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쟁은 이제 ‘규모’가 아니라 ‘깊이’의 싸움이다. Anime.com은 초개인화된 애니 중심 플랫폼으로 방향을 틀었다.
불법 스트리밍의 거대한 수요를 흡수하며, ‘Free to Watch, Pay to Flex’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다.
아즈키는 이용자와 콘텐츠를 동시에 확보한 출발점이며, $ANIME은 팬덤을 하나의 경제로 묶는 연결고리다.
팬들은 아바타, 친구, 수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는 이용자를 플랫폼 안에 머물게 만드는 락인효과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Anime.com의 해자가 된다.
지난 20여 년간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더 많은 작품, 더 넓은 유통망, 더 방대한 카탈로그를 가진 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졌다. 그러나 규모의 경쟁은 슬슬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수만 편의 작품을 보유한 넷플릭스조차 이용자에게는 방대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이용자들은 ‘모두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서비스’를 원한다. 자신의 언어와 감정을 이해하고, 취향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플랫폼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시대의 본질이다. 앞으로는 대중 전체를 포괄하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열정과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는 플랫폼이 보다 큰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기에 적합한 시장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전 세계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며, 누적 조회수는 이미 10억 회를 넘어섰다. 글로벌 애니 팬덤은 규모가 거대할 뿐 아니라 결속력 또한 놀라울 만큼 강하다. 팬들은 단순히 작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문화를 함께 만들고 공유한다. 코스프레 행사장을 가득 메운 팬들, 피규어나 키체인, 포스터를 수집하며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그 증거다. 이처럼 강한 팬덤의 결속과 문화적 몰입은, 애니메이션이 초개인화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실험장이 되는 이유다. 이 흐름 속에서 Anime.com은 ‘모두를 위한 플랫폼’이 아닌,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맞춤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방향성을 선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크런치롤이다. 크런치롤은 애니 팬만을 위한 수직형 서비스로 출발해 글로벌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견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일본 현지 방송과 동시 송출(시뮬캐스트), 팬 컨벤션 운영, 팬덤의 언어로 소통하는 전략을 통해 신뢰를 쌓았고, 2021년 소니 인수 이후 유료 구독자는 1,500만 명을 돌파했다. 단일 장르만으로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가능함을 입증한 셈이다.
다만 크런치롤은 여전히 구독(subscription) 모델에 머물러 있다. 넷플릭스의 방식을 변형한 구조로,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반면 Anime.com은 단순한 ‘시청’이 아니라 참여(Participation) 에 초점을 맞춘다. 팬들이 콘텐츠를 함께 체험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즉, 단순한 시청자를 팬으로, 그리고 팬을 적극적인 참여자로 감화시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시청자를 보유한 플랫폼은 합법 서비스가 아니다. 9anime, HiAnime, Zoro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이 매달 수억 회의 방문을 기록하며 합법 서비스의 트래픽을 압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11월, HiAnime의 월간 방문 수는 3억 3,160만 회에 달해 크런치롤과 디즈니+를 모두 넘어섰다.
Source: 9anime
이들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선택하는 이유는 결국 지역 제한, 높은 구독료, 과도한 광고 등으로 합리적 대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층이나 신흥국 이용자들에게 매달 10달러의 구독료는 부담이 된다. 결과적으로 불법 스트리밍은 이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왔다.
Anime.com은 이러한 소비자들을 타겟한다. 가격은 무료로 두되, 더 나은 품질, 풍부한 커뮤니티 경험, 그리고 ‘소유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유료 이용자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도 포섭하지 못한 무지불(non-paying) 시청층을 합법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Anime.com은 각 작품의 정식 판권을 확보한 뒤 이를 무료로 공개하는 방식을 택해, 불법 시청자들이 합법적 환경에서 동일한 접근성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즉, 넷플릭스나 아마존, 디즈니 같은 기존 사업자들이 외면한 시장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단기 수익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넓은 고객 도달 범위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Anime.com의 비즈니스 구조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무료 유입(Free & Ad-Free): 광고 없이 무료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할 수 있다.
참여 확대(Community Layer): 실시간 채팅, 라이브 워치파티,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등으로 시청을 사회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수익화(Digital Collectibles): 팬들은 카드, 뱃지, 아바타 같은 디지털 아이템을 신용카드나 $ANIME 토큰으로 구매한다. 이 아이템들은 K-pop의 포토카드나 포트나이트의 스킨처럼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자 ‘소속의 상징’이다.
이 구조는 Free to Watch, Pay to Flex 모델로 요약된다. 시청은 무료지만,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험은 유료로 제공된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관심과 시간을 제공하고, 일부 핵심 팬들이 자발적 소비로 생태계를 지탱한다. 이는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검증된 모델이다. 포트나이트는 무료 게임이지만 스킨 판매로 연간 수십억 달러를 벌고, K-pop은 음악보다 포토카드와 한정판 앨범으로 더 큰 수익을 낸다. Anime.com은 이러한 ‘팬덤 기반 경제’를 스트리밍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Anime.com은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은혼(Gintama) – 3학년 Z반 긴파치 선생 (Mr. Ginpachi’s Zany Class)를 선택했다. 10월 7일 열린 첫 라이브 워치파티에는 약 1,600명이 동시에 접속했으며, 한정판 디지털 컬렉터블은 상영 시작 전 완판됐다. 이후 에피소드 공개 일정에 맞춰 재입고가 예고되면서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시청을 사회적 경험으로 바꾸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함께 보고,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행위가 플랫폼의 차별화를 만든다. Anime.com은 단순히 애니 콘텐츠를 송출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팬들이 몰입하고 관계를 맺는 참여형 이벤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Source: anime.com
Anime.com은 초기 이용자와 콘텐츠 파이프라인을 확보했으며, 그 중심에는 Web3 기반 글로벌 커뮤니티 아즈키가 있다. 아즈키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작사 Azuki Studios를 운영하며, 커뮤니티 중심의 IP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아즈키 커뮤니티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자 수집과 자기표현에 익숙한 집단으로, Anime.com의 초기 팬덤 형성에 최적화되어 있다. 동시에 Azuki Studios는 외부 판권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IP를 제작함으로써 콘텐츠 공급망을 자립적으로 운영한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The Anthology의 첫 번째 에피소드 Enter The Garden: The Waiting Man은 타니구치 고로 감독(코드 기어스, 원피스 필름 레드)이 연출을 맡아 유튜브 220만 회, 웨이보 600만 회를 기록했다. 후속작 Fractured Reflections에는 Dentsu, IMAGICA Infos, Qzil.la 등 주요 제작사가 참여했으며, 유튜브 조회수는 240만 회를 돌파했다.
Source: Youtube
애니메이션 판권 시장은 소수의 대형 플랫폼이 장악하고 있다.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타이틀을 독점하고 있어, 후발 주자가 이들과 경쟁하여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에 Anime.com은 정면 승부 대신, 다른 방식으로 경쟁한다. 그들의 무기는 규모가 아닌 참여도(engagement)다. 기존 플랫폼이 콘텐츠의 양과 시청자 수를 강조했다면, Anime.com은 ‘참여의 질’을 내세운다. 시청 시간이 아닌 실시간 채팅, 워치파티 참여율, 컬렉터블 거래량 같은 지표를 통해 콘텐츠가 사회적 이벤트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할 예정이다.
은혼 런칭은 그 첫 시험대였다. 대형 판권 확보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Anime.com은 스핀오프·단편·지역별 판권·미공개 스페셜 등 틈새 콘텐츠 조합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동시에 Azuki 오리지널 제작 역량을 강화해 판권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정착되면 Anime.com은 단순한 배급 플랫폼을 넘어, 참여형 스튜디오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ANIME은 현재 디지털 컬렉터블·굿즈 결제에 쓰이는 거래 레이어로 설계되어 있으며, 향후에는 워치파티 참여, 아바타 구매, 커뮤니티 내 교환 등 팬 활동 전반을 잇는 공통 화폐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더 넓게 보면 $ANIME은 Azuki IP, Studio Azuki, TCG, Anime.com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며, Azuki가 구축하는 세계관을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엮는 문화적 통화(culture coin)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ANIME의 실질적인 가치 anime.com 과 아즈키 사업 전반의 성과, 그리고 팬덤의 참여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Anime.com의 가설은 이용자 수보다 참여의 깊이가 더 큰 가치를 만든다는 점에 있다. 넷플릭스는 2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용자당 월평균 매출(ARPU)은 10달러 수준에 머문다. 반면 Anime.com은 더 작은 사용자 기반으로도 팬 1인당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관계의 깊이다. 팬들은 아바타, 친구, 수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는 이용자를 플랫폼 안에 머물게 만드는 강력한 락인효과로 작용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커뮤니티 결속을 강화한다. 결국 이런 구조적 유대감이 Anime.com의 해자가 된다.
결국 Anime.com은 초개인화 미디어(hyperpersonalized media)의 실험장이자, 참여를 경제로 전환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이다. 각 이용자의 아바타, 수집품, 채팅 기록은 하나의 개인화된 팬덤 서사를 만든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그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은 점점 더 작은 커뮤니티 단위로 분절되고 있다. 진정한 가치는 ‘모두에게 조금 중요한 플랫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플랫폼’ 에서 태어난다. Anime.com은 바로 그 가능성과 깊이에 베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