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Tokenization)’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흔하게 쓰인다. 마치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들이며, 유동성을 높이고, 금융의 미래로 바꿔주는 마법 공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표현 뒤에서, 토큰화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전달하는 프로덕트는 많지 않다.
토큰화 그 자체만으로 덜 매력적인 자산이 매력적인 자산이 되지는 않는다. 유동성이 낮거나 매력이 떨어지는 투자 상품이 토큰화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자산을 둘러싼 인프라와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다면, 보관/컴플라이언스/모니터링 등의 비용이 이익을 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큰화가 마법처럼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모든 것을 돈처럼 작동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돈은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교환의 매개(Medium of Exchange): 거래나 소비에 사용할 수 있다.
가치의 저장(Store of Value): 보유하고 저장할 수 있다.
가치의 측정(Unit of Account): 다른 자산과 비교하거나 평가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펀드, 주식, 채권, 벤처캐피털 지분 같은 자산은 ‘돈’이 아니다. 쉽게 쓸 수도 없고, 현금으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다른 것들과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비교하기도 어려운 “자산”이라고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토큰화는 이 구분을 허물고 있다. 토큰화된 자산은 ‘돈처럼’ 움직이고, ‘돈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시장에서 이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인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의 사례를 통해 각각의 기능을 살펴보자.
Source: What is Money? (History + Function) - WhiteboardCrypto
자산을 돈처럼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의 의미는 이동 및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 금융에서 사모지분(Private Equity), 벤처펀드 지분, 머니마켓펀드와 같은 자산은 각각의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존재해왔다. 이들의 이전에는 수탁기관(custodian), 이전대리인(transfer agent), 청산기관(clearinghouse) 등이 필요하며, 이들은 특정 시장 시간에만 작동하고, 국가별 규제 장벽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그 결과, 자산의 소유권은 정적으로 머물고 유동성은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만 작동한다.
블록체인은 여기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데 공유된 결제 레이어(settlement layer)를 통해 규제된 기관들은 투자자 보호 요건을 유지한 채, 과거 폐쇄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던 금융 상품들이 이제는 시장, 프로토콜, 국가를 초월해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금융 아키텍처 안에서, 토큰화된 자산들은 보편적인 거래 단위처럼 작동한다. 주식, 채권, 펀드, 혹은 기타 실물자산(real-world asset) 모두 동일한 인프라 위에서 이동하고, 거래하며, 결제될 수 있다. 하나의 투자자는 이제 단일 온체인 지갑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다.
토큰화된 국채 펀드(예: BlackRock의 BUIDL)를 토큰화된 사모펀드(예: Hamilton Lane의 PE 펀드)나 스테이블코인(예: USDC)으로 교환
토큰화된 회사채를 ETH, BTC 같은 암호자산으로 교환
토큰화된 부동산 자산을 토큰화된 벤처캐피털 펀드(예: Blockchain Capital의 VC 펀드)로 교환
이처럼 정적으로 존재하던 자산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가치 단위로 변환함으로써,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와 같은 토큰화 플랫폼은 프라이빗 시장을 공공 인프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는 기관 자본과 온체인 유동성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자본 시장의 연결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상호 교환성은 단일 자산군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를 연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자산이 ‘돈처럼 흐를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초석이 놓이고 있는 것이다.
Source: The Leading Tokenization Platform
Source: X (@stablewatchHQ)
돈의 두 번째 기능은 가치를 시간에 따라 저장(store value) 하는 것이다. 즉, 구매력을 유지하는게 가장 중요하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사회에서 동시에 이자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토큰화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기존에 한 기관에 비유동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유되던 자산들을 온체인에서 자가 수탁(self-custodial) 형태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이자가 발생하는(yield-bearing) 자산으로 전환시킨다. 이제 이러한 자산은 실시간으로 소유, 추적, 보상받을 수 있는 ‘액티브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된다.
토큰화를 통해 미국 국채, 회사채, 머니마켓펀드와 같은 자산들은 단순히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래밍 가능한 가치 저장소로 진화한다. 이들은 투자자의 지갑으로 자동적으로 이자를 분배하며, 전통적인 펀드 회계, 배당금 처리, 결제 지연 등의 불편을 제거한다.
예를 들어, BlackRock의 BUIDL 펀드는 시큐리타이즈(Securitize)가 발행 및 유통하는 미국 국채 머니마켓펀드의 토큰화된 지분이다. 이 토큰은 매일 자동으로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며, 투자자는 자신의 온체인 지갑에서 잔액이 증가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복잡한 회계 절차나 배당 처리 과정 없이, 실시간으로 자산이 불어나며 가치를 유지한다.
온체인 이자율은 단순히 전통적인 금리를 복제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한 번 토큰화된 자산은 온체인 금융 생태계 전반에 통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대출 프로토콜의 담보, 거래소의 유동성 풀, 결제 인프라의 준비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 기관 투자자는 BUIDL 같은 토큰을 온체인 리포형 금고에 예치해 추가적인 스프레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은행이 유동성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또한 자본은 무위험 상품(예: 토큰화된 국채)과 고위험 디파이 상품(예: 대출 풀, 구조화 금고)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토큰화된 펀드가 점점 더 많아질수록, 이들은 디지털 경제의 ‘저축 계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규제된 증권이 가진 안정성과 신뢰, 그리고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효율성/조합성/투명성이 결합되며, 이제 개인과 기관 모두가 국경 없이, 중개자 없이, 이자가 쌓이고 자동으로 운용되는 돈을 보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Source: Historical Yield Performance
돈의 세 번째 기능은 가치의 척도(Unit of Account)로서의 역할이다. 이는 시장 전반에서 가격을 일관되게 책정하고, 비교하며,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달러, 엔화 같은 국가 통화가 이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경우, “자산 그 자체”가 가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온체인 상에서는 모든 자산 쌍이 형성될 수 있으며, 만약 가격이 불일치하면 자동으로 차익거래(arbitrage)가 발생한다.
온체인 세계에서 동일한 계약 아래 발행된 토큰화 자산은 동질적(fungible)이고 표준화된(standardized) 형태를 가진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케피탈의 토큰화된 VC 펀드 지분은 거래되는 위치와 상관없이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여기에 레이어제로(LayerZero)의 OFT(Omnichain Fungible Token) 같은 크로스체인 표준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자산들은 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유지한 채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 크로스체인 동질성은 온체인 생태계 전반에서 자산이 일관된 기준으로 인식되고 평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이 시스템에서 특히 주목할 혁신은, 온체인 대출 프로토콜(아베 등)에서 등장한 영수증형 포지션 토큰(receipt position token)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USDC나 토큰화된 펀드를 AAVE의 유동성 풀에 예치하면, 그 대가로 aToken이라는 영수증 토큰을 받는다. 이 토큰은 사용자의 대출 포지션을 나타내며, 차입자들로부터 발생하는 이자가 누적됨에 따라 자동으로 가치가 상승한다. 즉, 단순 예치가 자동 이자 발생 포지션(yield-bearing position)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수증형 토큰은 실시간 회계 단위(real-time accounting unit)로 기능한다. 기초 자산의 소유권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모두 투명하게 반영하며, 완전한 조합성(composability)을 가진다. 즉, 이 토큰은 다른 프로토콜의 담보로 사용되거나, 새로운 금융 상품으로 랩핑(wrapping)되어 재구성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치-대출-재예치 같은 반복적 전략이 가능해지고, 이는 전통 금융에서의 레버리지 및 재담보화(rehypothecation) 구조를 온체인에서 자동화된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는 온체인 자산을 가치 측정 단위이자 금융 행위의 기본 언어로 만든다. 자산이 단순히 저장되거나 거래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가치가 업데이트되고, 다시 다른 프로토콜로 조합될 수 있는 시스템 - 이것이 토큰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회계적 질서이자, 디지털 경제의 ‘가치 기준’이 된다.
Source: Horizon | Aave Protocol Documentation
더 많은 자산이 토큰화될수록, 과거에는 정적으로 존재하던 자산들이 이제는 순환하는 금융 단위(circulating financial units)로 변하고 있다. 투자자는 토큰화된 국채를 담보로 예치하고, 그 가치를 기반으로 USDC를 대출받은 뒤, 다시 다른 수익형 펀드에 재투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두 포지션 모두에서 동시에 수익을 얻는다. 반대로, 토큰화된 주식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아 실물 경제에서 실제 지출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자산은 단순히 보유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작동하며, 프로그래밍 가능한 금융 시스템 안에서 상호운용 가능한 가치 단위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결국, 토큰화는 모든 것을 가격화하고 있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거래될 수 있는 세계” - 바로 그것이 토큰화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다.
Source: RWA News: Tokenized Real-World Assets Could Reach $18.9T by 2033, Ripple and BCG Report Says
토큰화의 본질은 단순히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 자산의 작동 방식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돈(달러, 유로 등)’과 ‘자산(채권, 주식, 부동산 등)’의 세계를 하나로 융합한다. 이제 국채, 벤처펀드, 심지어 부동산까지도 프로그래밍 가능하고, 조합 가능하며, 이체 가능한 토큰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한 번 토큰화되면, 그 자산은 실시간으로 사용, 저장, 평가될 수 있다. 이 융합은 “내가 보유한 것(what we own)”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what we can use)”의 경계를 허물며, 금융상품과 유동성 사이의 역사적 구분선을 지운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토큰화는 소유를 참여로 전환시킨다. 이는 기관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산을 시스템과 전략 사이에서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토큰화 자산은 항상 작동하는 금융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고도 가치가 끊임없이 흐르는 구조를 만든다. 토큰화된 부동산은 임대 수익을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직접 분배할 수 있고, 펀드 지분은 추가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담보로 활용될 수 있으며, 수익형 토큰은 또 다른 수익을 얻기 위한 담보로 재활용될 수 있다. 이 모든 상호작용이 시스템의 유동성 구조를 더욱 촘촘히 엮어내며, ‘자산을 보유한다’는 정적 개념을 ‘자본을 운용한다’는 역동적 상태로 전환시킨다.
결국 토큰화의 잠재력은 모든 것을 돈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단지 어떻게 소비하고, 저축하고, 평가하는지뿐 아니라, ‘금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존 금융 사고방식은 선형적이었다 - 현금으로만 벌고(earn), 저축하고(save), 투자하고(invest), 소비하는(spend). 그러나 온체인 경제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다.
토큰화는 ‘돈’과 ‘자산’을 구분 짓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이제 하나의 유동적인 가치의 표현이 된다.
세계를 토큰화하자 (Tokenize the World).
Source: X (@Securit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