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V-Burn은 네트워크에서 추출된 MEV를 특정 주체에게 돌아가지 않고 소각되도록 설계한 디자인이다.
MEV-Burn이 도입된다면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밸리데이터들 간 수익의 평준화, 합의 레이어 공격 유인 약화, 검열 저항성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
이더리움과 여러 롤업 네트워크에서는 체인에서 창출되는 간접적인 수익인 MEV(Maximal Extractable Value)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몇년째 활발히 고민되어왔다. 이더리움이나 플래시봇 커뮤니티에서 MEV 재분배 방법과 관련해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고,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MEV-Boost를 포함해 MEV-Share, MEV smoothing 등이 그 예시이다. 그 중 MEV burn은 이더리움에서 추출된 MEV를 소각시키자는 아이디어로 예전부터 비슷한 형태의 소각 메커니즘이 종종 논의되어 왔으며, 작년 10월 eth.research에 처음 MEV burn이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되었다. 이후 몇 달 간 이더리움 재단 내부에서 프로토콜이 발전이 된 것으로 보이고, 며칠 전 EF 리서처 Justin Drake가 조금 더 구체화된 디자인을 소개하며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다.
본 글에서는 MEV burn이 등장한 배경과 함께, 소개된 MEV burn이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또한 MEV burn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MEV가 추출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User들이 트랜잭션을 발생시키고 (e.g. Swap) Searcher들이 User 트랜잭션들과 자신의 트랜잭션을 조합하여 MEV bundle (e.g. arbitrage)을 만든다. 그리고 Builder가 MEV bundle을 포함한 블록을 만들어서 Validator에게 전달하거나, Validator가 최종 블록 내용을 직접 만든다.
현재까지 논의되어온 주요 MEV 재분배 디자인인 MEV-Boost, MEV-Share, MEV smoothing, MEV burn 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추출된 MEV를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지에서 생긴다.
현재 가장 흔히 쓰이는 MEV-Boost는 Searcher들끼리 MEV bundle을 경쟁시켜서 Validator에게 bidding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MEV-Boost 상에서는 Searcher와 Validator가 대부분의 MEV를 가져가고 있다 (실제로 Builder가 가져가는 양은 Searcher나 Validator에 비해 미미하므로 생략한다). MEV-Boost는 PBS(Proposer-Builder Separation)를 프로토콜 외부에서 구현한 것이고, PBS를 이더리움 프로토콜 내로 들여오려는 시도인 In-protocol PBS (또는 enshrined PBS) 또한 MEV의 흐름 양상이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이더리움 네트워크 상황이나 디파이 서비스들의 수요에 따라 MEV의 기회와 양이 항상 다르기 때문에, 블록마다 MEV의 편차가 꽤 큰편이다. 그래서 운이 좋은 Validator와 그렇지 않은 Validator 간에 유의미한 수입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MEV 리워드 편차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고안되고 있는 것이 MEV smoothing이다. MEV smoothing 또한 MEV-Boost와 비슷하게 Searcher와 Validator가 MEV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최근에 소개된 MEV-Share는 MEV를 User에게 돌려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다. MEV가 User에게 돌아가도록 의도한 첫 번째 디자인이고, Searcher와 Validator도 물론 인센티브 구조상 일부를 가져가게 된다. (참고: “MEV-Share : 유저들을 위한 MEV 재분배 메커니즘”)
그리고 이번 글에서 소개할 MEV burn은 추출된 MEV를 특정 주체에게 돌아가지 않고 소각되도록 설계한 디자인이다. MEV burn을 간단히 이해하면, 블록을 만드는 Builder들끼리 블록에 대해 bidding 경쟁을 하게 하고, 가장 높은 bid 중 일부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MEV를 소각시키는 것의 의미는 네트워크 전체에 MEV를 환원하는 것과 같다. 소각이라는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이더리움 홀더들에게 각 지분에 비례해서 이더리움을 지급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각 이더리움 홀더들이 전체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유지한 채, 이더리움의 발행량을 줄여 조금 더 희귀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커뮤니티에서 소개된 MEV burn의 동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MEV burn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현재, 공개된 설명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필자의 추측을 추가했기 때문에 실제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MEV burn 디자인은 아직까지는 생소한 In-protocol PBS 디자인과 매우 유사한데, In-protocol PBS는 MEV-Boost를 이더리움 합의 레이어로 들여온 형태이다. MEV-Boost에서 블록 생성 작업에 대해 builder에게 외주를 맡기는 형태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relay를 통해야 했다면, In-protocol PBS에서는 builder가 이더리움의 프로토콜 내부로 완전히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논의되는 In-protocol PBS 디자인인 two-slot 디자인에서는 Builder의 블록과 Proposer의 블록 두가지가 따로 존재한다.
MEV burn의 동작과정을 아래 그림처럼 시간순서대로 나타내면, 한 slot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크게 6단계로 나눌 수 있다. 예시에 들어가기에 앞서 큰 그림을 보면 다음과 같다:
Bidding 단계에서는 Builder들이 후보 블록을 만들고 Proposer에게 블록 생성 권리에 대해 bidding을 하는 과정에서 payload base fee와 tip을 제시한다. 여기서 payload base fee는 소각하고자 하는 이더리움의 양이고, tip은 Proposer에게 지급되는 이더리움의 양이다.
Attester들이 이를 관찰하고 있다가 base fee중 가장 높은 값을 payload base fee floor로 간주한다.
Proposal 단계에서 Proposer가 블록을 고를 때 최소 payload base fee floor 이상의 base fee를 가진 블록을 선택한다.
Attester들은 3번 단계에서 payload base fee floor 이상의 base fee를 가진 블록이어야만 블록에 attestation을 진행할 수 있다.
Reveal Payload 단계에서는 선택된 블록을 만든 Builder가 앞서 제시한 블록의 내용을 전파한다.
마지막으로 Attester들이 이를 검증한다.
아래 예시를 통해 MEV burn의 동작 과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Bidding 단계에서 4명의 Builder(A, B, C, D)가 블록 생성 권리에 대해 bid를 제시하는데, bid에는 소각할 양인 payload base fee와 Proposer에게 주는 tip이 포함된다. EIP-1559에서의 base fee는 네트워크에서 자동으로 정해졌지만 여기서는 Builder가 직접 지정한다.
Builder들이 제시하는 payload base fee와 tip은 (MEV-Boost와는 달리)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체에 전파되는 정보들이기 때문에 Attester들도 이를 볼 수 있다. Attester들은 각자 관찰한 가장 높은 payload base fee를 payload base fee floor로 정한다. 위 그림에서는 Builder C와 Builder D가 0.71 ETH를 payload base fee floor로 제시했기 때문에, Attester들 입장에서는 0.71 ETH를 payload base fee floor로 설정할 것이다. payload base fee floor는 이번 블록에서 최소 소각시켜야 하는 이더리움 양의 기준이 된다.
Proposer가 Builder들이 만든 블록들 중 하나의 블록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사실 Proposer 입장에서는 소각되는 이더리움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수입을 극대화하길 원하기 때문에, payload base fee가 큰 블록보다는 자신에게 들어올 tip이 큰 블록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Builder A가 만든 블록의 tip이 가장 크기 때문에 A의 블록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2)에서 Attester들이 payload base fee floor를 정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Attester들이 0.71 ETH를 payload base fee floor로 설정했다면, 자신이 A 블록을 선택했을 때 Attester들로부터 attestation을 못 받을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C와 D 중 블록을 골라야 하고, Tip이 더 높은 D의 블록을 고를 것이다. 여기서 payload base fee floor 값은 서로 공유하는 값은 아니기 때문에, Proposer는 Attester들이 이 값을 얼마로 정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Proposer가 선택한 bid을 Attester들이 검증하고 attestation을 만든다. Payload base fee floor보다 큰 base fee를 유효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3번 단계에서 선택된 블록을 만든 Builder가 payload를 공개한다. payload는 선택된 블록에 담긴 실제 트랜잭션들을 포함한다. Payload를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는 것은 Proposer를 포함한 다른 노드들이 payload를 따라해서 MEV를 훔쳐가지 않게 막기 위해서다. 3)에서 Proposer가 bid만 보고 고르는 것은 블록 내용을 보고 훔치지 않게 하기 위한 commitment로 이해할 수 있다.
Builder가 공개한 payload에 대해 Attester들이 attestation을 만들고 전파한다. Payload 내용이 유효하지 않아도 Builder가 제시한 base fee는 소각되는데, 이것은 Builder가 가짜 bid를 제시하지 않기 위해 막기 위함이다. 이로써 하나의 블록이 채워지게 되며, 그 다음 블록을 위한 Builder들의 bidding은 또 다시 진행중일 것이다.
MEV burn을 도입했을 때 가장 예상하기 쉬운 변화는 이더리움 발행량 및 총 공급량의 변화일 것이다. 우선 네트워크 전체를 보았을 때 이더리움 소각량의 증가는 공급량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June 2023)까지의 추세를 보면 네트워크에 대한 높은 수요로 The Merge 이후 디플레이션이 진행되어 왔는데, MEV까지 소각되면 지금보다 디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Validator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왔었던 MEV 리워드 중 일부가 (어쩌면 대부분이) 네트워크 전체에 나누어지는 셈이므로 노드 운영에 대한 유인을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
MEV burn은 Validator들 간 수익 편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Validator들의 주된 수익 3가지는 attestation 보상, proposer 보상, MEV 보상이다. 기존에 벌어들이던 MEV 수익의 일정 비율이 소각된다면, Validator들의 수익 중 합의 레이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합의 레이어에서 나오는 보상인 attestation 보상과 proposer 보상은, Validator들 사이에서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총 수익이 서로 비슷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조금 무리한 가정일 수 있지만, 만약 많은 Validator 노드를 운영하는 풀 입장에서, 개인 Validator가 만든 특정 블록을 무효화하는 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해보자. 대형 풀이 개인 Validator가 만든 블록의 p2p 전파를 방해하거나 몇몇 논문들(Three attacks on proof-of-stake ethereum, Two More Attacks on Proof-of-Stake GHOST/Ethereum)에서 알려진 reorg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공격 실패에 대한 프로토콜 상의 페널티나 사회적 위험에 대한 비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러한 의도적인 공격이 The Merge 이후 이더리움에서 관찰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 가정이 이론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블록에서 추출된 MEV가 예컨대 1,000 ETH 이상으로 엄청나게 크다면 위험부담을 떠안고 공격을 해서 MEV를 가로챌 유인이 생길 수 있다.
MEV burn으로 블록에서 추출된 MEV의 상당 비율이 소각된다면 Proposer가 벌어들이는 MEV 수익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라 블록을 가로채기 위한 공격을 시도할 유인 또한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흥미롭게도 MEV burn이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검열 저항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동작과정을 다시 살펴보면 Builder가 제시한 payload base fee와 tip을 Proposer와 Attester가 확인하는데, Attester들은 payload base fee 중 가장 높은 값을 payload base fee floor로 간주한다. 그리고 Proposer가 만든 블록이 payload base fee floor만큼을 소각시키지 않으면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MEV-Boost에서는 일부 Proposer들이 OFAC-compliant한 Builder들의 블록만 받아 검열 저항성에 대한 이슈가 언급된 적이 있었다. MEV burn에서 만약 Proposer가 일부 Builder들의 블록을 받지 않는다면, payload base fee floor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어려울 것이고 자신의 블록이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Proposer는 모든 Builder들의 bid를 듣고 있어야 하므로, MEV burn이 검열 저항성을 자연스럽게 강제하게 된다.
MEV burn은 이더리움의 장기적인 계획 중 하나로, MEV를 소각시킴으로써 네트워크 전체에 분배하는 메커니즘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직까지 Builder가 빠르게 bidding할 유인에 대한 충분한 게임이론적인 근거가 부족해보이고 여러 공격상황에 대한 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MEV burn은 PBS가 도입된 이후 그다음 단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PBS와 MEV burn 모두 합의 레이어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대형 업그레이드이기 때문에 당연히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설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분열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비주얼을 제공해주신 Kate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