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생태계 및 탈중앙화된 솔루션들이 점점 발전하고 관심을 받음에 따라, 탈중앙화 거버넌스 역시 다양한 의사결정 프레임워크 중 하나의 방법론으로써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킹, 시빌 어택, 재산권 침해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일련의 거버넌스 사건들은 현재의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위험에 굉장히 취약하고, 따라서 더욱 진보된 형태로 발전해야할 필요성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탈중앙화의 본질에 입각하여 탈중앙화 거버넌스를 프레이밍 하기위한 4가지의 필수 요소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블록체인 업계는 유난히 ‘탈중앙화된(Decentralized)’ 라고하는 접두사를 붙이는 데에 관대하다 - 거버넌스도 예외는 아니다. 탈중앙화된 거버넌스 역시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무한한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며,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유연성을 더하고 커뮤니티라는 이름 하에 각각의 효용을 보장하도록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듯 하다.
하지만 군중심리학에 따르면, 개인에게 많은 권리(자율)가 부여되면 혼란되고 비이성적인 군중을 형성하며 따라서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감정적인 의사결정을 우선시할 경향이 짙다고 한다 - 실제로 우리는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지금껏 조직의 비전 달성과 무관한 일련의 거버넌스 사례 등을 통해,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프레임워크가 잘 셋업이 되지 않는다면 되려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중앙화 거버넌스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요소들을 통해 그것을 프레이밍할 수 있을까?
물음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탈중앙화된 방식’이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인 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업계 내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탈중앙화란 개념을 미덕으로 삼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된 하나의 문장은 없는 듯 하다. 즉, 탈중앙화란 개념은 여전히 매우 추상적이고 스펙트럴하다.
이로인하여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는 탈중앙성 혹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고있는 여러가지 속성들(e.g., 투명성, 불변성, 보안 그리고 검열저항성 등)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탈중앙화를 중앙화에 완벽히 대척하는 안티테제(Anti-Thesis)로써 오도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생태계의 다양한 시도들을 포용하지 않는 데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 관찰되는 현상들을 통해 탈중앙화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기보다, 탈중앙화가 달성되는 과정 자체를 들여다봄으로써 그 본질이 무엇인 지 더욱 성찰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은 본디 탈중앙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아니다. 되려 투명하게 공개된, 신뢰 기반의 P2P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운영이 목적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다. 그리고 탈중앙화된 방식은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이 다양한 참여자들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 오늘날까지 등장한 다양한 블록체인들의 구조를 보자면, 얼마나 많은 참여자들을 수용하고 신뢰의 정도를 희생할 지에 대한 트레이드 오프에 차이만 있을뿐, 결국 모두 공통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참여자들을 온보딩케하고 이들이 유일하고 동일한 데이터를 확정지을 수 있도록 합의 및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도입함으로 신뢰기반의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간다는 본질은 동일하다. 즉, 탈중앙화된 방식의 본질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써, 다양한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및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하기 위한 프레임워크에 핵심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거버넌스를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사 결정 도구’ 라고 정의한다면 탈중앙화된 거버넌스는 ‘다양한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장려하고, 이들이 신뢰가능한 프레임워크 상에서 지속적으로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참여할 수 있도록하는 의사 결정 도구’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 굳이 다양한 참여자들을 참여시키면서까지 탈중앙화 거버넌스를 지향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는 수백만 가지 이상의 거버넌스가 존재하고, 따라서 좋은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라는 것에 대해 정도(正道)는 없을 것이다. 즉 탈중앙화 거버넌스 역시 수많은 프레임워크 중 하나에 불과하며, 이를 반대로 말하면 어느 특정 영역에서는 좋은 방법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보고서는 조직의 목적을 이루는데에 효과적인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데 고려할만한 8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구현하기 나름이긴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탈중앙화 거버넌스는 특히 위 8가지 중 대부분의 원칙들을 강화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예를 들어, 탈중앙화 거버넌스는 기존의 거버넌스 체계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다 -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공개되어있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문제인식에 대해 동일한 주파수를 맞출 수 있고 의사결정의 수용성이 올라갈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참여자들이 참여할수록 소수에 국한된 관점보다는 네트워크 수준의 공공재성 관점에 초점이 맞춰지므로 신뢰가능한 중립성을 달성할 수 있고, 프로토콜은 사회적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향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만일 규칙 혹은 안건들이 자동화된 스마트 컨트랙트로써 잘 구현이 되어있다면 적시에 엄격하게 적용되어 네트워크의 규율에 긴장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탈중앙화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이상적으로 정의되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이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블록체인의 특수성을 잘 버무려 시스템을 구성하였을 때의 시나리오이다.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는 모든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하게 트래킹될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도, 참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하고 효과적인 투표 매커니즘을 지원하지도, 더욱이 참가자들이 거버넌스 자체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등 기술적/비기술적으로 다양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 오히려 지금껏 해킹, 시빌 어택, 재산권 침해 등 다양한 종류의 프로토콜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 일련의 거버넌스 사건들은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보다 현재의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악용 위험에 굉장히 취약하고, 더욱 진보된 형태로 발전해야할 필요성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추후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데에 효과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보다 더욱 탈중앙화의 본질에 입각하여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강화하고자하는 프로토콜들을 돕기 위해 우리는 해당 프레임워크를 설계 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할 최소한의 요소들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프로토콜이 지향하는 탈중앙화 거버넌스 역시, 본질적으로는 프로토콜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주요 안건들이 논의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프로토콜은 거버넌스에 적합한 참여자들을 정의하고, 이들이 제안된 안건들에 대해 균일한 이해도를 가질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또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하여 참여자들의 공평하고 접근성있는 참여(engagement)를 보장해야하며 특정 주체에게 편향된 결과를 초래하는(즉, 중립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면 안될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프로토콜은 그것의 목적에 따라 거버넌스 안건의 범위를 정의하고, 그에 요구되는 전문성을 가진 참여자들을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블록체인 생태계의 거버넌스 안건은 기본 네트워크 레이어의 통신표준 설정부터, 일반 최종 사용자들이 서비스의 효용을 늘리기 위한 어플리케이션 레이어의 안건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 가까울수록 안건들은 프로토콜의 동작과 관련된, 혹은 네트워크의 변하지 않는 속성들을 정의하는 표준들로 구성돼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프로토콜의 비전, 그리고 최근까지 제안된 안건들의 역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통신 및 기타 인프라와 관련된 기술적 전문지식까지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하는 참여주체들은 애초에 많지 않을 뿐더러, 각 안건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크거나 연속성이 있다보니 참여자들 간에는 유연하고 긴밀한 의사소통 체계가 필요하다. 이에, 실제로 다수의 메인넷들은 현재 유연한 소통을 가능케하는 오프체인 거버넌스를 채택하고 있으며, 안건들의 범위를 점차 줄여나가는 거버넌스 최소화를 채택함으로써 네트워크가 조금 더 안정되고 신뢰가능한 중립성이 달성되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 가까운 프로토콜 (혹은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일수록 참여자가 더욱 불특정하고 다양하게 구성돼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때때로 프로토콜이 필요한 거버넌스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으며 대체적으로 거버넌스 참여자들에게는 깊은 지식을 요구하는 안건 혹은 프로토콜 운영과 관련한 중대한 안건들보다는 서비스의 사용 및 효용과 관련된 안건이 단발적으로 제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참여자들이 워낙에 불특정하게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안건들의 경우 토큰 기반의 온체인 거버넌스로 갈음하는 경우도 있으며, 안건의 범위가 넓은 경우 세부적으로 나누어 다양한 DAO 혹은 위원회를 재귀적으로 편성하고 전문 인력을 배치하기도 한다.
요컨대 프로토콜은 자기 자신이 어떤 타입인지에 따라 안건의 범위를 적절히 구성해야하며, 기대하는 거버넌스 참여자의 페르소나 역시 그에 걸맞게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안건의 범위를 너무 넓게 설정하였는데 적절한 조치없이 거버넌스를 온전히 참여자들 전원에게 맡겨버린다면, 참여자들이 개별 안건에 대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관련된 투표의 결과가 유효하지 않거나 어떠한 결론도 이르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 처럼 현실적으로 효율/효과적인 거버넌스의 운영을 위해서는 거버넌스의 적합한 범위 및 참여자들의 설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장치없이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는 것은 요행일 수 있으며, 이러한 요행에만 의존하는 것은 되려 더욱 불안정한 거버넌스 시스템을 만들어낼 우려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프로토콜이 실질적으로 거버넌스 참여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참여에 대한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 한편, 인센티브는 참여자들의 이성적인 참여 명분으로써 시스템이 신뢰할 수 있는 중립성을 가지는 데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토큰 기반의) 경제적 인센티브
우선, 참여에 따른 경제적 인센티브의 도입은 블록체인이 기술적으로 운영되는데에 있어서 사용되는 수단이기도 한데, 다양한 참여자들을 단기간에 모으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는 게임이론의 설계와 비슷한 맥락으로, 요구되는 작업의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기여(e.g., 안정적인 노드 운영) 및 악의적인 행위에 대한 처벌(e.g., 슬래싱) 기준이 명확히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버넌스의 경우에는 요구되는 작업의 범위가 가변적일 확률이 높다. 더욱이 모든 논의가 정성적이며 주관적인 요소가 섞여있기 때문에 기여 혹은 처벌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지 않은 채 거버넌스 행위에 대해 무작정 경제적 인센티브를 도입하게 될 경우, 단기적인 이득을 좇는 사람들이 거버넌스 참여자 그룹에 섞여있으므로인하여 커뮤니티 내에서 프로토콜에 대한 합의 지향 정도가 각각 상이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 물론 어플리케이션에 가까운 프로토콜의 거버넌스일수록 참여자들과 프로토콜 간의 장기적인 비전 일치가 중요하지 않을수 있지만, 참여자들 간 다양한 이해관계 불합치 문제가 심화될 우려가 존재할 수 있다. 더욱이, 해당 보상이 유동화하기 쉬워버리면 금권 정치 및 시빌 어택의 위험도 증가할 수 있으며, 네이티브 토큰과 같이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면 네트워크의 보안 자체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프로토콜들이 토큰과 같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도입한다면, 사전에 정의한 거버넌스의 범위를 고려하여 참여자의 쉬운 유입 및 이들로 인해 거버넌스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혼란 위험 간에 트레이드오프를 잘 조율해야할 것이다.
한편,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주체에게 투표권을 위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거나 Curve Finance의 Voting Escrow Model과 같이 토큰 락업 기간 등에 비례하여 거버넌스 권한을 더욱 많이 부여하는 시도도 참조할만하다. 다만 전자의 경우, 더욱 유효한 투표 결과를 갖게하므로 효과적인 거버넌스 운영을 가능케하지만 금권 정치의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락업 기간 동안 프로토콜과 참여자 간 인센티브 일치를 강제시키는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참여자들이 정말로 프로토콜이 필요한 거버넌스 참여자 페르소나에 적합한 지는 확신할 수 없으므로 최선책은 아닐 수 있다.
(평판 기반의) 비경제적 인센티브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욕구위계 이론에서 타인에 의한 존중감은 사회적 활동의 또다른 동기부여일 수 있다하였고, 다수의 연구 결과들이 평판과 조직의 성과 간에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해오고 있다 - 당장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예시를 찾아보자면, 이더리움의 EIP가 있을 것이다.
이더리움의 거버넌스 프레임워크인 EIP는 오프체인 거버넌스 방식으로 진행되며, 거버넌스 참여자에게 명시적으로 경제적인 보상을 제공해주진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800 여명의 참여자들이 EIP를 제안하였고 수천명의 커뮤니티원들이 해당 제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그 결과 EIP는 현재 블록체인 표준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거버넌스 참여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이들은 저명한 리서처들과의 논의 및 관계 형성 혹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비록 경제적 인센티브에 비해 (평판 기반의) 비경제적 인센티브는 다양한 참가자들을 단기간에 흡수할 순 없겠지만, 조금 더 프로토콜의 장기적인 비전에 일치된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거버넌스에 참여시키는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더욱이, 참여자들의 수의 다이나믹스가 경제적 인센티브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기 때문에 거버넌스가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에, 아예 프로토콜 내에서 자발적으로 기여를 많이 한 진성 유저(organic user)들을 파악하여 활동 내역 기반으로 평판 자체를 스코어링하고 이들로하여금 특정 거버넌스를 맡기는 방법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e.g., PolygonID, Badges for Optimism’s Citizen House, etc.).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온체인 활동 혹은 계정 정보를 기반으로 참여자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수적일 것일 터인데, 온체인 데이터들을 모두 집계하여 계정 당 평판 스코어링을 제공해주는 솔루션(e.g., Sismo, Cred Protocol, Orange Protocol, etc.)을 활용하거나, POAP 등과 같이 특정 활동들을 증명하는 Proof of Participation 등의 인증 뱃징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같은 방식은 본질적으로 평판을 스코어링하는 주체의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존재한다(a16z의 Eliza Oak는 다음 아티클에서 평판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을 1) 자동화된 매커니즘으로 구현할 지, 2) 커뮤니티에 의해 결정할 지, 아니면 3) 전담 DAO와 같은 중앙화된 주체가 이를 결정할 지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하였다).
요컨대, 거버넌스에 적합한 참여자들을 유인하는 인센티브로써, 경제적인 방법과 비경제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므로, 거버넌스를 통해 이루고자하는 결과에 맞게 트레이드 오프를 잘 설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인센티브와 비경제적인 인센티브를 함께 활용하는 것도 좋은 옵션일 수 있다 - 실제로 Optimism의 경우, 토큰 기반의 Token House 커뮤니티가 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영역과 평판 기반의 Citizen House 커뮤니티가 할 수 있는 거버넌스 영역을 분리하고 있다. 혹은 Lido 팀이 논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단일 토큰(i.e., LDO)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stETH 토큰 보유자를 위한 별도의 거버넌스를 셋업하는 ‘듀얼 거버넌스(Dual-Governance)’ 모델 등을 논의하여 토큰 기반 거버넌스의 한계점을 상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프로토콜의 거버넌스를 논의하기에 적합한 참여자들이 다양하게 온보딩하게됐다한들, 이들이 거버넌스에 참여할만한 프로세스가 적절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이 필요한 안건들이 지나치게 많이 제안되거나, 참여자들이 거버넌스를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데에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면 거버넌스 참여도는 저하될 수 있다.
이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하는 것이 바로 의사결정 피로도(Decision Fatigue) 이다.
의사결정 피로도는 사회심리학 용어로, 크고작은 의사결정들이 잦은 빈도로 발생하게될 시 이어지는 의사결정의 품질이 점점 저하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 현상은 일상에서도 쉽게 관찰될 수 있는데, 우리는 생각하거나 결정을 해야할 것이 많은 날에는 때때로 피로가 쌓여 새로운 결정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짐에, 대충 결정을 내려버리거나 심지어 미뤄버리기도 한다.
현재 블록체인 거버넌스 상에서도, 다양한 참여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안되는 안건의 수가 많거나 불규칙적임으로 인해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프로토콜 상의 중요한 요소들은 대부분 코드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항상 내재한 위험과 관련하여 긴박한 안건이 제안*될 수도 있다. 이 역시 참여자들로하여금 안건의 경중과 상관없이, 프로토콜 상에서 제안되는 모든 거버넌스 안건들을 일일이 트래킹하도록 압박하여 피로도를 높이는 주요인 중 하나이다.
이외에도,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를 파악하는데에 부가적인 노력이 필요하기때문에 의사결정 피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많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별 안건들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온전히 게시되지 않거나, 기존의 다른 안건들의 컨텍스트를 알아야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이 때 논의가 일어나는 소통 채널이 일원화되어있지 않고, 과거의 거버넌스 논의들을 톺아볼 수 있는 도구들이 부재하다면 지속적인 참여를 함에 있어 참여자들이 피로함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규 참여자의 진입 역시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참여자들 간에 다양한 지형적/언어적 분포를 고려하지 않은 의사결정 체계는 원활하고 단일화된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며, 실질적으로 참여자들이 소통하고 투표하는 등의 프로세스와 관련된 거버넌스 인프라들은 아직까지 불편한 UX/UI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참여자들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데에 있어 전반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 또한 참여자들로하여금 피로도를 높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저해하므로, 개선돼야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프로토콜에는 실로 많은 참여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만큼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보장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개별 거버넌스 안건이 큐레이팅되는 방식에 주의를 귀울여야할 것이며, 안건의 논의 프로세스 강화, 범위에 따른 유연한 프레임워크의 채택, 반복적인 안건을 위한 거버넌스 자동화, 거버넌스 역사를 톺아볼 수 있는 랜드스케이프 도입 등 다양한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의사결정 피로도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필수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오프체인 거버넌스에 비해 유연하지 않는 온체인 거버넌스의 경우, Osmosis의 Expedited Module이나 Curve Finance의 Emergency DAO처럼 별도의 긴급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하는 가’ 에 대한 판단은 시스템의 목적, 사용되는 정보의 종류, 그리고 시스템의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시스템들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탈중앙화된 방식은 다양한 참여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일관되게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 데에 그 본질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공평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거버넌스 시스템의 맥락에서 보자면, 프레임워크 자체도 특정 주체에게 편향되지 않도록 중립적으로 설계되어야겠지만 개별 안건들이 야기할 수 있는 결과 역시 시스템의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특정 주체의 권리가 훼손되어, 업계 내외에 탈중앙화 시스템의 중립적인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게하였던 일부 사례들이다.
주노(Juno) 프로포절 #4, #16
Source : Keplr Dashboard
주노 프로토콜은 출시 초기, ATOM 토큰의 스테이커들을 대상으로 에어드랍을 통해 JUNO 토큰을 배분하였다. 지갑당 받을 수 있는 JUNO의 최대 물량은 5만 개로 제한되었지만, 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ATOM을 여러 개의 지갑으로 나누어 분배하고 스테이킹하여, 전체 JUNO 물량의 약 7%를 에어드랍받았다.
���에 주노 프로토콜 및 커뮤니티는 해당 플레이어의 자금을 몰수하자는 제안을 하게되었다. 찬성 및 제안 측은 해당 플레이어의 행위가 JUNO 생태계의 탈중앙성을 해칠 수 있다는 명분이었고, 반대 측은 애당초 시스템 설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한 플레이어의 행동을 잘못으로 몰고 재산권까지 침해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논쟁은 결국 근소한 차이로 제안이 가결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해당 플레이어의 자금은 몰수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솔렌드(Solend) 프로포절 #1, #2, #3
Source : Realms
2022년 6월 20일, 솔라나 체인 기반의 대출 프로토콜인 솔렌드에서는 첫 번째 제안(SLND #1)으로써 다소 황당한 내용의 제안이 올라오게 된다 - 솔렌드 내 모든 예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 고객의 청산 시나리오에 따른 SOL 토큰 가격의 폭락을 우려하여, 1) 프로토콜 내 특별 증거금 요건을 제정하고 2) 해당 고객 계정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강제로 빼앗아 장외거래를 통해 청산을 먼저 진행하자는 제안이었다. 본 제안은 약 97.5%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하여 통과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솔렌드 팀은, 해당 제안의 투표기한이 너무 짧았고 고객의 개인 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따라, 두 번째와 세 번째 거버넌스 제안(SLND #2 & #3)을 통해 SLND #1을 무효화하고 계정당 차입 한도, 청산 마감계수, 그리고 청산 패널티를 일시적으로 조정하자는 내용을 제안하였다. 해당 제안들은 99% 이상의 지지를 받아 통과되었고, 결과적으로 솔렌드 내 커뮤니티가 우려했던 청산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스모시스(Osmosis) 프로포절 #320
Source : Keplr Dashboard
오스모시스 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은 320번 째 거버넌스 제안을 통해 오스모시스가 새로운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항상 포함되었던 Blocked.go 파일의 제거를 제안한다. 해당 파일은 토네이도 캐시 사용 이력이 있는 68개의 이더리움 주소를 포함하는 파일로, 계속해서 존속할 경우 이 파일 속 주소들의 소유자들은 잠재적으로 OFAC(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의 제약 대상이 될 수 있다.
해당 제안의 반대 측 입장은 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방지하기 위한 OFAC의 제재 목적성을 공감하기 때문에 해당 파일을 삭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찬성 측의 입장은 블록체인은 본질적으로 검열 저항성을 가져야하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검열을 수용하는 행위는 산업 내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해당 제안은 총 유권자들 중 4.9%의 동의만을 얻음으로써 기각되었고, 결과적으로 오스모시스는 이 파일을 항상 포함하여 새로운 업데이트를 진행하게 된다.
위 세 사례는 참여자들로하여금 이용하던 프로토콜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행동에 제약을 걸고, 과거 특정 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더이상 해당 프로토콜을 이용하지 못할 수 있는 불안을 선사하였다. 과연 참여자들은 이러한 프로토콜들을 계속해서 이용하고 싶어할까?
무한한 자율성과 책임을 보장해야할 시스템이 특정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 시스템은 다수의 자유로운 참여가 보장되지 않음에 누구에게나 신뢰받는 시스템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탈중앙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이러한 논쟁이 발생함으로 인해 커뮤니티 내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 단에서 미리 거버넌스의 설계를 잘 해야하며 그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닌, 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스템에 온전히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탈중앙화 시스템이 점점 더 발전하고 관련한 서비스들에 대한 언급이 가속화됨에 따라,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잠재적인 유스케이스에 대한 관심 역시 부상하고 있다. 이에, 탈중앙화 거버넌스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들 역시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고 생태계 속 커뮤니티들은 저마다의 방법론들을 실험하고 깨부수고 서로의 유스케이스를 교훈삼아 발전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하였듯, 거버넌스는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들을 추상화할 수 있는 하나의 궁극적인 프레임워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중앙화 거버넌스는 누구도 적용해볼 수 없었던 블록체인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방법론으로써, 특정 영역에서는 발전된 형태의 거버넌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실험들이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탈중앙화된 방식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입각하여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구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언제까지나 거버넌스의 제 1목적은 조직의 목표 달성이므로 블록체인의 결과적인 속성들에 집착하여 탈중앙적인 구색 맞추기에 여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만일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않은 채 거버넌스 실험을 계속해서 해 나간다면, 별다른 진전없이 개인 혹은 프로토콜 단에 큰 피해를 초래하기만 할 수 있음에 탈중앙화 거버넌스에 대한 개선은 물론이거니와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발전함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번에 탈중앙화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구성해야한다는 생각은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의 안정적인 민주사회가 정착되기 까지는 수백년 이상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개선이 있었다. 혹여나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끝내 대중들에 의해 채택이 되지 않아 탈중앙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더라도, 탈중앙화된 거버넌스를 통해 발전한 커뮤니티 내에서 만들어진 경제, 그리고 문화에 대한 기록들은 현실 사회의 거버넌스에도 적잖은 교훈을 주는,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본 아티클이 다양한 탈중앙화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효과적으로 실험하는데에 있어 유의미한 리소스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의 비주얼을 제공해주신 Kate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