체는 완전히 새로 설계한다는 접근을 취한 것이다. RISC-V 기반의 졸트, 자동 슬래싱의 제거, 상원의원 모델 등은 기존 블록체인이 당연시해온 설계를 과감히 파괴하고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3.2.2 기술과 유동성의 동기화

    기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체인도 사용자와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텅 빈 유령 도시가 되는 경우는 크립토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어 왔다. 이 관점에서 제로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수요를 확정 짓고 나서 공급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시타델, DTCC, ICE와 같은 월스트리트의 핵심 인프라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한다는 것은, 메인넷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주식, 채권, 파생상품에 이르는 막대한 트래픽이 유입될 수 있는 고속도로가 이미 뚫려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이 비즈니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거대한 요구사항이 기술의 극한을 호출했다. 제로는 크립토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온 매스 어돕션의 트리거가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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