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AI 시대의 핵심 경제 인프라로 전환되고 있지만, 글로벌 데이터 저장 및 전달 구조는 여전히 AWS, Azure, GCP 중심의 극단적 중앙화에 머물러 있으며, 반복된 대규모 장애는 탈중앙 스토리지의 필요성을 구조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기존 탈중앙 스토리지는 낮은 비용과 검열 저항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개발 및 사용 경험과 제한된 생태계로 인해 실질적 채택에 실패했으며, 시장의 인식 또한 ‘기술적 잠재력은 높지만 아직 도입할 준비가 되지 않은 영역’으로 규정되고 있다.
Walrus, Shelby, Irys와 같은 차세대 프로토콜은 개발자 친화성, 실시간 성능, 데이터 프로그래머빌리티 등 기존 결함을 정면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Web2 기업 사례까지 확보하며 탈중앙 스토리지가 실제 비즈니스 인프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탈중앙 스토리지는 아직 초기 도입 단계에 있지만, 데이터 수요 확대와 중앙화 인프라의 구조적 취약성이 겹치며 점진적 성숙이 불가피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대중화를 위해서는 개발 표준화, 인프라 확충, UX 혁신이 핵심적인 성장 조건이 될 것이고,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면 단순한 기술적 대안을 넘어 새로운 데이터 인프라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1.1.1 데이터는 새로운 경제 인프라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다양한 경제적 요인에 따라 데이터는 단순한 부수적 자산을 넘어 핵심 경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발생하고 있는 데이터 생성량은 매년 20%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약 180제타바이트(ZB)에 이를 것으로 발표했다.
스마트 센서, 커넥티드 카, 산업용 IoT 장비들은 매 순간 방대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ChatGPT를 비롯한 대규모 언어 모델(LLM)들은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소비한다. 데이터는 이제 단순히 저장하고 관리하는 대상을 넘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핵심 원료이자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데이터의 인프라의 발전은 더 많은 주체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1.1.2 여전히 데이터 시장은 중앙화되어 있다
하지만 2025년, 여전히 데이터는 중앙화되어 있다. 오늘날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 대부분은 소위 클라우드 BIG 3라고 불리는 아마존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구글 클라우드에 존재한다. 이들은 전 세계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의 약 60%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웹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이 이들의 인프라 위에서 작동한다. 과거 통신사가 데이터의 흐름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클라우드 기업이 데이터의 저장과 접근 자체를 통제한다. 하지만 이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내포한다.
실제로 지난 20일, AWS는 대규모 장애를 겪었다. 레딧(Reddit), 코인베이스(Coinbase), 에픽 게임즈(Epic Games) 등 수많은 서비스가 동시에 마비됐고,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영향을 받았다. 불과 며칠 후 29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도 마비되며, 자체 서비스 뿐만 아니라 영국 통신사, 공항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이전부터 반복되는 이 같은 장애들은 중앙화된 데이터 인프라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고, 저장 및 배포 방식의 근본적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앙화된 클라우드 인프라의 구조적 취약성이 명확해지면서, 탈중앙 스토리지가 대안으로 주목아 왔다. 하지만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도입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편리함'이다.
기업들은 몇 번의 클릭으로 필요한 저장 공간과 컴퓨팅 파워를 확보하고, CDN을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빠른 데이터 접근이 가능하다. 개발자들은 인프라 관리 부담 없이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데이터 독점, 보안 위협, 서비스 중단 같은 리스크를 알면서도 클라우드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다. 탈중앙 스토리지는 저렴한 가격과 검열 저항성을 내세우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복잡한 사용성, 그리고 제한된 생태라는 두 가지 한계에 부딪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파일코인이다. 파일코인은 2017년 ICO에서 $250M을 모금하며 탈중앙 스토리지의 미래로 주목받았고, 2020년 메인넷 출시 후 빠르게 성장했다. 2024년 초 하루 기준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체결된 스토리지 계약량(Daily Active Deals)은 1,750 PiB를 넘어서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약 1,000 PiB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장 침체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개발자들은 AWS S3 같은 익숙한 인터페이스 대신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학습해야 했고, 일반 사용자들은 데이터 업로드와 관리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냉정하다. 'The State of DeStor 2024' 조사에 따르면, IT 의사결정권자의 75.9%가 향후 5년 내 탈중앙 스토리지 도입에 대해 '계획 없음'(39.3%) 또는 '불확실'(36.6%)이라고 답했다. 탈중앙 스토리지에 대한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는 '보안 및 프라이버시'(35.7%)와 '기술의 복잡도'(19.2%)였다. 결국 탈중앙 스토리지가 중앙화된 클라우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편의성과 실용성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탈중앙 스토리지가 주류 시장 진입에 실패했지만, 시장 자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Global Market Insights(GMI)에 따르면, 글로벌 탈중앙 스토리지 시장은 2024년 약 $620M 규모였고, 2025년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22.4%의 성장률(CAGR)을 전망하며 2034년에는 약 $4.5B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성장 전망 속에서 등장한 차세대 프로토콜들은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프로토콜은 크게 3가지다.
월루스(Walrus)
월루스는 미스텐랩스(Mysten Labs)가 개발한 탈중앙 스토리지로 잘 알려져 있다. RedStuff라는 2차원 이레이저 코딩 프로토콜을 핵심으로 4.5배의 낮은 복제 계수만으로도 높은 보안성을 달성한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월루스는 기존 스토리지 프로토콜보다 작동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Source: X(@WalrusProtocol)
더불어 월루스의 큰 강점은 개발자 친화적인 설계와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한 생태계 확장이다. 월루스는 TypeScript, Python, Golang, Rust 등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SDK를 제공해, 개발자들이 익숙한 도구로 쉽게 통합할 수 있다. 바이너리 클라이언트(macOS, Ubuntu), JSON API, HTTP API를 통해 명령줄 인터페이스로 작동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월루스 탈중앙 스토어를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 구축을 지원한다.
이미 월루스는 수이(Sui) 위에 온보딩되어 있는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Web2 서비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으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디크립트(Decrypt) 미디어는 월루스를 통합한 최초의 미디어 매체가 되었고, 최근 한국의 테이블 오더링 플랫폼 티오더는 30만 대 이상의 POS 기기에서 연간 $4B 규모의 거래 데이터 처리를 위해 월루스를 사용하려고 한다. 이는 월루스가 Web3를 넘어 실제 비즈니스 환경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쉘비(Shelby)
쉘비는 앱토스(Aptos)가 점프 크립토(Jump Crypto)와 공동 개발한 Web3 최초의 탈중앙 클라우드급 핫 스토리지 프로토콜이다. 전용 광케이블 네트워크와 새로운 인코딩 및 감사 프로토콜을 통해 서브세컨드(1초 이하) 응답 속도를 목표로 하며, 탈중앙화 구조에서도 CDN 수준의 처리량 제공을 지향한다.
쉘비의 핵심은 '읽기 기반 인센티브(Read-to-Earn)' 구조로, 데이터를 제공하는 노드에 실시간 보상을 지급해 고가치 데이터 저장과 제공 동기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구현했다. 현재는 Devnet 단계에 있으며, Jump Trading Group의 고성능 스토리지 개발 경험과 Meta 출신 앱토스 팀의 대규모 플랫폼 운영 노하우가 결합되어 탈중앙 스토리지가 실시간 애플리케이션의 실질적 인프라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리스(Irys)
아이리스는 데이터를 실행 가능한 자산으로 만드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블 데이터체인(Programmable Datachain)이다. Submit Ledger와 Publish Ledger로 구성된 듀얼 레저 구조를 통해 검증된 데이터만 영구 저장할 수 있다. 또한, IrysVM은 이더리움 EVM과 완전 호환되면서도 스마트 컨트랙트가 저장된 데이터를 직접 읽고 조작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아이리스는 폴리곤(Polygon), 베이스(Base)와 같은 체인 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들과도 파트너십을 맺으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토콜들은 과거 탈중앙 스토리지가 직면했던 핵심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프로토콜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Web3 생태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있다. 이는 탈중앙 스토리지가 더 이상 실험 단계가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블록체인 인프라 자체가 대중에게 낯설고, 사용자 경험도 클라우드 서비스만큼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이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성숙도의 문제다. 초기 인터넷이 그랬고, 초기 클라우드가 그랬듯, 탈중앙 스토리지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탈중앙 스토리지는 이제 막 실용화 단계에 진입한 초기 도입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개발자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과 더불어, Web3 영역을 넘어 다양한 산업 및 서비스와의 협업을 통해 기업 단위의 실제 활용 사례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일반 사용자들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친숙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UX) 의 발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탈중앙 스토리지는 단순한 기술적 대안을 넘어 새로운 데이터 인프라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