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M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성과 보안성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발전을 이어온 생태계다. 버츄얼스 프로토콜이 ACP(Agent Commerce Protocol)의 기반으로 EVM을 선택한 것도, 기술적 구조와 실제 사용처를 고려할 때 이러한 EVM의 특성과 높은 시너지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ACP는 AI 에이전트 간 상업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멀티 에이전트 프레임워크로, 탐색, 협상, 평가, 결제 등의 과정을 온체인에서 자동화한다. 이러한 ACP가 EVM을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EVM이 제공하는 가장 탈중앙화된 합의 구조와 가장 높은 수준의 보안성에 있다. 이를 통한 데이터 불변성과 신뢰성은 인간 개입 없이 자율적인 협업을 전제로 하는 ACP의 핵심 기반이 된다.
ERC-6551은 NFT를 통해 에이전트의 온체인 계정을 생성하고, ERC-4337은 해당 계정의 작동 방식과 트랜잭션 흐름을 규정하는 실행 환경을 제공한다.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두 표준은 ACP가 자율적이면서도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며, 이는 표준화된 인프라 컴포넌트가 잘 갖춰진 EVM이라는 범용 실행 환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ACP는 본질적으로 범용 모듈이다. 즉, 어느 서비스든 멀티 에이전트의 자동화된 워크 플로우를 통합하여 생산성이나 사용자 경험 혹은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할 때, 그 효과를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동성, 개발자, 사용자,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EVM은 ACP가 수평적으로 통합되어 모듈로서의 잠재력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 기반이 되어준다.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ACP를 통해 에이전트의 작업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 표준과 지속 가능한 에이전트 기반 비즈니스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지금 이 시기는, 에이전트가 운영하는 마이크로 서비스들이 레고처럼 조립 가능한 형태로 폭발적으로 확산될 캄브리아기를 예비하는 준비 단계일 수 있다. ACP가 어떻게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에이전트 기반 경제의 서막을 열게 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더리움은 종종 지루하다. 정확히는, 1만 이상의 TPS를 내세우는 신생 고성능 체인이나 재단 주도하에 공격적으로 생태계 확장을 전개하는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이더리움의 점진적이고 신중한 발전은 시장 참여자들의 주목을 단숨에 끌어모으기에는 지나치게 진지한 접근 방식일지 모른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AI 프로젝트가 시장에 포지셔닝하고자 한다면, 어느덧 10년 가까이 된 이더리움을 가치 제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다지 유리한 전략이 아닐 수 있다. 크립토 시장에서는 기술적 실사만큼이나 어텐션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흡인력 있고 신선한 내러티브를 전파하는 편이 시장의 관심을 모으기에 훨씬 수월하다. 한마디로, 탈중앙성과 보안성을 핵심 가치로 “세계의 컴퓨터(The World Computer)”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이더리움의 철학은, 오늘날 시장이 요구하는 속도감과 도파민의 역치에는 다소 비켜나 있는 듯하다.
Source: X(@virtuals_io)
하지만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드는 사례로, 버츄얼스 프로토콜의 행보는 오히려 눈에 띈다. 일례로,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이더리움의 보안 리서치 그룹인 네더마인드(Nethermind)와 협력해 자율적으로 보안 감사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출시하고, 해당 에이전트 토큰($I.R.I.S)을 이더리움 레이어1에 배포하였다. 이밖에도 이더리움 재단과의 주관 하에 AI 에이전트 워크숍 또한 여러 차례 진행해온 바 있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기능적 선택이라기보다 이더리움, 더 나아가 EVM을 계속해서 주요 무대로 삼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에이전트 런치패드를 활성화하던 초기 단계부터 베이스를 선택했고, 다음 단계로 제시한 멀티 에이전트 표준 ACP(Agent Commerce Protocol) 역시 EVM 기술 스택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이 일련의 선택들 또한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구축된 EVM의 인프라와 철학 위에서 AI 에이전트 네트워크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 그렇다면,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왜 ACP의 근거지로 EVM을 선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ACP의 기술적 구조와 실제 적용 가능성을 고려할 때, EVM은 버츄얼스 프로토콜이 그리는 AI 에이전트 생태계의 미래 청사진을 실현하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기반이라고 생각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ACP와 EVM의 정합성을 중심으로 그 배경을 자세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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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ACP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ACP는 AI 에이전트들이 온체인에서 자율적으로 협업하고 상업적 거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개방형 프로토콜이다.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에이전트들은 중개자 없이 협업을 자동화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모든 상호작용은 투명하게 온체인에 기록된다. 그 결과,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는 협업이 가능해진다. 이미 ACP는 자율형 헤지펀드나 콘텐츠 제작 클러스터와 같은 사례를 통해 활용 가능성을 입증해 나가고 있다.
(ACP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ACP: 버츄얼스 프로토콜이 제시하는 에이전틱 분업의 미래”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러한 ACP의 구조를 실제로 구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 기반이 바로 EVM이다. 좁은 의미에서 EVM은 솔리디티로 작성된 코드를 바이트 코드로 변환하여 실행하는 가상 머신 그 자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오늘날 EVM은 기술적 정의를 넘어, 해당 실행 환경을 공유하는 모든 블록체인과 그 위에 구축된 방대한 디앱 생태계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통용된다. 이제 EVM은 블록체인 산업의 표준처럼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몇가지 핵심적인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보안성: 이더리움 레이어1 합의 구조를 상속받는 EVM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분산된 수많은 노드가 참여하는 가장 탈중앙화된 환경에서 작동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안정성을 증명해온 바있다.
개발 용이성: 수많은 오픈 소스 레퍼지토리와 레퍼런스 코드는 물론, 활성화된 개발자 커뮤니티가 존재하여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과 실험이 용이하다.
인프라 컴포넌트의 표준화: ERC 표준부터 오라클, 계정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인프라 구성요소들이 표준화 및 모듈화되어 있어 통합에 유리하다.
이러한 특성 중에서도 ACP EVM을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레이어2 체인을 기반으로 이더리움이라는 높은 보안 수준의 정산 레이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ACP는 AI 에이전트 간의 상호작용 전반을 온체인에서 처리하는 상거래 프레임 워크다. 요청, 협상, 실행, 평가, 결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화되며, 각 단계의 상태 전환은 온체인 서명으로 트리거된다. 이 일련의 상호작용은 EVM 체인에서 실행되며, 해당 체인이 이더리움 메인넷을 정산 레이어로 사용할 경우, ACP는 이더리움의 보안 예산과 합의 구조를 기반으로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된다.
특히 데이터 불변성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EVM의 강점은, 인간의 개입없이 AI 에이전트 간 협업을 전제로 하는 ACP 구조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향후 엔터프라이즈 수준에서 다수의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대표해 협업하고, 실시간으로 업무를 자동화할 경우, 단순한 데이터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업적 분쟁 발생 시 사후 검증이 가능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규제 기관 수준의 감사와 법적 정합성을 위한 이력 추적 또한 요구된다. 이때, ACP를 통해 생성되는 모든 상태 전환은 온체인 트랜잭션으로 기록되며, 해당 트랜잭션은 EVM 체인의 퍼블릭 특성과 불변성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후 검증과 외부 감사를 위한 충분한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보안성과 합의 구조 측면에서 EVM이 ACP에 적합한 기반을 제공한다면,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에이전트가 온체인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기술적 구성 요소들이다. EVM은 AI 에이전트의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준화된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ERC-6551과 ERC-4337이다. 이 두 표준은 각각 에이전트의 온체인 엔티티 생성과 트랜잭션 흐름 정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ACP가 지향하는 신뢰 없는 상거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 기반을 제공한다.
ERC-6551은 기존 NFT에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지갑을 연결하는 표준으로, NFT를 하나의 온체인 계정처럼 작동하도록 확장한다. 이를 통해 NFT는 단순한 소유권 증명(ERC-721)을 넘어서, 자산을 보유하고 트랜잭션을 실행하며 계약에 서명할 수 있는 행위 주체로 기능하게 된다. 다시 말해, 토큰 자체로 ERC-20, ERC-721, ERC-1155 기반의 토큰을 직접 보유할 수 있고, 스마트 컨트랙트 함수 호출을 통해 외부 컴포넌트와 상호작용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이 표준을 도입하여, 각 AI 에이전트를 ERC-6551 기반의 NFT로 구현한다. 이때, NFT는 해당 에이전트의 고유 지갑 주소로 기능하며, 하나의 에이전트가 하나의 온체인 계정을 갖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로써 에이전트는 단순한 API 호출 기능에서 나아가, 자산을 운용하고 다른 에이전트와 트랜잭션을 직접 수행하며, 컨트랙트에 서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상호작용 주체로서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ACP가 지향하는 멀티 에이전트 환경에서도 ERC-6551은 신뢰 없는 협업을 구현하는 기술 기반이 되어준다. 앞서 살펴보았듯, 각 에이전트는 고유 계정을 통해 활동 내역, 계약 이력, 보유 자산, 수익 흐름 등을 온체인 상태로 기록하며, 해당 상호작용이 모두 트랜잭션 기반의 상태 전환으로 트리거된다. 이를 위해 각 에이전트는 개별 계정으로 존재하고, 자산 보유 및 컨트랙트 호출 능력을 내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ERC-6551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기술적으로 충족해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ERC-6551은 하나의 에이전트를 ‘온체인 엔티티’로 정의하는 기반이 되며, 각 에이전트가 ACP를 통해 자산을 보유하고 트랜잭션을 실행하며 계약에 참여하는 등의 상업 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엔터프라이즈 법인으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ACP 프로세스에 포함된 평가 시스템과 정산 과정에도 쉽게 통합되어, 일정 평판 이상을 획득한 에이전트만 특정 거래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자동화된 수익 분배 조건을 설계하는 등의 정교한 상호작용 규약도 구현할 수 있게 한다.
ERC-4337 표준은 에이전트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용자 경험을 구성할지를 규정한다. 기존 이더리움에서는 컨트랙트 계정(Contract Account, CA)이 스스로 트랜잭션을 시작할 수 없으며, 반드시 외부 소유 계정(Externally Owned Account, EOA)을 통해 트리거되어야 하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로도 불리는 ERC-4337 표준이다.
계정 추상화는 이더리움 프로토콜 자체를 수정하지 않고도 컨트랙트 계정이 자체적으로 트랜잭션을 생성하고 제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새로운 유형의 트랜잭션인 UserOperation을 도입하고, EntryPoint 컨트랙트와 번들러(Bundler), 페이마스터(Paymaster)라는 보조 메커니즘을 통해 트랜잭션 실행과 가스비 지불까지 처리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이로써 중개자나 EOA 없이도 컨트랙트 계정이 네트워크에 트랜잭션을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계정 추상화는 AI 에이전트와의 결합에 특히 적합하다. 기존 EOA 구조에서는 항상 외부 트리거가 필요해, 에이전트의 자율성과 실시간 자동화를 제한했다. 이는 에이전트가 실시간 상호작용이나 조건부 계약을 자동화하는 데 있어 병목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때 계정 추상화 기반 스마트 계정은 키 서명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정 내부에 자체적인 실행 로직을 내장할 수 있으므로, 에이전트는 스마트 계정을 통해 조건부 실행, 다단계 트랜잭션, 가스비 대납 등 복잡한 로직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게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UserOperation 안에 다섯 개의 디파이 스왑을 포함해 번들 트랜잭션으로 처리하고, 이를 한 번의 서명 또는 조건부 트리거로 한 번에 실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ACP에서도 이러한 기능은 에이전트 간 신뢰 없는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데 핵심적이다. 에이전트는 ERC-6551 표준을 통해 고유한 NFT 기반 계정을 부여받으며, 이 계정은 계정 추상화 기반 스마트 계정으로 작동함으로써 외부 개입 없이도 트랜잭션을 생성하고 서명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갖게된다. 예를 들어, 한 에이전트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상대에게 자동으로 거래 제안을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계정 추상화 기반 스마트 계정을 활용하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온체인 상호작용이 자동화된다:
거래 제안 작성 및 실행: 스마트 계정에 미리 프로그래밍된 로직에 따라 거래 제안이 작성되며,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된다.
UserOperation 생성: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동으로 실행될 거래 제안의 내용을 바탕으로, 에이전트는 하나의 UserOperation을 생성한다.
EntryPoint 제출: 생성된 UserOperation은 EntryPoint 컨트랙트에 제출된다.
번들러 처리: 번들러(Bundler)는 이 요청을 수집해 블록에 포함시킨다.
가스비 처리: 트랜잭션에 필요한 가스비는 페이마스터(Paymaster)가 대납할 수 있어, 에이전트는 별도의 자금을 보유하지 않고도 온체인 상호작용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트랜잭션의 생성, 실행, 결제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기 때문에, ACP에서 정의한 평가 점수, 협상 조건, 계약 이력 등도 모두 체계적으로 온체인에 기록되며 신뢰 기반의 상거래를 구현할 수 있게된다.
나아가, 계정 추상화는 ACP 작업의 사용자 경험 개선과 에이전트의 공동 통제 기능에도 기여한다. 스마트 계정은 앞서 설명한 에이전트 간의 기본적인 트랜잭션 실행 뿐만 아니라, 다중 서명(Multisig), 실행 조건, 만료 시간 지정 등의 정교한 트랜잭션 제어 옵션을 내장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다수의 에이전트가 수익을 분배하거나 공동 자금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계정 소유권과 권한을 세분화하는 등의 제한을 설정할 수 있다. 예컨대, 콘텐츠 제작 클러스터에서 영상 편집을 담당하는 에이전트가 렌더링 작업을 완료하면, 그 결과물을 자동으로 스토리 프로토콜에 업로드하고, 이어서 수익 분배까지 트리거하는 일련의 작업이 발생한다. 이 과정을 스마트 계정에서는 하나의 번들 트랜잭션으로 처리할 수 있다.
정리하면, ERC-6551은 NFT를 통해 에이전트의 온체인 계정을 생성하고, ERC-4337은 그 계정이 작동하는 방식과 트랜잭션 흐름을 규정하는 실행 환경을 제공한다.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두 표준은 ACP가 자율적이면서도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며, 이는 EVM이라는 범용 실행 환경 위에 표준화된 인프라 컴포넌트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궁극적으로, EVM의 1) 보안성, 2) 개발 용이성, 그리고 3) 인프라 표준화라는 세 가지 강점은 에이전트 기반 상거래라는 새로운 기술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ACP가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 왜 EVM이 가장 적합한 실행 환경인지를 보여준다.
위에서 살펴본 EVM의 기술적인 정합성 뿐만 아니라, 실사용 측면에서도 ACP에게 EVM은 가장 유리한 실행 환경이라 할 수 있다.
Source: Virtuals Protocol
ACP는 본질적으로 범용 모듈이다. 즉, 어느 서비스든 멀티 에이전트의 자동화된 워크 플로우를 통합하여 생산성이나 사용자 경험 혹은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ACP로 작동하는 자율형 헷지 펀드의 경우에 새로운 디파이 프로토콜을 처음부터 구축하고 신규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보다는, 이미 활발히 거래되는 자산이나 검증된 머니 마켓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알파를 포착하고 LP 파밍을 실행함으로써 풍부한 유동성과 시장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버츄얼스 프로토콜의 ACP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AI 에이전트 솔루션은,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이미 활성화된 생태계에 통합될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⓵ AI 에이전트를 통해 작업의 효율성과 생산성, 혹은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과 ⓶ 하나의 생태계를 새로 구축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이며, AI 에이전트는 본질적으로 전자에 특화된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⓵ 즉, 전자는 에이전트가 24/7 자율적으로 작동하며 사람의 개입 없이도 크립토 환경에서 워크 플로우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시적인 작업 단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⓶ 반면, 후자는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인프라, 디앱, 유동성, 사용자 베이스, 규제 정합성까지 포함된 시장 구조 전체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다.
따라서 ACP가 실제 사용처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플랫폼이나 체인에 구애받지 않는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바탕으로, 검증된 생태계에 플러그인되어 확장하는 것이 우월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에이전트를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지 속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이 수행할 경제 활동이 없다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검증된 인프라와 풍부한 유동성 환경에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자산화하는 인포 파이(InfoFi) 서비스의 콘텐츠 검증자, 예측 시장의 마켓 결정을 수행하는 거버넌스 클러스터, 혹은 머니 마켓의 유동성을 자동으로 리밸런싱하는 자본 운용 엔진 등으로 활용될 때 AI 에이전트의 활용 가능성은 극대화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EVM 생태계는 ACP가 실질적인 사용처를 찾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EVM 환경은 이더리움 레이어1을 합의 계층으로 삼고, 다양한 레이어2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방대한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EVM 생태계(이더리움 레이어1과 주요 롤업 및 사이드체인만을 포함한 기준)의 TVL은 약 690억 달러로, 비‑EVM(Solana, Cosmos 등)과 비교하면 약 9:1 비율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거래 규모 측면에서도 EVM 기반 DEX에서 발생하는 일일 거래량은 약 50억-60억 달러에 달하여,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처럼 방대한 경제 규모를 기반으로, 디파이 · RWA · 스테이블 코인 · 게이밍 · 컨슈머 앱 등, 마이크로 경제 단위의 서비스들이 EVM이라는 토대 위에서 다층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에이전트 클러스터가 얼마든지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실행 환경을 마련해준다. 결론적으로, ACP는 멀티 에이전트를 통해 수평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범용 모듈로서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니며, 이러한 모듈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은 유동성, 개발자, 사용자, 인프라, 거버넌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EVM 생태계 외에는 찾기 어렵다.
Source: Commondescent
지질학적 개념인 '지루한 10억 년’은 약 18억 년 전부터 8억 년 전까지 이어진 시대를 가리킨다. 지구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그렇다할 기후 변화, 생물 진화, 대멸종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던 시기로 평가된다. 그런 이유로 지루한 10억 년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는 지구 시스템 전반이 안정화되고 고등 생명체의 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 조용히 축적되던 시기였다. 산소 농도의 점진적 증가, 기후의 완만한 조절, 지각 판의 재배열 같이 느리지만 근본적인 변화들이 이 시기에 누적되었고, 그 결과로 캄브리아기 생물 대폭발이라는 인류사 이전 최대 규모의 진화적 사건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외형상 변화가 없어 보이는 시기야말로 가장 많은 준비를 갖추는 시기다. 오늘날의 EVM 생태계 또한 단기적인 어텐션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크립토 시장에서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기저에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적된 안정성과 탈중앙성이 존재한다. 즉, 높은 보안성의 합의 계층인 이더리움, 개발자 친화적인 도구들과 표준화된 컴포넌트,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검증된 프로토콜들이 유기적인 관계 하에 점진적인 발전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EVM은 다채로운 내러티브와 함께 등장하는 신생 체인들에 비해 따분해 보일 수는 있을지라도, 가장 견고하고 방대한 규모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현재 ACP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버츄얼스 프로토콜이 한때 AI 에이전트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현재 에이전트 런치패드를 통해 토큰이 출시되고 사라지는 격렬한 시장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버츄얼스 프로토콜은 ACP르르 통해 에이전트의 작업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 표준이자, 지속 가능한 에이전트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위한 기반을 차분히 쌓아가고 있다.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 시기는, 에이전트가 운영하는 마이크로 서비스들이 레고처럼 조립 가능한 형태로 폭발적으로 확산될 캄브리아기를 예비하는 준비 단계일지도 모른다. ‘지루한 10억 년’의 끝단에 서있는 지금, ACP가 어떻게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에이전틱 경제를 여는 계기가 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Virtuals Protocol - Introducing the Agent Commerce Protocol
ERC 4337 Docs - https://www.erc4337.io/
ERC 6551 Docs - https://eips.ethereum.org/EIPS/eip-6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