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L은 여전히 디파이 생태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대표 지표지만, 자산 가격에 민감하고 유동성의 실질적 활용 가능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다. 이에 따라 단순한 자금의 락업 규모보다는, 그 유동성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양한 프로토콜 간에 활용되고 연결될 수 있는지, 즉 ‘유동성 가용성’과 ‘연결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Suilend와 STEAMM은 단순히 두 개의 별개 프로토콜이 아닌, 수이 블록체인 위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하는 대표적 디파이 스택의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슈퍼플루이드 AMM, 모듈화된 쿼터 구조, Seamless한 유동성 전이 등 수이의 인프라적 특성과 팀의 설계 철학이 결합된 구조적 혁신을 통해, 두 프로토콜은 유동성 활용도와 사용자 경험 모두에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전략의 중심에는, Solana 시절부터 검증된 경험을 가진 팀의 일관된 실행력과 수이의 기술적 기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의 접근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팀이 단순히 모방하기 어려운 고유한 시너지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루틀렛, 스프링수이, 어텐션 등 다양한 제품들이 하나의 큰 전략적 프레임 안에서 결합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수이 생태계 내에서 가장 탄탄하고 독립적인 디파이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TVL(Total Value Locked)은 특정 블록체인에 얼마나 많은 유동성이 모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로, 현재도 업계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각 체인의 디파이 생태계 규모를 비교하거나, 특정 프로토콜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고 있는지를 파악할 때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TVL이라는 지표에는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로, TVL은 달러 기준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해당 블록체인의 토큰 가격이 상승하면 실제 유동성은 그대로더라도 수치상으로는 유동성이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실제 자본 유입 없이도 지표가 왜곡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유동성이 특정 프로토콜에 편중되어 있을 경우, 체인 전체가 유동성이 풍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프로토콜에 잠겨 있는 자산은 일반적으로 다른 프로토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TVL은 체인의 ‘실질적인 유동성 가용성’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수치만 높다고 해서 생태계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힘들며, 디파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TVL이 아니라 유동성의 활용성과 연결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표와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필자가 유동성 가용성에 대한 리서치를 작성했을 때도 지적한 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동성 가용성은 단순 락업(Lock-up)된 자금량이 아니라 실제로 거래에 활용 가능한 유동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유동성이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즉, 앞으로 디파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TVL을 단순히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프로토콜에 묶여 있는 유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다. TVL이 실제로 블록체인 인프라 내 유동성으로 기능하려면, 탈중앙화 거래소가 렌딩 프로토콜의 유동성을 활용하거나, 반대로 렌딩 프로토콜이 거래소의 유동성을 끌어다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개의 독립적인 스마트 컨트랙트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지 않고, 각 프로토콜이 다른 이해관계자에 의해 운영될 경우 유동성 공유에는 여러 가지 리스크가 따른다.
그런데 만약 스마트 컨트랙트 간의 심리스한 상호 결합(Atomic Composability)이 가능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렌딩 프로토콜을 운영해 본 팀이 새롭게 탈중앙화 거래소를 출시하고, 두 프로토콜 간 유동성 공유를 시도한다면 어떨까? 팀의 역량이 충분하다면 이는 필자가 앞서 말한 ‘이상적인 디파이 환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실제로 수이(Sui) 생태계에서 유동성 효율화를 시도하고 있는 사례, 즉 Suilend와 STEAMM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Suilend는 현재 수이에서 가장 큰 렌딩 프로토콜이며, 최근에는 탈중앙화 거래소 STEAMM까지 출시하면서 디파이의 양대 축인 ‘렌딩’과 ‘거래소’를 모두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사례를 중심으로, 하나의 성공적인 앱이 다른 분야로 확장될 때 어떤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지, 이들이 유동성 가용성을 어떻게 극대화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이 블록체인이 왜 이러한 구조를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Source: DeFiLlamma
수이랜드가 지금이야 수이 생태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랜딩 프로토콜이지만, 수이가 메인넷을 런칭하던 시절에만 하더라도 아무도 수이랜드를 몰랐다. 초창기 수이의 랜딩 프로토콜은 대표적으로 나비(NAVI)와 스캘럽(SCALLOP)이었고 수이랜드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이 둘이 수이 생태계에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이랜드는 누구보다 빠르게 수이 생태계를 장악하면서 TVL과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지금은 명실상부 수이 디파이 생태계를 대표하는 프로토콜이 되었다. 누구보다 슬로우 스타터였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생태계를 장악한 수이랜드의 비결은 무엇일까? 하나씩 살펴보도록하자.
Source: Solana Floor
수이랜드가 처음 수이 생태계에 발을 디뎠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팀과 파운더의 경력이었다. 이들은 이미 대표적인 Non-EVM 생태계인 솔라나(Solana)에서 성공적인 랜딩 프로토콜을 런칭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프로젝트가 바로 Save(구 Solend)였으며, Save는 솔라나 디파이 섬머 초기 시절에 TVL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디파이 전체 1위를 기록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트랙 레코드는 유저들에게 수이랜드를 신뢰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1등을 해봤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은, 한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빌딩을 지속해온 팀이 유사한 유형의 프로덕트를 수이에서 새롭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강한 신뢰의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Save를 개발하며 쌓은 솔라나에서의 경험은, 수이에서의 빌딩에도 분명히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특히 솔라나의 Rust와 수이의 Move 언어는 프로그래밍 철학과 안전성 개념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Rust 기반 시스템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팀이라면 Move 기반 체인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고도화된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수이랜드를 기대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Source: Rootlets
또 하나 중요한 이유를 꼽자면 바로 파운더인 루터의 존재다. 루터는 수이 생태계의 그 어떤 파운더들보다 자신의 브랜딩에 큰 힘을 쏟은 인물이다. 그는 트위터 플레이가 가장 활발한 파운더 중 한 명으로, 본인이 Solana와 Sui 양쪽에서 모두 프로토콜을 직접 개발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두 체인의 개발 환경 차이, 왜 Solana 다음으로 Sui를 선택했는지 등 오직 루터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인사이트를 자주 공유해왔다(특히 2025년에 열린 두 번째 수이 베이스캠프에선 솔라나와 수이 생태계의 개발 도구와 환경들을 비교하는등 대외적으로 수이의 앰배새더를 자처했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Sui 생태계 안의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체인 커뮤니티의 개발자나 투자자들까지도 루터의 글을 즐겨보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Suilend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와 관심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크립토 인더스트리에서 ‘어텐션(attention)’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루터의 이러한 퍼스널 브랜딩 전략은 분명히 Suilend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Source: Rootlets
또한 루터가 주도한 NFT 프로젝트 ‘루틀렛(Rootlet)’ 역시 브랜딩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초반에는 민팅 가격이 다소 높다는 이유로 커뮤니티 내에서 비판이 있었지만, 이후 $FUD와 같은 수이 생태계를 대표하는 밈코인의 에어드롭을 시작으로 다양한 생태계 토큰들이 루틀렛에 에어드롭되면서, 루틀렛 NFT의 바닥가는 200 SUI를 넘기며 프라임 머신과 같은 대표 NFT 프로젝트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큰 상승세를 보여왔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상승세가 Suilend의 거버넌스 토큰인 $SEND의 상당량이 루틀렛 홀더에게 에어드롭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 덕분에 루틀렛 NFT의 가격이 비싸다는 초기의 비판 여론은 완전히 잠재워지게 되었다.
루틀렛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루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생태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수이 생태계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물론 외부 인사들이 루틀렛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진짜로 수이 생태계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는지는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루틀렛은 일부 유명 인사에게 커스텀 루틀렛을 ‘명예 루틀렛’ 형태로 제작해 증정했고, 여기에 Solana의 대표 인플루언서 Mert와 Mechanism Capital의 Andrew Kang 같은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Source: Suilend
물론 수이랜드 팀이 수이에서 빌딩을 시작하기 이전, 솔라나에서 대규모 랜딩 프로토콜을 구축한 경험이나, 루터 개인의 브랜딩 전략이 수이랜드의 점유율 확대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요소들은 초기 유저 유입에 있어 분명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덕트 자체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사용자들이 앱을 설치하고 사용하게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작 제품이 별로라면 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곧바로 이탈해버릴 것이다. 프로덕트의 성공을 논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지표가 '리텐션'이라면, 이 리텐션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프로덕트의 퀄리티다.
이 점에서 수이랜드는 언제나 수이의 흥미로운 기술들을 가장 먼저 도입해 온 프로토콜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포지션을 NFT화하는 구조(물론 현재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도입한 기능이지만), 단 한 번의 트랜잭션으로 자산을 스왑하고 이를 즉시 예치하는 기능(수이의 PTB를 활용한 구조), 그리고 자사 LST(스테이킹 유동화 토큰) 프로젝트를 직접 런칭해 예치 수단으로 통합하는 시도 등이 있다. 이처럼, 수이랜드 팀은 거의 매주 새로운 기능이나 제품을 내놓으며, 이를 수이랜드에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유저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리텐션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수이랜드는 비록 수이 생태계 내 다른 디파이 프로토콜들보다 런칭 시점은 다소 늦었지만, 팀 고유의 속도감 있는 실행력, 기민한 브랜딩 전략, 그리고 제품의 완성도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지금은 수이를 대표하는 디파이 프로토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단순히 렌딩 프로토콜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수이랜드 팀은 이제 STEAMM(스팀)이라는 또 하나의 프로토콜을 통해 자신들의 디파이 비즈니스 외연을 한층 더 확장하려 하고 있다.
STEAMM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프로젝트 역시 수이랜드와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로 설계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두 프로토콜은 각각 독립된 기능을 수행하지만(랜딩과 거래라는), 한 프로토콜의 성공이 다른 프로토콜에도 직접적인 수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방식은, 기존에 루터와 수이랜드 팀이 새로운 프로덕트를 런칭해 온 패턴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즉, 단순히 두 개의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전략적으로 결합된 디파이 스택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STEAMM은 그냥 얼핏보면 일반 DEX들과 다름 없어 보이지만, 그 내부 구조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 우선, 수이 최초의 슈퍼플루이드 AMM(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후술하도록 하겠다)이라는 점, 그리고 OMM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마켓 메이커 모델을 통해 특정 거래에 한해서(거래 규모가 큰 경우)기존 CPMM대비 훨씬 더 효율적인 설계를 했다는 점이 기존 탈 중앙 거래소 모델들과 그 궤를 달리하고 리서처의 입장에서도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럼 한 번 STEAMM의 핵심 기능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Source: STEAMM Doc
여태까지 크립토 업계에서는 놀고있는 유휴 유동성을 어떻게 자본 효율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대표적으로 필자가 작성한 유동성 가용성에 대한 연구는, 단일 인프라에서 놀고있는 유동성을, 정말 해당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앱에 끌어다 쓸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연구었다. 필자가 해당 아티클에서도 언급했듯, 유동성 가용성을 인프라 레벨에서 확보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수이랜드 팀과 STEAMM팀은 자신들이 만든 앱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고안해낸 슈퍼플루이드 AMM을 통해 어렵게만 여겨졌던 유동성 가용성 문제를 일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 AMM 모델은 스왑에서 쓰이지 않는 유동성을 처리할 방법이 없고 지속적으로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지만, 슈퍼블루이드 AMM은 해당 유동성(스왑에 쓰이지 않아서 놀고있는 유동성)을 랜딩에 자동 예치하여 추가적인 이자를 발생시키는데에 쓰인다. 이는 기존의 AMM 모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평가될 수 있는데, 기존 AMM 모델에선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유동성풀에 자산을 예치하고, 해당 풀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인센티브로 받아가는 것이 주 인센티브 모델이지만, 슈퍼플루이드 AMM에서는 해당 수수료와 더불어서 랜딩 프로토콜에 맡겨서 발생한 이자까지 유동성 공급자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AMM대비 훨씬 더 매력적인 이자 수익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추가적인 이자가 발생하면, 유동성 공급자들 입장에서 슈퍼플루이드 AMM의 풀아 기존 AMM 풀보다 더 수익성이 좋다고 판단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존 풀보다 슈퍼플로이드의 풀에 더 많은 유동성이 몰릴 것이다. 유동성이 제일 중요한 DEX 경쟁에서 STEAMM이 점진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설명한 슈퍼플루이드 AMM이야말로 STEAMM이 여러가지 프로덕트를 같이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프로덕트이면서, 수이와 같은 모놀리틱 형태의 블록체인 설계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STEAMM이라는 프로덕트 이전에, 수이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으면서도, 다른 두 가지 스마트 컨트랙트가 심리스하게 상호결합이 되어야만 가능한 피처인데 수이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상호결합하는데에 있어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떄문이다.
물론 STEAMM이 Suilend와의 심리스한 결합을 통해 기존 DEX들과 비교해 확보할 수 있는 구조적 이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STEAMM의 유일한 차별점은 아니다. 이들이 ‘차세대 DEX’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STEAMM만의 모듈화된 Quoter 설계가 자산의 특성과 풀의 목적에 따라 거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Quoter’에 대한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AMM(Automated Market Maker) 모델에서 Quoter란 사용자가 특정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스왑할 때 예상되는 교환 비율과 슬리피지를 계산해주는 역할을 하는 컴포넌트다. 중요한 점은, 풀마다 거래하는 자산의 특성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Quoter를 모든 풀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거래 효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STEAMM은 풀의 유형에 맞게 각각 최적화된 Quoter를 적용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CPMM, vCPMM, OMM이 있다.
CPMM(Constant Product Market Maker)은 가장 기본적인 스왑 공식으로, 우리가 잘 아는 x*y=k 형태의 수식에 기반한다. 이 Quoter를 사용하는 풀에서는 거래하려는 두 자산이 모두 필요하며, 일반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큰 자산 간 거래에 가장 적합하다.
vCPMM의 ‘v’는 Virtual(가상)의 약자로, 한쪽 자산만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풀을 구성할 수 있도록 가상의 리저브를 설정하는 구조다.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CPMM처럼 x * y = k 공식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한쪽 자산만을 기반으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밈코인이나 신규 토큰을 론칭할 때 유용한 모델로 활용된다.
또한, 기존 CPMM에서는 풀 생성 시 시작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 반드시 호가 자산(quote asset)을 함께 예치해야 했던 반면, vCPMM은 호가 자산 없이도 시작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신규 토큰 론칭 시 흔히 발생하는 ‘스나이핑(sniping)’ 현상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실제로 InfoFi 팀이 런칭한 $ATTN 토큰은 vCPMM 구조를 기반으로 출시되었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런치패드 예: 펌프펀(Pump.fun) 등을 통한 방식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스나이핑 리스크 없이 토큰을 공개할 수 있었다.
OMM은 Oracle Market Maker의 약자로, 풀 내부의 리저브 비율이 아닌 외부 오라클(Pyth)의 실시간 가격과 변동성 기반 동적 스프레드를 조합해 가격을 산출하는 구조다. 피스 오라클은 0.25초에서 1초 간격으로 실시간 가격을 업데이트하고, 트레이더가 입력한 체결 요청량과 자산의 변동성에 따라 스프레드를 계산한다. 이 스프레드와 오라클 가격을 바탕으로 최종 체결가를 계산하고, 여기에 동적 수수료(기본 수수료 + 일부 스프레드)가 적용되어 거래가 실행된다. 사용자는 수이 지갑에서 한 번만 승인하면 거래가 체결된다.
OMM 구조는 기존 AMM 방식 대비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가격을 오라클이 제공하므로 풀 내부 리저브로만 가격을 산정하는 모델보다 비영구적 손실(Impermanent Loss)이 적다. 둘째, 오라클 가격 + 스프레드 기반 체결 방식으로 인해 슬리피지가 현저히 줄어든다, 특히 대형 거래에서도 안정적인 체결이 가능하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OMM을 유니스왑 V3의 집중 유동성 포지션과 비교해보면, Uniswap V3의 경우 포지션이 시장 가격 범위를 벗어나면 유동성이 더 이상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포지션 관리가 필요하지만, OMM에서는 쿼팅이 시장 가격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정되기에 사용자는 별도의 관리가 없이도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STEAMM은 자산의 특성과 사용 목적에 따라 최적화된 Quoter를 제공함으로써, 토큰 발행자, 거래자, 유동성 공급자 모두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단순히 DEX 하나를 새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듈화된 설계를 통해 다양한 유스케이스를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STEAMM과 수이랜드의 사례는 어찌보면 왜 미스텐랩스가 새로운 레이어1을 만들고자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이의 핵심 컨트리뷰터인 미스텐 랩스의 CTO인 샘 블랙시어(Sam Blackshear)는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의 효용성이 플랫폼 위에서 상태를 공유하며 작동하는 프로그램들이 서로 원자적으로 접근하며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데에 있다.”고 했는데, 어찌보면 이번 STEAMM의 슈퍼플로이드 AMM은 두 개의 독립된 프로토콜들이 서로 심리스하게 상호작용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수이가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으로써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STEAMM의 핵심 기능들이 작동 가능한 이유도, 수이의 기술적인 차별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그 이유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수이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수이에서 빌딩하는 빌더 입장에서도 수이의 가장 큰 강점을 꼽으라면 바로 PTB를 뽑을 것이다. PTB를 쉽게 설명하면, 한 번의 서명과 트랜잭션비 지불로 최대 1,024개의 Move 함수 호출을 순차 실행하고, 해당 호출들이 전부 성공해야지만 체인에 기록되는 원자성을 보장하는 수이만의 피처다. 물론 솔라나와 다른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에서도 트랜잭션 묶음 처리가 가능하긴 하지만, 솔라나의 경우 CU(compute unit)제한이 있기 때문에(솔라나의 경우 연산의 폭주를 막고, 네트워크의 안정성 보장을 위해 CU 제한을 걸어뒀지만, 수이의 경우 가스 예치(Pre-Payment)모델을 사용해서 CU 없이도 네트워크 방어가 가능하다)수이에서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트랜잭션 원자성 보장이 어렵다.
STEAMM에서 구현된 구조를 그대로 Solana에서 재현하려고 할 경우, 트랜잭션 크기 제한 때문에 최소 3개 이상의 트랜잭션으로 나눠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 작업은 원자적(atomic)으로 실행되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를 Solana에서 구현하려면 Jito 번들(Jito bundles)을 활용해야 한다.
문제는, Jito 번들이 블록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해당 슬롯의 리더가 Jito를 사용 중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는 곧, Jito 번들이 항상 블록에 포함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실제 처리까지 예상보다 더 긴 지연(latency)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Solana 위에서 구현하려면 더 많은 트랜잭션 분할, 번들 구성, 리더 조건 충족 등 여러 복잡한 제약 조건을 고려해야 하며, 이는 Sui에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개발 및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STEAMM의 경우 수이 PTB가 있기 때문에 STEAMM에서 스왑이 발생되면, 해당 스왑에서 발생하는 유휴 잔액을 탐지하고, 수이랜드에 해당 자산을 빠르게 입금해서 수수료와 이자 정산을 유저의 서명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트랜잭션의 원자성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파이널리티가 느리다면 빠르게 유휴 자산을 활용하는 전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이의 경우 미스티세티를 통해 약 400ms라는 레이턴시를 구현했기 때문에 스왑과 동시에 바로 유휴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STEAMM의 슈퍼플루이드 AMM은, 왜 짧은 레이턴시가 단순히 유저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빌더 입장에서도 중요한 자산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이가 가지고 있는 객체 중심의 스토리지 모델도 한몫한다. 수이에서 AMM 모델을 보면, 자산이 모여있는 풀의 경우엔 공유 객체로(Shared Object), LP 포지션은 소유 객체(Owned Object)로, 각자 독립적이다. 이 뜻은 프로토콜 딴에서 수천건의 스왑이냐 예치를 실행하더라도 트랜잭션들간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계정이나 슬롯을 공유하는 EVM의 경우 동일 블록에서 다중 상태 변경시에 낙찰 문제나 락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애초에 STEAMM이 구현한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STEAMM과 수이랜드는 수이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수이 인프라가 다른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들 대비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기능들을 통해서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블루핀과 함께 수이의 플래그십 디앱의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 수이 생태계를 리서치하고 글을 써왔지만, 리서처이기 이전에 수이 생태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유저로서, 지난 2년간 수이의 다양한 앱들을 직접 사용해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Suilend와 그 팀이 만들어가는 흐름에 꾸준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Suilend는 사실 그들이 그리는 더 큰 그림에서 보면 하나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이들은 Suilend를 시작으로 루틀렛, 스프링수이(수이의 대표적인 LST 프로덕트), STEAMM, 그리고 최근 수이 생태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인포파이 프로덕트인 어텐션까지, 다양한 제품을 실험하고 실제로 생태계에 출시하며 수이 디파이 전반의 활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이들의 방향성이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지표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Suilend는 수이 디파이 생태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치를 보여주는 렌딩 프로토콜이고, 루틀렛은 수이 NFT 프로젝트 중 시가총액 기준 세 번째에 해당한다. 스프링수이는 수이 내 LST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STEAMM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이 전체 DEX 거래량 기준으로 상위 6위에 오르고 있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이들이 전개한 각각의 이니셔티브들이 겉으로는 독립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교하게 설계된 내부 연결성과 시너지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루틀렛 NFT를 활용한 커뮤니티 빌딩과 Suilend 간의 연계, Suilend 내에서 스프링수이 자산에 대한 렌딩 마켓 개설, 그리고 STEAMM에서 발생한 유휴 자산을 Suilend로 자동 이동시켜 추가 수익을 얻는 구조 등은 모두 하나의 통합된 전략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수이처럼 모놀리틱한 블록체인의 구조적 강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전에서 구현해내고 있는 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이 시너지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해자를 형성하게 되며, 이는 결국 어떤 외부도 쉽게 복제하거나 포크할 수 없는 견고한 스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이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든, 반드시 관심 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커질수록, 그 자체로 수이 생태계 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것이며, 결국에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디파이 스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