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리퀴드와 수이는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며 시가총액 기준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이퍼리퀴드는 초기에 초고속 파생상품 DEX으로 시작했으며, 수이는 무브(Move) 언어 중심의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다.
하이퍼리퀴드는 공격적인 바이백·소각 구조로 하이퍼사운드 머니를 추구하고, 수이는 전통적 L1 설계에 기반하여 검증자 보상과 네트워크 성장을 우선한다(오브젝트 기반 모델로 인한 락업 효과도 존재).
하이퍼리퀴드는 대규모 에어드롭과 트레이더 친화 기능으로 바텀업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한 반면, 수이는 공식 보조금·앰배서더 프로그램 등 기업형 구조를 통해 개발자·기관을 유치했다.
하이퍼리퀴드는 단일 DEX를 넘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하고, 수이는 인프라 강점을 실제 사용자 확보로 이어 가야 한다. 두 체인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는, 어떤 모델이든 커뮤니티 열기든 기술 혁신이든 다양하게 성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Water)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두 신생 레이어1 프로젝트인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와 수이(Sui)는, 서로 다른 전략을 펼치며 시가총액 기준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2025년 5월 26일 기준, 하이퍼리퀴드의 완전 희석 시가총액(FDV)은 약 390억 달러로 수이(360억 달러)를 앞지르며 시총 11위에 올랐고, 수이는 12위로 밀려난 상태다.
하이퍼리퀴드는 초고속 파생상품 DEX를 지향하는 앱체인으로 시작해, 기술력과 커뮤니티 우선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반면 메타(Meta)의 디엠(Diem)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수이는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며 무브(Move)라는 신규 프로그래밍 언어를 도입하고, 우수 개발자 유치 및 대형 VC 투자를 받아들여 생태계를 확장했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된 길을 걸어온 두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시사점과 각 체인 생태계의 진화 양상을 살펴본다.
하이퍼리퀴드
하이퍼리퀴드는 최대 10만 건의 주문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CEX급 온체인 오더북 DEX를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초기에는 VC나 대형 거래소 상장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 완성도와 사용자·유동성 확보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메인넷 출시 시점(TGE)에 HYPE 토큰 30%(약 12억 달러 상당)를 초기 사용자에게 에어드롭하고, 나머지 70%를 추가 보상으로 편성했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론칭은 시장의 폭발적 관심을 끌어냈으며, 트레이더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강력한 커뮤니티 소유 의식이 형성됐다. 하이퍼리퀴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트레이딩 리더보드, 카피 트레이딩 볼트, 트레이딩 대회 등을 제공해 초고속 거래 자체를 밈(meme)화하며 사용자들의 흥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수이
수이는 다소 전통적인 L1 노선을 택했다. a16z, Binance Labs, Coinbase Ventures 등으로부터 총 3억 3,600만 달러를 투자받고, 테스트넷과 해커톤을 거쳐 2023년 5월 메인넷 출시와 동시에 주요 거래소에 상장했다. 무브(Move)라는 신규 언어와 오브젝트 중심 블록체인 구조가 기존 L1의 처리·보안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내러티브를 전면에 내세웠다.
출시 초기에는 일간 활성 사용자가 많지 않았으나, 이후 개발자 친화 정책, 점진적 생태계 보상,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2024년 말에는 일일 활성 사용자 100만 명, TVL 20억 달러, 누적 거래량 443억 달러를 달성했다. 특정 ‘킬러앱’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디파이(DeFi)부터 게임·NFT까지 포괄하는 범용 체인이 되겠다는 장기 비전을 고수한다. 견고한 인프라가 다양한 디앱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이퍼리퀴드: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바텀업 에너지
하이퍼리퀴드의 초기 사용자층은 주로 트레이더들로 구성됐고, 상당수는 약 16억 달러 규모의 에어드롭을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VC 자금을 받지 않고,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점이 특징이다. 신속한 제품 출시와 기능 고도화, 에어드롭, 바이백 등이 잇달아 진행되면서 사용자 충성도가 크게 높아졌다.
수이: 탑다운 방식의 커뮤니티 구축
반면 수이는 공식 앰배서더 프로그램, 개발자 보조금, 대규모 밋업 등 좀 더 조직적이고 기업형 접근을 취했다. 단순 투기보다는 전문 개발자를 영입하는 데 집중했다.
물론, 수이 내부에도 NFT·게임 등에 열성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외부 빌더 그룹 주도로 움직이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기술·안정성·기업 대응을 강조하면서 ‘개발자 컨퍼런스’에 가까운 분위기를 띠는데, 이는 자유롭고 컬트적인 하이퍼리퀴드 커뮤니티와 대비된다.
하이퍼리퀴드: 사용자 우선주의 & 완벽주의
하이퍼리퀴드 공동 창업자인 제프리 얀(Jeffrey Yan)은 하버드 수학과 출신으로, 월가 고빈도 트레이딩(HFT) 업체인 허드슨 리버 트레이딩(Hudson River Trading)에서 근무한 이력이다. 이 같은 트레이더 관점이 하이퍼리퀴드의 설계 전반에 녹아들어 속도와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기존 L1들이 만족스러운 처리 속도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맞춤형 체인을 직접 구축한 것도 같은 이유다.
트레이더 출신답게 VC 자금보다 사용자 인센티브를 중시했고, 소수 정예 팀을 통해 신속하고 은밀하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기민함을 발휘했다. 중앙화 거래소만큼 간편한 온체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극단적 사용자 우선주의와 민첩한 실행력이 돋보인다.
수이: 테크 비저너리
수이는 메타(구 페이스북)의 디엠(Diem)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재들이 뭉쳐 출범했다. 에반 청(Evan Cheng)·샘 블랙셰어(Sam Blackshear) 같은 컴퓨터 과학 전문가들이 무브 언어와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을 개발하며 학술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을 꾀했다. 대형 투자 라운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뒤, 기존 블록체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R&D에 몰두했다.
단기 마케팅보다는 확장성과 안정성을 우선시하고, 폭넓은 개발자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였다. 업계가 빠른 성과를 요구했지만, 미스텐 랩스(Mysten Labs)는 무브 언어와 합의 프로토콜을 꾸준히 개선하며 장기적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HYPE: 하이퍼사운드 머니(Hypersound Money)
하이퍼리퀴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HYPE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수수료 환매·소각: 선물 거래 수수료 46%, 현물 거래 수수료 100%를 $HYPE 바이백하는데 사용. 일부 소각
상장 경매(HIP-1) & 소각: 31시간마다 현물 상장 슬롯을 USDC 경매에 부치고, 얻은 USDC로 HYPE 바이백·소각
선물 시장 개설 보증금(HIP-3): 신규 파생상품 개설 시 100만 HYPE를 담보로 걸어 더치옥션 과정을 통해 유통량 감소
밸리데이터 스테이킹: 검증자가 HYPE를 스테이킹해 네트워크 안전성을 강화
가스비: 하이퍼EVM(HyperEVM) 내 트랜잭션 수수료를 HYPE로 지불
이와 같은 방식들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배당 대신 소각을 택함으로써 중앙화·규제 리스크도 낮췄다. 또한 팀이 자사 토큰을 매수한다는 사실 자체가 “프로토콜을 계속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투자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이른바 ‘리더를 따라가는 효과(follow-the-leader effect)를 불러일으킨다.
$SUI: 네트워크 연료
수이의 토크노믹스는 전형적인 L1 구조에 가깝다.
가스·지분증명(PoS) 보안: 트랜잭션 수수료를 SUI로 지불, 검증자와 위임자에게 보상
스토리지 펀드(Storage Fund): 일부 수수료를 장기 스토리지 보조금으로 축적
수수료 소각: 이더리움 EIP-1559처럼 일부 수수료를 소각해 인플레이션 억제
하이퍼리퀴드처럼 수수료가 바로 토큰 환매로 이어지진 않고, 검증자 보상과 생태계 확장에 재투자된다. 다만 오브젝트 기반 데이터 모델로 인해 특정 공급 충격 효과가 존재한다. 새 오브젝트를 생성할 때마다 일정량의 $SUI가 스토리지 비용으로 사용되며(유통량 감소), 이를 삭제하더라도 $SUI 일부는 소각되어 유통량이 서서히 줄어드는 방식이다. 월루스(Walrus) 사용량이 늘수록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어 SUI 유통량을 줄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토큰 분배
수이는 팀·투자자·커뮤니티 펀드 등에 상당량을 배정해 개발·보조금·파트너십 등에 활용한다. 장기적인 네트워크 성장에는 긍정적이지만, 초기엔 내부자 지분이 크게 형성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하이퍼리퀴드는 토큰 70%를 사용자에게 할당해, 내부자 몫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했다. 물론 내부자가 트레이딩으로 상당한 물량을 간접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VC 중심 모델에 비해 훨씬 커뮤니티 친화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for users, not funds”라는 슬로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하이퍼리퀴드는 기업의 자사주 매입 같은 공격적 환매와 광범위한 분배를 통해 극단적 디플레이션을 추구하고, 수이는 수수료 중심의 운영으로 플랫폼 확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우선한다.
하이퍼리퀴드: EVM에 뿌리를 둔 실용주의
하이퍼리퀴드는 초고속 트레이딩에 특화된 독자 체인을 구축하면서도, 개발 편의를 위해 EVM 호환성(HyperEVM)을 유지했다. 솔리디티(Solidity)나 바이퍼(Vyper) 같은 기존 언어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초당 2만 건 이상을 처리하고, 주문 체결 속도를 최소화했다. 특히 온체인 파생상품 오더북을 제공해 디파이 프로젝트에 차별화된 인프라를 마련했다.
또 자체적으로 주요 DEX와 카피 트레이딩 볼트를 제공해, 개발자들이 이미 확보된 유동성과 사용자 풀을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다. 이더리움이나 BNB체인에 비하면 아직 규모가 작지만, EVM에 익숙한 개발자에게는 고속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이: 풀스택 혁신
수이는 기존 계정(Account) 기반을 버리고, 무브 언어를 통해 자산을 오브젝트 단위로 관리함으로써 병렬 트랜잭션을 구현했다. Mysticeti V2 합의 알고리즘을 적용해 수천 건의 트랜잭션을 동시에 처리하고, Remora(수평 확장)·Walrus(온체인 스토리지)·SEAL(프라이버시 도구) 등을 제공해 일반 EVM 체인보다 폭넓은 기능을 지원한다.
이 같은 오브젝트 모델과 프로그래머블 트랜잭션 블록(PTB)의 결합으로 높은 컴포저빌리티를 갖추고, 무브 언어는 솔리디티보다 진입장벽이 있으나 소유권 규칙 등을 통해 보안성을 높였다. zkLogin, Slush 같은 기능을 마련해 사용자 편의와 셀프 커스터디를 동시에 지향하지만, 이러한 독자 스택이 시장 주류가 되려면 지속적인 채택이 필수적이다.
하이퍼리퀴드: 킬러앱 우선
하이퍼리퀴드는 단일 DEX로 탈중앙화 파생상품 시장에서 약 80%의 점유율을 단숨에 차지했다. 이후 확보한 유동성과 수수료 수익을 대출·스테이블코인·파생상품 등 디파이 프로젝트에 공유하며, 에코시스템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이는 바이낸스가 거래소에서 출발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한 사례와 유사하지만, 하이퍼리퀴드는 더 개방적이고 커뮤니티 중심적이다.
즉, 제품(Product)에서 플랫폼(Platform)으로 도약하되, 우선 금융 분야에 집중하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이다. 생태계가 확대될수록 중앙화 리스크와 보안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수이: 플랫폼 플레이
수이는 처음부터 다채로운 용도를 지원하는 범용 체인을 지향했다. 재단이 디파이·게임·NFT·소셜 등에 골고루 투자하며 실험을 유도하고, 사용자 유입이 균등하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해 ‘Sui Overflow’ 해커톤, 앰배서더 프로그램, 보조금 제도 등을 통해 에코시스템 전반을 결속하려 한다.
딥북(DeepBook), 월루스(Walrus) 같은 핵심 인프라에 토큰을 발행하고, 스테이커·디파이 사용자·DEX 트레이더 등 수이 커뮤니티에게 에어드롭하는 접근도 두드러진다. 이렇게 장기 유저에게 보상을 집중해 여러 프로젝트가 서로 얽혀 플라이휠(flywheel)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게임 분야 역시 주요 육성 영역이다. SuiPlay0X1 콘솔을 선보여 무브 기반 오브젝트 모델을 활용한 게임 자산을 제시하고, 대형 기관·기업을 검증자로 끌어들이며 컴플라이언스 대응을 강조한다. 아직 대형 히트 앱은 없지만, 중규모 프로젝트들이 함께 성장해 일일 사용자 100만 명 이상을 달성한 점은 유의미하다.
하이퍼리퀴드와 수이는 서로 다른 전략을 통해서도 L1 생태계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이퍼리퀴드는 고성능 유니체인 모델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직접 보상하고 환매·소각으로 토큰 유통량을 줄이면서도 빠른 처리 능력을 확보했다. 반면 수이는 블록체인 인프라 자체를 재설계하고, 대형 개발자·기관·브랜드를 유치해 대규모 플랫폼으로 성장하려는 장기 계획을 내세운다.
물론 두 체인 모두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하이퍼리퀴드는 DEX 외에 추가 확장을 꾀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하며, 수이는 기술적 우수성을 대규모 사용자 유치로 연결시키면서 유령 체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양측은 상대 전략 일부를 점차 흡수하고 있다. 하이퍼리퀴드는 디파이 서비스군을 확대하고, 수이는 특정 분야(예: 게임, 디파이 애그리게이터)에 역량을 집중한다. 둘 다 시가총액 300억 달러를 넘기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암호화폐 생태계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도 발전 가능함을 다시금 보여준다.
결국 수이와 하이퍼리퀴드는 L1 성공 전략에 관한 두 가지 대담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차세대 웹3 대중화를 지향하는 범용 플랫폼이고, 다른 하나는 온체인 월스트리트를 표방하며 초고속 금융 프로토콜에 특화된 모델이다. 기술·경제·문화·내러티브 전반에서 극과 극처럼 보이나, 기존 상식을 깬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CeFi vs DeFi, L1 vs L2, VC 투자 vs 공정 론칭 등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 각각 독창적 길을 개척해나가는 점이 이들의 공통된 경쟁력이자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