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토(Jito)는 솔라나의 MEV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 어셈블리 마켓플레이스(BAM)를 도입하며, 트랜잭션 처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
지토는 릴레이어, 블록 엔진, 팁 분배 프로그램을 통해 솔라나 등장 초기 매우 비효율적으로 수행되던 MEV를 체계화하고 스테이커들에게 수익을 분배하며 네트워크 안정성을 개선했다. 그러나 지토의 중앙화된 블록 엔진은 단일 실패 지점과 지역적 편중 문제를 야기했으며, BAM은 TEE와 플러그인 시스템으로 이를 해결해 탈중앙화와 유연성을 강화한다.
BAM은 트랜잭션 암호화와 맞춤형 시퀀싱을 통해 유해한 MEV를 줄이고, 새로운 디파이 프로토콜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지토는 BAM을 통해 단기적 독점 이익 대신 장기적 생태계 성장을 추구하며, 솔라나를 공정하고 효율적인 블록체인으로 발전시킬 잠재력을 제시한다.
2024년 이후 솔라나 생태계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밈코인 열풍과 함께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빠르고 안정적인 체인으로써의 효용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적인 컨셉의 디파이 프로토콜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정체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 지정가 주문장(Central Limit OrderBook, 이하 CLOB) 기반 거래소, 고도화된 영구선물 거래소(Perpetual DEX, 이하 PerpDEX) 등 복잡한 금융 상품들은 오히려 베이스(Base)의 아반티스(Avantis), 자체 EVM 롤업 기반의 라이터(Lighter), 메가이더(MegaETH)의 GTE 등 EVM 생태계에서 개발을 주도하는 형태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솔라나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솔라나는 이론적으로 초당 수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자랑하지만, 이를 위해 설계된 트랜잭션 처리 구조 때문에 트랜잭션의 순서를 정교하게 제어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했다. 이는 곧 유리한 순서를 점유하기 위한 MEV(Maximum Extractable Value) 봇들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이로 인한 일반 사용자의 높은 트랜잭션 실패율로 이어졌다. 2022년 지토(Jito)가 등장과 함께 솔라나 MEV 생태계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며 솔라나 초기 MEV 생태계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으나, 지토의 구조는 여전히 제한적인 앱 수준의 트랜잭션 시퀀싱 제어 권한과 MEV 추출 과정의 불투명성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Source: Jito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1일, 지토는 블록 어셈블리 마켓플레이스(Block Assembly Marketplace, 이하 BAM)를 발표하며 솔라나 생태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지토는 BAM이 솔라나 MEV 생태계에 검증 가능성, 투명성, 프라이버시을 부여할 것임을 강조하며, 솔라나를 단순한 고속 네트워크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금융 인프라로 진화시킬 잠재력을 지녔음을 피력했다.
이번 글에서는 BAM의 출시를 맞아 지금까지 솔라나 MEV(Maximum Extractable Value, 최대 추출 가능 가치) 생태계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에 대해 지토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이들이 현재 어떠한 한계를 맞이했는지 분석한다. 이어 BAM이 어떠한 방식으로 현재의 MEV 생태계를 개선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BAM으로 인해 솔라나 생태계가 어떠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솔라나 메인넷 출시 직후 솔라나의 MEV(Maximal Extractable Value) 생태계는 그야말로 다크 포레스트에 가까웠다. 이는 솔라나가 이더리움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트랜잭션을 처리하기 때문인데, 솔라나 MEV 생태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차이점은 글로벌 멤풀(Mempool)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이더리움에서는 모든 노드가 대기 중인 트랜잭션을 볼 수 있는 반면, 솔라나에서는 트랜잭션이 현재 또는 미래의 '리더(Leader)' 밸리데이터에게 직접 전송된다. 각 밸리데이터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약 400ms 동안 블록을 생성할 독점적 권한을 갖는데, 이 기간을 '리더 슬롯'이라 부른다. 이러한 구조는 솔라나가 초당 수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이지만, 동시에 MEV 추출에 있어 독특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리더가 트랜잭션 순서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며, 다른 참여자들은 어떤 트랜잭션이 처리될지 미리 알 수 없기에 MEV 봇들이 더욱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앞서 설명한 글로벌 멤풀의 부재로 인해, MEV 서쳐(Searchers)들은 밸리데이터와 직접 거래하거나 스팸 트랜잭션을 통해 MEV를 추출하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을 취했다. 솔라나는 당시 다른 네트워크 대비 매우 빠르고 많은 트랜잭션 처리로 인해 많은 MEV 기회를 창출했지만, 인기 NFT 컬렉션 민팅이나 IDO와 같이 사용자 트랜잭션이 대량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는 과도한 MEV 추출 시도로 인해 네트워크의 사용성을 떨어뜨렸으며, 심하게는 네트워크를 중단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2.1 지토의 초기 전략
지토는 2022년 초, 솔라나의 MEV 문제가 극에 달했을 때 등장했다. 당시 솔라나는 네트워크 중단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고, MEV 봇들의 무차별적인 스팸으로 인해 일반 사용자들의 트랜잭션 성공률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이었다. 특히 인기 NFT 민팅이나 IDO 때마다 네트워크가 사실상 마비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솔라나 커뮤니티는 이더리움의 플래시봇(Flashbots)과 같은 MEV 인프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토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초기 지토 팀은 "MEV를 없앨 수는 없지만, 이를 체계화하고 민주화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무질서한 MEV 추출을 정돈된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네트워크 안정성을 높이고, MEV 수익을 일반 스테이커들에게도 분배하겠다는 것이었다.
지토의 초기 전략은 명확했다. 먼저 솔라나의 구조적 한계인 글로벌 멤풀 부재를 오프체인 솔루션으로 해결하고, MEV 봇들이 무작정 스팸을 보내는 대신 경매 시스템을 통해 질서있게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토는 2022년 하반기부터 밸리데이터들과 파트너십을 맺기 시작했고, MEV 서처들에게는 더 효율적인 MEV 추출 방법을 제공했다.
2.2.2 지토의 핵심 구조
지토는 세 가지 구성요소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MEV를 효율적으로 포착하고 분배하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릴레이어(Relayer): 트랜잭션의 관문 역할을 한다. 지토를 통하는 모든 트랜잭션은 먼저 릴레이어를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200밀리초의 '의도적 지연'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MEV 서처들은 유입된 트랜잭션을 분석하고, 차익거래 기회나 청산과 같은 MEV 추출 기회를 포착하여 자신들의 트랜잭션을 번들로 묶을 수 있다. 릴레이어는 또한 스팸 필터링 기능을 통해 무의미한 트랜잭션을 걸러내 밸리데이터의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기존에 밸리데이터가 직접 처리해야 했던 수많은 스팸을 사전에 차단하여 네트워크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블록 엔진(Block Engine): 지토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솔라나의 환경에 맞게 구현된 이더리움의 플래시봇과와 유사한 입찰 경매(sealed-bid auction) 메커니즘이다. 블록 엔진은 오프체인에서 가상의 멤풀을 운영하며, 서처들이 제출한 번들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한다. 각 번들은 실행 결과와 제시된 팁을 기준으로 평가되고, 가장 수익성 높은 번들이 선택된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솔라나의 400ms 리더 슬롯 내에서 완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 엔진은 또한 번들 간 충돌을 감지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실행한다.
팁 분배 프로그램(Tip Distribution Program): 지토는 트랜잭션 처리 메커니즘의 개선과 더불어 MEV를 통한 수익 기회를 일반 사용자에게 분배하여 누구나 MEV 기회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구현했다. 지토는 사용자들이 추가적인 트랜잭션 포함 보장을 위해 "팁"을 입찰할 수 있는 경매 메커니즘을 도입했으며, 이와 더불어 MEV 서처들은 자신들이 생성한 번들을 블록에 포함시키기 위한 수수료의 형태로 팁을 지불한다. 이러한 팁은 지토의 스마트 컨트랙트에 축적되어 주기적으로 분배된다다. 지토는 사용자로부터 SOL을 예치받아 JitoSOL이라는 리퀴드 스테이킹 토큰을 발행하는데, JitoSOL 보유자는 이자로 지토가 축적한 팁을 분배받기에 자연스럽게 MEV 수익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솔라나의 빠른 블록 타임 내에서 수많은 서쳐들이 네트워크의 성능을 해치지 않으면서 MEV를 추출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25년 기준 초당 수천 개의 번들이 지토를 통해 처리되고 있다.
지토는 현재 솔라나 네트워크 전체 스테이크의 97% 이상을 확보, 솔라나의 핵심 인프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연간 약 25억 달러 규모의 MEV 수수료가 지토를 통해 밸리데이터와 스테이커들에게 분배되고 있으며, 이는 솔라나 생태계 경제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 지토는 몇가지 구조적 단점을 지속적으로 지적받아왔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블록 엔진의 중앙화 문제이다. 지토의 블록 엔진은 본질적으로 중앙화된 오프체인 시스템이기에 모든 MEV 번들 경매가 지토가 운영하는 서버 클러스터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아래와 같이 몇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구현 유연성 제약: 지토의 시스템은 시퀀싱 로직을 커스텀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개발자들이 트랜잭션 순서를 애플리케이션 수준에서 제어할 수 없어, CLOB나 PerpDEX 같은 복잡한 금융 프리미티브 구현이 제한된다.
블록 엔진의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 문제: 지토의 블록 엔진은 사실상 솔라나 MEV 인프라의 독점적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 11월 발생한 지토 블록 엔진 중단 사태는 이러한 중앙화의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약 1시간 동안 지토의 블록 엔진이 작동하지 않자, 솔라나 네트워크의 MEV 추출이 사실상 마비되었고, 아비트라지 트레이더들과 스나이핑 봇은 지토에 팁을 지불하는 대신 솔라나의 베이스 수수료를 높여 거래를 성공시키고자 했다. 이는 솔라나의 수수료를 25~30배 가량 급증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기본 수수료에 일정 수준의 제한을 둔 일부 어플리케이션들은 동작이 사실상 중단되어 사용자 불편을 일으켰다. 이는 지토에 집중된 솔라나 MEV 생태계의 구조가 일부 분산되어야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리적 중앙화와 레이턴시 게임: 지토의 블록 엔진은 현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런던, 싱가포르, 뉴욕, 도쿄 등 7개 지역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특히 암스테르담과 같은 특정 지역에 MEV 활동이 집중되는 "지역 중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서처들에게 상대적 이점을 제공한다. 지토는 블록 엔진과 밸리데이터 간의 최적 왕복 레이턴시가 50ms 미만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특정 지역에 위치한 참여자들에게 구조적 우위를 제공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토가 솔라나 MEV 생태계에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더 탈중앙화되고 투명하며 검열 저항적인 솔루션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는 네트워크의 탈중앙화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중앙화된 행위자들의 선의에 계속 의존할 수 없으며, 탈중앙화가 가장 효율적인 결과가 되도록 하는 견고한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존 지토 블록 엔진에서는 오프체인 경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번들 선택 알고리즘이 정말로 공정한지 외부에서 검증할 방법이 없었으며, 사용자들은 단순히 지토를 신뢰해야만 하는 구조를 가졌다. BAM은 이러한 문제를 신뢰 실행 환경(Trusted Execution Environments, TEE)의 도입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TEE는 하드웨어 제조사가 제공하는 보안 환경에서 연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암호학적으로 서명하여 무결성을 보장하는 하드웨어 보안 모듈로, 소프트웨어의 실행 주체와 검증 주체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신뢰의 문제를 해소하는 대표적인 장치이다. BAM은 각 노드가 TEE 내의 암호화된 메모리 영역에서 트랜잭션의 시퀀싱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밸리데이터가 일반 사용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임의의 로직을 통해 시퀀싱을 수행하는 행위를 방지한다. 또한 트랜잭션은 실행 시점까지 암호화되며, 트랜잭션의 시퀀싱에 대해 임의의 개입이 없었음을 TEE가 제공하는 원격 증명(Remote Attestation)을 통해 검증 가능하도록 한다.
기존 지토 블록 엔진에서는 모든 트랜잭션이 동일한 시퀀싱 로직을 따라야 했다. MEV 서처들이 제출한 번들은 오직 제시된 팁의 크기에 따라 우선순위가 결정되었고, 개발자들은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시퀀싱 요구사항을 반영할 방법이 없었다. 이는 특히 복잡한 금융 프리미티브를 구현하려는 프로토콜들에게 큰 제약이었다. 예를 들어, 중앙 지정가 주문장(CLOB)을 구현하려면 주문의 시간 우선순위를 보장해야 하고, 영구선물 거래소는 시장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보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맞춤형 로직을 구현할 방법이 없었다.
BAM은 개발자, 트레이더, 애플리케이션이 플러그인 소프트웨어를 구현해 BAM 노드의 트랜잭션 시퀀싱을 담당하는 스케줄러에 연결, 솔라나 트랜잭션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기존의 지토 블록 엔진의 경직된 구조에서 벗어나 각 애플리케이션이 자신만의 고유한 트랜잭션 처리 규칙을 구현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Source: Block Assembly Marketplace
이러한 플러그인 시스템은 이전 솔라나 생태계에서 구현이 어려웠던 여러 메커니즘을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전에는 솔라나의 빠른 블록 타임과 즉각적인 실행 모델 때문에 어플리케이션 측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던 특정 기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BAM은 플러그인으로 구현 가능한 시스템의 일례로 JIT(Just-In-Time) 오라클을 제시한다. 피쓰(Pyth)와 같은 오라클 제공자는 1,600개 이상의 가격 피드를 유지하는데, 기존에는 모든 가격 피드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했기 때문에 막대한 트랜잭션 비용이 발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오래된 가격 정보로 인한 청산이나 차익거래 기회가 발생했다. BAM의 플러그인은 이러한 오라클 업데이트를 특정 블록에서만 수행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구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더 효율적인 디파이 생태계 구현에 기여할 수 있다.
마켓 메이커들을 위한 플러그인도 주목할 만한 예시이다. 전통 금융 시장에서는 주문의 약 3분의 1이 거래 후 50밀리초 이내에 취소되거나 수정된다. 이는 마켓 메이커들이 지속적으로 포지션을 재조정하고, 불리한 체결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관점에서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은 스팸에 가까우며, 일반 사용자의 주문과 경쟁관계에 있기에 네트워크 혼잡을 야기하게 된다. BAM의 플러그인을 통해 개발자들은 마켓 메이커의 주문을 우선시하는 맞춤형 시퀀싱 규칙을 구현할 수 있으며, 이는 마켓 메이커들에게 원활한 거래 환경을 보장하면서도 사용자들에게는 더 깊은 유동성과 밀도있는 스프레드를 제공할 수 있다.
BAM의 트랜잭션 처리 과정은 기존 솔라나의 단순한 선착순 처리나 지토의 팁 기반 경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취한다. 전체 과정은 네 단계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결과를 검증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증명을 생성하는 연쇄적 구조를 가진다.
트랜잭션 제출: 사용자, 트레이더, 마켓 메이커, 또는 애플리케이션이 BAM 노드로 트랜잭션을 전송한다. 트랜잭션은 즉시 TEE 내로 전달되어 암호화되며, 이는 트랜잭션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기존 시스템과는 달리 트랜잭션 제출 즉시 그 컨텍스트가 보호됨을 의미한다.
시퀀싱 및 증명: BAM 노드는 TEE의 암호화 영역인 앙클레이브(Enclave)에서 트랜잭션을 수신, 필터링 및 정렬하며, 이 과정에서 플러그인이 작동하여 추가적인 트랜잭션을 삽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eFi 프로토콜이 대출 청산을 처리하는 트랜잭션을 제출했다면, 오라클 플러그인이 자동으로 최신 가격 정보를 같은 블록에 포함시켜 청산이 정확한 가격으로 이루어지도록 보장할 수 있다. 모든 시퀀싱이 완료되면 BAM 노드는 리더에게 트랜잭션을 전송하고, 동시에 어떤 순서로 트랜잭션을 정렬했는지에 대한 암호학적 증명을 생성하여 저장한다.
실행: 현재 리더인 밸리데이터가 BAM 노드로부터 받은 트랜잭션을 지시대로 실행한다. 중요한 점은 이때 리더가 트랜잭션 순서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변경을 시도한다면, BAM 노드가 저장한 시퀀싱 증명과 일치하지 않게 되고, 이는 즉시 네트워크에 의해 감지된다. 실행이 완료되면 리더는 올바른 실행에 대한 증명을 BAM 노드에 제공한다.
공개 감사 추적: BAM 노드와 밸리데이터가 생성한 모든 증명은 온체인에 영구적으로 기록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후에라도 특정 블록에서 트랜잭션이 어떤 순서로 처리되었는지, 리더가 지시를 제대로 따랐는지 검증할 수 있다.
BAM의 이러한 구조는 기존 지토 블록 엔진에 비해 성능적인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직 공개된 벤치마크는 존재하지 않지만, TEE 내에서의 연산 오버헤드가 기존의 블록 엔진 기반 시퀀싱 메커니즘에 비해 느릴 정도로 크지 않고, 블록의 생성 자체는 여전히 솔라나의 리더 슬롯 내에서 행해져야 하므로 사용자 경험에서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록웍스 리서치(Blockworks Research)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토는 블록 엔진을 통한 수수료 커미션만으로 2024년 4분기에 약 2,500만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 이는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으로,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토콜이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다. 더욱이 지토는 솔라나 전체 스테이크의 97% 이상을 확보하여 사실상 솔라나 MEV 인프라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지토는 자신의 독점적 지위와 수익을 위협할 수 있는 BAM을 도입하려 할까?
표면적으로는 비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지토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선택한 전략적 결정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솔라나 네트워크의 MEV 환경이 지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여러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탈중앙화를 통한 이윤의 분산은 역설적으로 지토의 장기적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독점화되어 개발의 속도가 지토 랩스의 의존하게 만들기보다는 생태계를 개방함으로써 개발자들이 새로운 메커니즘을 실험하고 구현하도록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솔라나 생태계 전반을 부흥시켜 더 많은 트랜잭션을 유도하고, 지토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토는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탈중앙화에 임하려 하며, 구체적으로는 단계적으로 BAM 노드 운영을 개방하고, 코드를 오픈소스화하며, 거버넌스를 커뮤니티에 이양할 계획이다.
지토는 또한 BAM 노드의 지리적 분산을 통해 기존의 지토 블록 엔진 시스템이 가졌던 지리적 한계를 극복, 솔라나 네트워크 전체의 안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BAM은 50개 이상의 지리적으로 분산된 노드를 제3자 운영자에 의해 운영하도록 할 예정이며, 이는 현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뉴욕, 도쿄 4개 지역에 집중된 블록 엔진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다. 이는 국가적 규제 상황에서도 MEV 인프라의 안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며, 기존에 서쳐들이 블록 엔진 구동 지역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연산 환경을 두고 경쟁했던 것과는 달리 경쟁의 환경을 분산시켜 전세계 유저들이 균일한 경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BAM은 단순히 기존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창출한다. 지토 재단과 지토 랩스는 BAM과 지토 블록 엔진에서 수집된 모든 수수료를 DAO 트레저리(Treasury)로 보내는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수익 모델의 핵심은 플러그인 경제이다. 앱들이 플러그인 기능에 대해 부과하는 수수료의 일부가 밸리데이터와 지토 DAO와 공유되며, 이를 통해 전체 생태계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DEX가 플러그인을 통해 월 100만 달러의 수익을 창출한다면, 이 중 일부는 BAM 노드 운영자에게, 일부는 밸리데이터에게, 일부는 지토 DAO에게 분배된다. 모든 참여자가 생태계 성장에 기여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플러그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토콜들은 자신의 토큰 홀더들과 수익을 공유할 인센티브를 가지게 되며, 이는 솔라나 디파이 생태계의 가치 재분배로 이어지며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BAM은 TEE를 통해 트랜잭션이 실행 시점까지 암호화되어 샌드위치 공격 등의 유해한 MEV 전략을 완화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BAM이 MEV를 완전히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MEV 중에는 차익거래나 청산과 같이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형태도 있기 때문이다.
BAM의 접근법은 MEV를 "길들이는" 것이다. 유해한 형태의 MEV는 기술적으로 차단하면서, 유익한 형태의 MEV는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DEX 간 가격 차이를 해소하는 차익거래 봇은 여전히 작동할 수 있지만, 일반 사용자의 거래를 샌드위치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여기서 사용자의 트랜잭션 내용을 관측하지 않고 순수히 예측을 통해 수행하는 블라인드 MEV는 논외로 하자). 이러한 접근법은 전체 생태계의 건전성을 높이면서도 필요한 시장 기능은 유지할 수 있다.
네트워크 수준에서도 BAM은 중요한 개선을 가져온다. 현재 솔라나는 MEV 봇들의 스팸 트랜잭션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혼잡을 겪으며, 인기 있는 이벤트가 있을 때는 네트워크의 사용자 경험이 매우 악화된다.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은 각 애플리케이션이 자신만의 트랜잭션 처리 규칙을 가질 수 있게 하여, 무의미한 스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실질적으로 전체 네트워크의 처리 용량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트랜잭션 실패율도 크게 감소할 수 있다. 현재는 네트워크가 혼잡할 때 봇들이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며 블록스페이스를 독점하지만,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은 각 애플리케이션이 자신의 사용자를 위한 블록스페이스를 확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BAM은 이전에는 솔라나에서 구현이 어려웠던 새로운 유형의 디파이 프로토콜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온체인 중앙 지정가 주문장(CLOB, Central Limit Order Book)이다. CLOB는 전통 금융 시장의 핵심 인프라로, 매수 주문과 매도 주문을 가격과 시간 우선순위에 따라 매칭한다. 하지만 트랜잭션 순서를 보장할 수 없고, MEV 봇이 주문 흐름을 조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사용자들이 안정적으로 거래를 수행할 수 있는 CLOB을 구현하는 것은 현재 매우 어렵다.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은 이 문제를 해결한다. CLOB 플러그인은 주문이 제출된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고, 동일 가격의 주문은 시간 순서대로 처리되도록 보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켓 메이커를 위한 특별한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대량 주문에 대한 특별한 처리 규칙을 적용할 수도 있다.
영구선물(Perpetual Futures) 거래소도 개선을 경험할 것이다. 현재 솔라나의 영구선물 DEX들은 중앙화 거래소에 비해 여러 면에서 뒤처져 있다. 주문 체결의 불확실성, MEV 봇의 조작, 마켓 메이커를 위한 인센티브 부족 등이 주요 문제다. BAM을 통해 이러한 DEX들은 하이퍼리퀴드가 구현한 것과 같은 고급 기능들을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량 주문자가 소량 주문자를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속도 제한, 마켓 메이커를 위한 수수료 할인, 청산 과정의 공정성 보장 등이 가능해진다.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은 이더리움 생태계에서 연구와 개발을 거듭해온 어플리케이션 특화 시퀀싱(App-Specific Sequencing, ASS)과 기능적 측면에서 매우 닮아있다.
이더리움 또한 초기 블록 빌더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과 MEV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글로벌 멤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솔라나와 같이 MEV로 인한 네트워크 혼잡 문제를 겪었다. 플래시봇은 이더리움의 MEV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EV 서처들이 트랜잭션 번들을 직접 블록 빌더(Builder)에게 제출하고 오프체인 경매를 통해 블록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프로포저-빌더 분리(Proposer-Builder Separation, PBS) 구조를 제안, MEV 수익을 탈중앙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플래시봇도 초기에는 지토의 블록 엔진 중앙화 문제와 유사하게 중앙화된 릴레이어(Relayer)와 빌더의 단일 실패 지점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더리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플리케이션이 자체적으로 트랜잭션 순서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앱 특화 시퀀싱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더리움의 롤업 생태계나 플래시봇 주도 프로젝트인 수아브(SUAVE)에서 제안된 바와 같이, 각 앱(또는 앱체인)이 독립적인 시퀀서를 운영하여 트랜잭션 순서를 커스터마이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CLOB이나 영구선물 DEX 같은 복잡한 금융 앱에서 주문 매칭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MEV를 앱 수준에서 최적화할 수 있게 한다. 구체적으로, 수아브는 신뢰 실행 환경을 활용해 시퀀서가 사용자의 트랜잭션에 대해 악의적인 MEV 추출을 수행할 수 없도록 보호하며, 어플리케이션 수준에서 별도의 모듈을 통해 시퀀싱 로직을 정의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는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과 매우 흡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BAM은 이러한 구조를 솔라나의 고유한 MEV 생태계에 적용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더리움에서의 앱 특화 시퀀싱이 별도의 롤업을 통해 수행되도록 초점을 맞춘 반면, BAM은 솔라나의 단일 체인 구조에서 플러그인을 통해 유사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는 솔라나가 이더리움의 롤업 기반 모델을 넘어 체인 수준에서 앱 특화 시퀀싱을 흡수한 사례로, 양 체인 간의 다른 접근법은 결과적으로 MEV 생태계의 교차 발전 / 수렴 진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BAM의 등장은 단순히 지토라는 하나의 프로토콜의 변화가 아닌, 솔라나가 추구하는 '인터넷 자본시장(Internet Capital Markets, 이하 ICM)'이라는 장기적 비전의 큰 퍼즐 조각 중 하나이다.
Source: Anza
2025년 7월, 솔라나 생태계 핵심 기여자들은 'The Internet Capital Markets Roadmap'이라는 글을 공개하며 솔라나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했다. 이들은 "시장 미시구조(market microstructure)야말로 오늘날 솔라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단순히 빠른 처리 속도만으로는 진정한 탈중앙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이어 이를 달성하기위해서는 각 애플리케이션이 자신만의 트랜잭션 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에 의해 통제되는 실행(Application-Controlled Execution, ACE)'이 필수적임을 피력했다.
BAM은 바로 이 ACE의 첫 번째 실질적 구현체다. 드리프트(Drift), 피스(Pyth), 디플로우(Dflow)와 같은 솔라나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이미 BAM 플러그인 개발에 착수한 것은 이것이 생태계 전체의 합의된 방향임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BAM이 ICM 로드맵에서 제시한 다양한 시장 구조의 트레이드오프를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BAM의 플러그인 시스템을 통해 솔라나 생태계는 프라이버시와 투명성, 메이커와 테이커의 우선순위 등 다양한 거래 환경에 대한 선호를 실험할 수 있다. 솔라나는 단일한 시장 구조를 강제하는 대신, "수많은 실험을 동시에 실행하여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택한 것이다.
지토가 독점적 지위를 포기하고 BAM을 통해 생태계를 개방하는 것은 프로토콜 수준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는 솔라나의 장기적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체인 수준에서의 전략적 선택임 또한 이해해야 한다. 잠든 솔라나를 깨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프로토콜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공유하는 비전을 향한 첫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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