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국 행정명령 “미국의 디지털 금융기술 주도력 강화”의 워킹그룹은 미국이 블록체인 산업을 선도하고 ‘크립토의 황금기(Golden Age of Crypto)’ 를 열 수 있는 방안을 담은 166쪽짜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i) 디지털 자산 시장을 위한 공통 분류체계 마련, (ii) 은행과 블록체인 산업 간 연계 강화, (iii)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속화, (iv) 불법 금융행위 및 과세 가이드라인 제시 등이다.
현실에서도 전통 금융기관(JPMorgan Chase 등)과 블록체인 기업들(Coinbase, Robinhood 등) 간의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는 실제 금융 혁신을 향한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과 같은 국가들이 앞서가고 있지만, 한국 역시 보다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로 ‘제대로 살펴보고 이해해 보자’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온체인 서비스들과 인프라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의 잠재력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인정하며 앞서 나가고 있다. 2025년 1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 14178호 '미국의 디지털 금융기술 주도력 강화'를 발표하여 명확한 규제 마련과 혁신 장려를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 행정명령에 따라 범정부 워킹그룹이 디지털 자산 정책을 검토하였고, 마침내 오늘(2025년 7월 31일) 166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간하여 미국이 블록체인 산업을 선도하고 "크립토의 황금기(Golden Age of Crypto)"를 열 수 있는 방안을 권고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오랜 기술 혁신의 전통을 상기시키며,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암호화폐)이 금융 시스템과 자산 소유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이전 행정부에서 시행된 이른바 ‘오퍼레이션 초크포인트 2.0(Operation Choke Point 2.0)'과 같은 과도한 규제가 법을 준수하는 암호화폐 기업들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한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는 이러한 혁신 기술과 관련된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1월의 행정명령 14178호 취지에 맞춰, 이번 보고서는 미국 규제당국이 명확하고 일관된 규제를 통해 혁신을 촉진하고 암호화폐 기업들의 활동 무대를 미국 내로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여러 금융 규제기관이 협력하여 명확한 기준과 분류체계를 마련하고 규제 공백을 해소할 것을 권고하며, 탈중앙화 금융(DeFi)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도 기술중립적이고 유연한 규제 접근을 적용함으로써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Source: Strengthening American Leadership in Digital Financial Technology – The White House
한편 홍콩도 발빠르게 대응하며 뒤따르고 있다. 홍콩 정부는 2023년 6월부터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본격적인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하여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하되 일부 소매 투자에도 개방했고, 2025년 5월에는 아시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조례(Stablecoin Act)”를 통과시켜 8월 1일부터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한 인가제를 시행하였다. 이처럼 "규제하지만 혁신 친화적(regulated yet innovation-friendly)"인 접근을 내세운 덕분에, 홍콩은 블록체인 발전을 촉진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디지털 자산 허브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내 암호화폐에 대한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2025년 6월 기준 한 설문조사에서 암호화폐 투자자의 72%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인 5명 중 1명 이상, 즉 5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들 투자자의 64%는 트럼프 정부의 친암호화폐 정책 때문에 이전보다 암호화폐 투자에 더 나설 의향이 생겼다고 답했다. 낙관론은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확산되어, 한 조사에서 기관투자자의 83%는 2025년에 디지털 자산 투자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수치들은 규제 환경 개선에 힘입어 관련 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책임 있는 혁신 성장을 지원"한다는 행정부의 기조 아래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정책과 명확한 규제환경을 구축함으로써 미국이 다가오는 블록체인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 메세지는 4가지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포인트는 디지털 자산의 법적/규제적 분류 체계와 시장 구조 개선책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어떤 암호화폐가 증권(security)인지 상품(commodity)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SEC와 CFTC 등 규제기관 사이에 관할권 충돌과 중복 규제의 공백이 발생해왔다. 보고서는 "포괄적 분류체계의 부재로 해석의 누더기가 생겼고, 선의의 행위자들이 규제를 준수하려 해도 지뢰밭을 걷는 상황"이라고 비판하며, 명확하고 합의된 택소노미(taxonomy)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디지털 토큰이 자금조달 목적으로 판매될 때는 투자계약에 해당해 증권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충분히 탈중앙화된 후에는 더 이상 증권성이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동적인 상태 변화를 반영하는 기준이 없어서, 프로젝트들은 어떤 법규를 따라야 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2025년 미 하원에서 초당적 지지로 통과된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CLARITY Act)”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CLARITY 법안은 디지털 자산을 증권형 토큰과 비증권형(상품) 토큰으로 구분하여 SEC에는 증권형 토큰 관할권, CFTC에는 비증권 토큰 및 현물시장 관할권을 각각 명확히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미국 국민의 자기 자산 보유 및 P2P 거래 권리를 보호하고, 탈중앙화 거버넌스와 디파이(DeFi)의 가치를 인정하는 조항들도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는 CLARITY가 "미국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의 훌륭한 토대"가 될 것이라 평가하면서도, 입법 과정에서 보완할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우선 완전한 탈중앙 프로토콜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입법자가 고려해야 할 요소로 (i) 특정 소프트웨어가 이용자 자산에 실질적 "통제력"을 행사하는지 여부, (ii) 프로토콜이 기술적으로 변경 가능한지, (iii) 중앙화된 운영주체나 거버넌스 구조가 있는지, (iv) 현행 규제 의무를 기술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진정으로 탈중앙화된 프로젝트는 기존 중개인과 동일선상에서 규제하기 어려우므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며,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유연한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포인트에서는 CLARITY 법안이 이러한 토대를 마련해주리라 기대하면서, 의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며 입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규제기관들이 행정 권한 내에서 규제 명확성을 높이는 조치를 즉시 취해줄 것을 권장하였다.
두 번째로 살펴볼 포인트는 은행업권과 암호화폐 산업의 연계에 대해 다룬다. 미국 은행들이 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데 있어 앞으로 건전한 규제하에 어떻게 참여를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책 권고를 제시한다.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금융당국이 추진했던 암호화폐 기업 대상 은행서비스 차단 정책, 즉 "Operation Choke Point 2.0"을 언급하며, 이는 정당한 산업을 은행망 밖으로 몰아내 산업 자체를 질식시키려는 잘못된 시도였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관치금융적 압박으로 미국 내 여러 암호화폐 기업들이 계좌 폐쇄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피해와 규제 밖 암시장 성장 같은 부작용이 초래되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후 즉각 이 정책을 전면 중단시켰으며, 은행권이 암호화폐 산업에 정상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이는 자유시장 원칙 회복 측면에서도 중요하며, 은행업이 배제되면 오히려 음성적 뒷시장과 소비자 위험이 커진다는 판단이다.
보고서는 은행권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효율성 제고와 비용 절감의 기회가 크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결제 및 청산 시스템에 분산원장을 도입하면 24시간 실시간 결제나 "거래 후 즉시결제(atomic settlement)"가 가능해져, 기존 영업일 제약이나 중앙 청산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일부 대형 은행들은 자체 디지털 달러 토큰이나 채권 결제용 블록체인 플랫폼을 시험하는 등 이미 움직임이 있다. 보고서는 미국 은행들이 이런 혁신을 국내에서 펼칠 수 있도록 규제기관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도, 스위스, 싱가포르 등이 은행의 암호자산 취급에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어 미국도 발맞춰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본 포인트의 권고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 은행 규제당국은 암호화폐 관련 허용업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혁신 오피스 등을 재가동할 것, (ii) 은행 인가 및 연준계정 부여 절차를 투명화하여 기업의 진입을 돕고, 기존 은행의 암호화폐 고객 인수를 부당하게 막지 말 것, (iii) 은행 자본규제를 실제 위험에 맞게 조정하고, 토큰화 자산 취급 등 새로운 리스크에 대한 지침을 마련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은행권과 암호화폐 산업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고, 소비자는 안전하면서도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한다.
세 번째로 살펴볼 포인트는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디지털 결제 혁신과 미국 달러 패권 강화 전략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화 같은 법정통화에 1: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가치안정형 암호자산으로,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암호화폐 영역에서 사실상의 디지털 현금 역할을 하고 있다. 보고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채택이 결제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미국이 낡은 전통 결제망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예컨대 국제송금이나 증권 결제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중개은행 없이 실시간 처리가 가능하고 수수료도 저렴하다. 이는 미국 달러의 국제적 통용성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현재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백억 달러 규모의 발행잔액이 유통 중이다. 보고서는 미국이 이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명확한 연방 규제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GENIUS법이 "혁신 친화적 프레임워크를 연방법에 명문화했다"며 높이 평가하면서, 재무부와 관련 기관들이 이 법을 충실하고 신속하게 이행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특히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규율 정비와 병행하여 과세 이슈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현행 세법상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여, 이것이 통화(currency)인지 자산(property)인지에 따라 세무처리가 달라질 수 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세무상 불확실성이 시장 참여자에게 부담이므로, 연방 차원의 규제체계가 갖춰지는 대로 세법상 분류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본 포인트의 핵심 메시지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디지털 혁신 수단으로 적극 육성하고, CBDC는 미국의 자유와 금융안정을 위협하므로 단호히 배격한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분야에서는 이미 제정된 GENIUS 법을 충실히 집행하고, 필요시 추가 입법으로 개인정보 보호 강화나 소비자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예컨대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이용자 거래정보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기준이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자산 투명성 공시 의무 등을 향후 규제당국이 다듬을 수 있다고 시사한다. 국제 협력 측면에서도 미국이 주도적으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표준을 만들고, 국경 간 결제 혁신을 이끌어야 함을 강조한다. 반면 CBDC 분야에서는 미국이 확고히 "민간이 혁신하는 디지털 달러" 경로를 택했음을 선언하며, 정부가 직접 통화를 발행/통제하려는 시도를 법률로 차단함으로써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포인트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불법 금융(자금세탁, 테러자금 조달, 탈세 등)의 위험과 대응 방안이다. 보고서는 "혁신을 수용하면서도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금세탁방지(AML) 규범의 현대화가 필수"라고 전제하며, 기존 제도와의 갭을 분석한다.
암호화폐의 특성상 거래가 가명성을 띠고 국경을 초월해 실시간 이뤄지기 때문에, 전통 금융에 맞춰진 은행비밀법(BSA)이나 트레블룰(Travel Rule) 등의 집행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탈중앙화 거래소나 믹서(mixer) 등을 활용하면 범죄자가 여러 차례 코인을 전환하거나 자금을 쪼개어 이동해 추적을 피할 우려가 있다. 보고서는 2022년 북한 해킹조직의 디파이 악용 사례, 랜섬웨어 범죄자들의 암호화폐 요구 등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며, 현 AML 체계가 이런 신종 수법들을 충분히 커버하도록 업데이트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AML/CFT 집행이 법의 취지를 벗어나 남용되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특히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산업 죽이기 수단으로 AML 규제가 악용되면, 금융 시스템의 신뢰만 해칠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감독당국 스스로 민주적 통제를 받으며 투명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합법 산업과 이용자를 옥죄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할 것을 주문하며 이 장을 마무리한다. 요약하면, 암호화폐의 익명성 악용에 대응하여 제도는 진화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혁신과 자유를 희생시키지 않는 정교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마지막 장에서는 디지털 자산 관련 세법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 국세청(IRS)이 암호화폐를 기본적으로 자산으로 분류해 왔으나, 스테이킹, 마이닝, 에어드랍, 토큰의 래핑 등 새로운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과세기준이 미비하여 납세자들의 혼란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IRS와 재무부가 보다 명확하고 현실적인 세무지침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암호화폐 자산 거래 시 소액 거래에 대해서는 과세 예외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Source: X (@glxyresearch)
지금 많은 국가와 기업들, 대표적으로 미국이 앞다투어 블록체인 전략을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트렌드를 좇아서가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메사리, 델파이, 갤럭시 리서치, rwa.xyz와 같은 회사들이 끊임없이 수준 높은 리서치를 제공하며 기관들이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에 대한 미래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고, 온도 파이낸스, 모포와 같은 프로토콜들은 안전한 온체인 금융를 구축하였으며, 비트코, 코인베이스 등은 기관들이 암호화폐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신뢰되는 인프라를 제공하였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블록체인 산업, 대표적인 예시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준비가 미흡하다. 여전히 스테이블코인을 논할 때 테라의 실패 사례 혹은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반박이 많으며, 활용보다는 발행에 대한 논의만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활용 사례가 등장하고 있으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행뿐 아니라 이를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프로덕트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적인 지원과 명확한 규제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직 블록체인 산업도 스테이블코인은 초기 단계라 실질적인 성공 사례를 들어 도입에 대한 설득을 하는게 어렵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해 보자”라는 열린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부터 이해를 시작해야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금융과 블록체인 사업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플레이어들이 협력하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와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협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체이스는 자사의 신용카드 이용 고객들이 리워드 포인트를 베이스(Base) 체인 위의 USDC로 변환할 수 있도록 하고, 계좌와 코인베이스 플랫폼을 직접 연동해 쉽고 빠르게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의 교환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통 은행과 암호화폐 거래소가 연결된 본격적인 사례로, 대형 금융기관들이 디지털 자산을 실제 금융 서비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전통 금융기관과 거래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이제 모포와의 협력을 통해 온체인 금융, 즉 디파이(DeFi)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이용자는 코인베이스 앱에서 보유한 비트코인을 예치하고, 이를 담보로 USDC를 대출받아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기존 금융에서는 제공할 수 없었던 자산 활용 방식을 보여준다. 즉,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일상의 현금흐름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게 되어,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혁신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다른 변화는 핀테크 분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 투자 플랫폼인 로빈후드(Robinhood)는 자체 블록체인(L2)을 구축해 상장 및 비상장 주식을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기로 했다. 로빈후드 체인은 향후 이더리움 생태계와 연계될 예정이며, 이는 기존 핀테크 플랫폼들이 단순히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체 블록체인을 통해 보다 광범위한 금융 상품을 온체인 상에서 다룰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핀테크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여 자산의 소유권과 유동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금융 혁신 사례들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이러한 흐름에서 완전히 뒤처져 있다. 은행, 거래소, 핀테크, 디파이 간의 협업이나 인수를 통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JP모건의 Kinexys와 같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도 우선 도입하여 내부적으로 실험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미 글로벌 주요 국가들과 기관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금융 혁신의 청사진을 그리고 구체적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모든 논의가 탁상공론에만 머물 수 밖에 없다.
물론 블록체인의 도입과 활용이 쉽지 않고,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중한 접근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해서 이를 외면하고 뒤로 미루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이미 블록체인이 금융 시스템에 가져올 변화는 시작되었고, 앞서 나가는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학습하며 그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 각자에게 남은 선택은 이 흐름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합류할지 결정하는 것뿐이다.
변화의 흐름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고,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급진적으로 높이고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