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재단의 저스틴 드레이크는 7월 31일 이더리움의 향후 10년 계획을 정리한 로드맵 “린 이더리움”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에는 양자 저항성을 갖기 위해 모든 암호화 프리미티브를 해시 기반 암호화 메커니즘으로 전환하고, 극한의 확장성 향상을 달성하기 위해 합의, 데이터, 실행 레이어 모두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등 급진적인 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자 저항성을 위해 체인의 주요 구성 요소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이더리움의 린 접근법은 최소한의 변경을 통해 기존의 기능을 보존하고자 하는 수이의 팻 접근법과 대조된다.
Source: Ethereum
7월 31일, 이더리움의 10주년을 맞아 이더리움 재단 소속 연구원 저스틴 드레이크(Justin Drake)는 이더리움의 향후 10년을 대비할 로드맵을 정리, “린 이더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했다. 블로그 아티클로 발표된 로드맵에는 각 영역에 대해 2-3문장 수준의 매우 간단한 설명만이 포함되어 있지만, 각각의 요소에는 매우 많은 부분이 축약되어 설명되어 있다. 본 글에서는 로드맵의 각 부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이번 로드맵을 통해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어떤 방향으로 변모할지에 대해 다루어보겠다.
로드맵에 가장 먼저 언급된 것처럼, 현재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더리움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제네시스 블록 이후 한번도 멈추지 않은 체인”이라는 안정성일 것이며, 이로 인해 현재 가장 많은 기관 자금 유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더리움이 지난 10년간 네트워크의 탈중앙성과 노드의 경량화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개발해왔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이며, 이더리움이 최근 발표한 또하나의 목표인 “1조 달러 보안 (1 Trillion Dollar Security)”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전의 뒷면에는 양자 컴퓨팅 시대의 도래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구글의 윌로우(Willow) 양자 컴퓨터가 105 큐비트(Qubit)를 달성하는 등 양자 컴퓨팅 기술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NIST는 2030년까지 기존 암호화 알고리즘을 폐기하고 2035년까지 양자 저항성 표준으로 완전히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이더리움이 사용하는 타원곡선 암호화 기반의 ECDSA 서명과 BLS 서명은 모두 양자 컴퓨터의 쇼어 알고리즘(Shor's algorithm)에 취약하며, 충분히 강력한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면 현재의 암호화 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대중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더리움 뿐만 아니라 전 웹3 생태계가 수년간 논의해오고 있으며, 비탈릭은 양자 저항성을 갖는 암호화 알고리즘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양자 컴퓨터에 의한 공격이 발생할 경우 하드포크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 대처 방식에 대해 이더리움 리서치 포럼에서 자세히 논하기도 했다.
Source: Hamid Bateni (irnb)
그러나 이더리움이 언젠가 양자 저항성을 갖는 암호화 알고리즘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수행해야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비탈릭은 2023년 발표한 이더리움의 장기 로드맵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인 스플러지 (Splurge) 단계에 이를 진행할 것임을 언급한 바 있다. 그동안에는 정확히 어떤 암호화 기법으로 업그레이드를 수행할지, 어떤 부분을 변경할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으나, 드레이크의 로드맵은 모든 암호화 프리미티브를 해시 기반으로 전환하는 급진적인 접근법을 명시해 제안하고 있다는 점을 차이로 두고 있다.
해시 기반 암호화가 갖는 양자 저항성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대표적인 양자 연산 방식들은 RSA, 타원곡선 등 공개키 암호를 효과적으로 깨뜨릴 수 있지만, 해시 함수를 깨는 데에는 비교적 덜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자 연산이 무작위 대입의 속도를 가속화할 수는 있지만, 이는 해시의 길이를 늘려 보안 수준을 높이면 충분히 대응 가능하며, 해시 기반 서명(e.g. SPHINCS+, Lamport) 기법들은 이미 양자 저항성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시 기반 암호화는 양자 저항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가장 간단한 형태의 암호화 기법이기에 컨센서스, 데이터, 실행 레이어 모두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갖는다.
로드맵의 두번째 축은 바로 극한의 확장성이다. 드레이크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초당 1 기가가스, 레이어 2에서 초당 1 테라가스라는 매우 과감한 목표를 제시한다. 이를 트랜잭션 처리량으로 환산하면 이더리움에서 초당 약 1만개, 레이어 2에서 약 1백만 개에 해당하며, 현재 이더리움의 약 30 TPS와 비교하면 상상이 어려운 성능 향상이다. 드레이크의 로드맵은 이더리움의 세가지 핵심 레이어, 실행 / 합의 / 데이터 모두를 재설계함으로써 급진적인 성능 향상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1 합의 레이어: 빔 체인 구현
먼저 합의 레이어에서는 작년 데브콘(Devcon) 세션에서 드레이크가 제시한 빔 체인(Beam Chain)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드레이크는 비콘 체인 구현 당시 성능보다는 보안을 우선시한 설계로 인해 현재 성능 관련 업데이트에 여러 병목이 존재함을 지적했으며, 비콘 체인에서 발생한 실수들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의 레이어를 대대적으로 재설계해야함을 주장했다. 또한 매우 빠른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는 SNARK 증명과 zkVM을 적극적으로 도입, 블록 생성과 완결성(Finality)의 속도를 최소 3배 이상 증가시킬 것을 주문했다.
빔 체인 로드맵에는 매우 다양한 사안들이 언급되어 있으나, 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기존 개스퍼(Gasper) 합의 메커니즘에서 완결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개의 위원회를 두던 방식을 한 개의 큰 위원회로 통합, 완결성 보장까지 걸리는 시간을 12초까지 줄이는 것, 그리고 블록 하나의 생성 시간을 4초까지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태값의 검증이 매우 경량화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SNARK 증명과 zkVM이 개입하게 된다. 크게는 상태값의 관리와 서명 메커니즘이 SNARK 기반으로 변경될 것으로 예상된다.
빔 체인 로드맵 발표 당시 드레이크는 하나의 연구원으로써의 제안 사항임을 표명했지만, 이번 린 이더리움 로드맵 발표와 함께 빔 체인의 구현이 본격적으로 착수될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1.2.2 실행 레이어: RISC-V 도입
Source: Ethereum Magicians
실행 레이어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드레이크는 EVM을 SNARK 친화적인 명령어 세트로 완전히 재설계하되, 기존 스마트 컨트랙트와의 호환성은 유지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때 대체 가능한 연산 환경으로 RISC-V를 언급했는데, 이는 비탈릭 부테린이 2024년부터 언급해오던 RISC-V 기반 실행 환경의 가능성을 구체화할 것을 암시한다.
RISC-V는 오픈소스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로, 256비트 스택 기반의 EVM에 비해 훨씬 가벼운 32/64비트 레지스터 기반 아키텍처를 갖고 있다. 또한 각 RISC-V 명령어는 간단하고 예측 가능한 제약 조건으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에, RISC-V를 기반으로 실행 환경을 구축하게 된다면 이더리움의 실행에 대한 증명 생성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만약 모든 실행이 자동으로 영지식 증명을 생성하도록 설계된다면, 노드들은 재실행 없이도 상태 전환의 정확성을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기존 스마트 컨트랙트와의 완전한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질 것이며, 개발자들은 기존 도구와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2.3 데이터 레이어: 블롭의 한계 극복
현재의 블롭 시스템은 EIP-4844를 통해 도입된 이후 L2 비용을 크게 절감시켰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정된 128KB 크기는 유연성을 제한하고, KZG 커밋먼트는 양자 컴퓨터에 취약하며, 현재의 타겟인 블록당 6개 블롭(펙트라 업그레이드 시점)은 미래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여전히 부족하다.
린 이더리움 로드맵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여러 방면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먼저 앞서 언급한 해시 기반 커밋먼트를 사용해 기존 KZG 대비 양자 저항성을 확보하며, 블롭 크기를 가변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해 레이어2 체인들이 필요에 따라 정확한 양의 데이터만 저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가용성 샘플링 방식의 개선을 통해 노드들이 전체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지 않고도 가용성을 검증할 수 있게 해, 블롭 수를 현재보다 훨씬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Source: leanroadmap.org
린 이더리움의 공개와 함께, 린 이더리움 로드맵의 구현 상황을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leanroadmap.org라는 홈페이지가 함께 제공되었다.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현재는 이더리움 커뮤니티에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단계를 마무리, 과제의 우선순위를 식별하고 구현에 착수할 준비를 2026년 초까지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저스틴 드레이크의 빔 체인 로드맵 발표 당시에도 구현에 길게는 5년 가량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린 이더리움의 구현 또한 2029년 초 테스트 완료를 목표로 세운 것으로 사료된다. 빔 체인이 합의 부분의 변경만을 품은 계획임을 고려할 때, 합의 / 실행 / 데이터 모든 부분의 업데이트가 수행되어야 하는 새 로드맵이 매우 급한 속도로 진행될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사이트에는 위 그림 뿐만 아니라 업데이트에 필요한 모든 구현체들의 구현 진행상황이 세부적으로 표현되어 트래킹되고 있으며, 이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더리움 커뮤니티에게 진행 상황에 대한 가시성을 제공함으로써 린 이더리움이 그저 말뿐만의 목표가 아닌 수년 내 현실로 다가올 미래임을 공표한 것이기도 하다.
린 이더리움 로드맵은 솔라나, 수이 등 고성능을 표방하는 차세대 블록체인들에 대한 이더리움의 응답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체인은 처음부터 높은 처리량을 목표로 설계되었지만, 이더리움은 선발 주자로써의 기술 부채와과 탈중앙성 / 보안성이라는 핵심 가치의 보존을 위해 그동안 적극적인 성능 향상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로드맵은 이더리움이 처리량 경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성능과 보안을 위해 체인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는 점에서 기존 이더리움의 스탠스와 매우 크게 결을 달리한다.
또한 필자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점은, 체인의 구조를 개편하며 새로운 기능을 첨부하는 방향이 아닌, 체인을 보다 압축하는 (Lean하게 만드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시스템은 기존 구조 위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발전하지만, 이번 로드맵은 정반대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고 단순화하는 길을 택한다. 이는 기술 부채를 청산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매우 과감한 선택지이다.
Source: Sui Blog
반면 수이(Sui)가 지난 4월 공개한 포스트 퀀텀 전략은 후행주자가 가질 수 있는 '팻 프로토콜(Fat Protocol)' 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수이는 서명 체계 / 해시 함수 / zkLogin 등 광범위한 영역에 대해 양자 내성 암호의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때 각 암호 메커니즘의 용도별 성능에 맞춰 제각기 다른 암호 메커니즘을 채택할 것이며, 기존의 구현체와 즉시 대응 가능한 세심한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음을 발표했다. 이에 더해 수이는 지난 28일 자체 연구를 통해 개발한 양자 내성 암호 메커니즘을 발표했는데, 해당 메커니즘은 수이, 솔라나, 코스모스 등 EdDSA 기반 체인들의 월렛들에 후위 호환성(Backward Compatibility)을 제공하는 최초의 양자 내성 경로로 주목받았으며, 수이는 이 메커니즘의 도입을 통해 사용자들이 지갑 주소나 키를 변경하지 않고도 양자 저항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구현체를 보존하며 양자 내성 암호를 도입하는 접근 방식은 검증 시간과 크기를 크게 증가하시키는 등 성능 저하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나, 수이는 이를 배치 검증 최적화 등의 기법으로 완화하려 하며, 무엇보다 기존 사용자 경험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는 수이가 설계 단계부터 성능과 암호학적 호환성에 매우 큰 중점을 둔 체인이었으며, 암호 메커니즘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가 매우 적은 형태로 설계되었기에 가능한 방향이다. 다른 체인에 비해 이미 압도적인 성능을 내고 있다는 점 또한 수이가 양자 내성을 갖춤에 있어 팻 프로토콜 전략을 취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더리움과 수이의 양자 대응 전략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흥미롭게도 공통된 통찰을 공유한다. 두 프로젝트 모두 양자 연산으로 인한 위협을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닌 블록체인의 근본적 재고 기회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더리움이 보여주는 급진적 재설계는 10년 이상 운영된 시스템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수이가 보여주는 실용적 접근은 혁신과 안정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10년 후, 양자 컴퓨팅 시대를 준비하는 두 접근법은 궁극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신호다. 더 이상 단순히 '빠른 체인'이나 '안전한 체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각 프로젝트가 자신만의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전체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 될 것이다. 이더리움과 수이가 걷는 길, 그 어느 쪽이든 우리를 더 나은 웹3의 미래로 인도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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