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가 크립토 시장을 휩쓸던 시기, 많은 사람들은 NFT의 가치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던 비유가 바로 카드 트레이딩 시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NFT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NFT가 지닌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희소성, 소유권, 거래 가능성—을 이미 내재하고 있던 시장이 바로 카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 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Collector Crypt($CARDS)다. Collector Crypt는 실물 트레이딩 카드를 디지털 자산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으로, 이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Collector Crypt는 실물 카드를 제휴 금고에 보관한 뒤 이를 토큰화하고, 해당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개인 간 거래에 의존하던 기존 카드 거래 시장(예: eBay) 대비 훨씬 높은 신뢰도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Collector Crypt와 같은 TCG 마켓플레이스의 수익원이 카드 거래 중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매출은 카드 거래 자체보다도, 카드를 뽑는 서비스인 이른바 가챠(gacha)에서 발생한다. 사용자는 일정 금액을 지불해 가챠 팩을 구매하고, 이를 개봉함으로써 자신이 지불한 금액보다 더 높은 가치의 카드를 획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기까지는 여타 다른 가챠 프로덕트와 큰 차이점이 없다.
여기서 Collector Crypt는 한 단계 더 진화된 구조를 도입했다. 가챠 바이백(gacha buyback)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바이백 구조는 사용자가 가챠 팩을 개봉한 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해당 카드들을 즉시 Collector Crypt에 되팔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시장가 대비 낮은 가격에 판매해야 하지만, 즉각적인 유동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이 기능은 많은 유저들에게 사실상 기본값처럼 활용되고 있다. 유저들은 할인된 가격으로 자신들의 카드를 되팔아 다시 가챠 팩을 구매한다. 이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카드가 나올 때 까지 계속해서 카드를 되팔고 가챠팩을 뜯는 것을 반복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Collector Crypt의 매출은 계속 우상향 하고있고, 이번주에만 약 1900만달러가 Collector Crypt의 가챠팩을 구매하는데에 사용되었다. Collector Crypt은 가챠 프로덕트를 통해 이번주에만 약 19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Source: Blockworks
크립토 시장에서 주간 190만 달러의 매출을 낼 수 있는 프로덕트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Collector Crypt가 이번에 보여준 성과는 분명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 매출의 원천이 과연 TCG에 대한 본질적인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분명히 해야한다.
필자의 관점에서 현재의 Collector Crypt는 TCG의 외형을 쓴 새로운 형태의 카지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돈을 지불해 가챠 팩을 구매하고, 카드를 뽑은 뒤 그 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즉시 해당 카드를 되팔고(할인된 가격에), 그 자금으로 다시 카드가 담긴 가챠 팩을 구매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기존 카드 시장에서 형성되어 온 ‘진짜’ 수요는 이러한 플리퍼(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카드를 구매하는 사람들)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통적인 TCG 시장의 수요는 실제 게임 플레이를 위해 카드를 필요로 하는 플레이어들, 순수한 수집 욕구에 기반한 컬렉터들, 그리고 지금처럼 재판매를 목적으로 한 참여자들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해왔다. 반면, 현재 Collector Crypt와 같은 크립토 기반 TCG 프로덕트에서 관측되는 수요는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에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으며, 이는 크립토 TCG 시장이 아직 기존 카드 시장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고,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방증한다.
필자는 이러한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플레이어가 등장해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크립토 TCG 시장이 구축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크립토 TCG에서 거래되는 카드들이 단순한 거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유틸리티를 보장해야 하며, 전반적인 UX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동시에 크립토 TCG 플랫폼이 단순한 투기판이라는 인식 또한 점진적으로 해소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Collector Crypt가 보여준 성과는 분명 주목할 만하지만, 장기적인 프로덕트 비전을 바탕으로 기존 카드 시장의 수요를 실제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현재의 매출 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는 곧 이러한 한계들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한 더 진화된 형태의 프로덕트가 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크립토 TCG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앞으로의 전개를 지속적으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