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인류 사회가 발전한 역사를 보면, 그 중심에는 분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산업혁명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IT 산업이 자리 잡은 요즘에도 다양한 마이크로서비스들이 상호 협력하며 하나의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블록체인과 웹3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성숙된 마이크로 서비스들이 있어야 하는데, 기존 산업에서도 분업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실력과 역량을 갖춘 주체"들이 선제적으로 필요했다.
어쩌면 이를 위해서는 목적 중심으로 블록체인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로 요즘엔 특정 사례들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인프라를 설계하는 목적 중심 블록체인 설계 사례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들을 주목해볼 만하다.
"노동의 생산력에 있어서 가장 큰 향상과, 노동이 어디에서든 지시되거나 적용되는 데 있어서의 기술, 숙련도, 그리고 판단력의 대부분은 분업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p.13
Soruce: Adam Smith Works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항상 큰 프레임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라고 다르지 않다. 해서 필자는 "블록체인과 웹3는 어떻게 해야 생산성 측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역사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우리 인류가 생산성 측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바로 산업혁명 시절일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에서 생산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분업(Division of Labor)이었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에서 분업과 생산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며 핀(Pin)공장의 예시를 들었다. 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이 하루에 48,0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노동자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끝내서가 아니라,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나눠서 맡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업은,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하고 이 규모를 국제적인 규모로 확대하여 인류는 전례없는 성장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는 산업혁명 시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들에도 녹여져있다. 대표적으로 OTT 시장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넷플릭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유저들의 관점에선 하나의 서비스에 불과하지만 그 백딴에는 약 700개의 마이크로서비스들(재생 서비스, 추천 서비스, 결제 및 청구 서비스, 검색 서비스, 콘텐츠 인코딩 서비스, API 게이트웨이 같은)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넷플릭스라는 전체 서비스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분업(Division of Labor)은 이제 효율적인 시스템 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블록체인 시스템은 이러한 분업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을까? 과연 블록체인 인프라들도 이러한 분업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이번 아티클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블록체인 인프라가 추구해 온 방법론을 살펴보고, 앞으로 블록체인 인프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또한 어떤 형태의 블록체인이 이 분업의 구조에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과정과 미래 전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첫 번째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의 가장 첫 형태였던 모놀리틱 & 범용 목적 블록체인(General Purpose Built Blockchain)에 대해서 알아보자.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더리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이더리움은 모듈러 블록체인의 가장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지만, 초기에는 모듈러 방식의 블록체인 프레임워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더리움은 모놀리틱(monolithic) 형태의 블록체인, 즉 단일 샤드에서 모든 기능을 처리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더리움의 핵심 목표는 특정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어떤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이든 이더리움 위에서 구현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으며, 다양한 분산 애플리케이션(DApp)의 개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더리움은 심각한 확장성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모놀리틱 범용 목적 접근 방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트랜잭션 처리 속도: 네트워크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트랜잭션 처리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가스 비용 상승: 네트워크 혼잡으로 인해 트랜잭션 수수료(가스 비용)가 급격히 상승했다.
확장성 한계: 단일 체인에서 모든 연산을 처리하는 방식은 네트워크 성능에 근본적인 제약을 가져왔다.
개발자 및 사용자 이탈: 높은 비용과 느린 속도로 인해 일부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바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 사태였다. 2017년에 대퍼랩스(Dapper Labs)가 개발한 크립토키티는 단기간 내에 성공을 거둔 초기 NFT 프로젝트로, 한때 크립토키티 관련 트랜잭션이 이더리움 전체 트랜잭션의 30%를 차지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특성상 이렇게 트랜잭션 수요가 집중되면 처리 속도가 느려질 뿐만 아니라 수수료도 급격히 상승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이더리움을 '사실상 사용 불가능한' 네트워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 사태는 초창기 이더리움 네트워크와 같은, 단일 샤드에서 모든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네트워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애플리케이션 간에 확장성 의존성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처리량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특정 시간에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많은 트래픽이 몰리면, 이는 결국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트래픽의 원인이 네트워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아닐 때다. 예를 들어, 수많은 봇들이 의미 없는 트랜잭션을 계속해서 시도하거나,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디파이 활동들이 네트워크 자원을 과도하게 점유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네트워크에 정말로 필요한 트래픽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생태계가 부정적인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들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설계에 있어 트래픽 관리와 자원 할당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향후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확장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제시했다.
결국 이로인해 이더리움은 모놀리틱 및 범용 목적 블록체인이라는 초기 방향성을 수정하고, 여러 롤업 체인들이 이더리움 위에서 공존하는 모듈러 블록체인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더리움이 모놀리틱 방식을 포기했다고 해서 이 접근법이 블록체인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이더리움만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솔라나 블록체인은 여전히 단일 샤드에서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고 있다. 다만 솔라나의 경우, 모놀리틱 구조를 채택하면서도 체인의 처리 속도와 확장성에 초점을 맞춰 네트워크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이더리움의 초기 접근과는 차이가 있다. 솔라나와 같은 블록체인을 “퍼포먼스 중심의 모놀리틱 블록체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디테일하게 어떤 차이점들과 특성들이 있을까?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은 지난 시장 사이클부터 태동하여 현재까지 블록체인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여러 블록체인 인프라의 유형들 중 하나이다. 이더리움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앞서 언급한 크립토키티 사태 외에도 빈번하게 네트워크 속도 저하나 트랜잭션 수수료 급등을 경험했고, 이때마다 사용자들과 개발자들은 "사용 가능한" 블록체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갈망을 해소해 준 것이 바로 솔라나와 그 이후 등장한 다양한 퍼포먼스 체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퍼포먼스 체인들은 초창기 이더리움과 마찬가지로 범용 목적 블록체인(General Purpose Blockchain)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더리움과 달리 매우 빠른 블록 생성 시간과 상대적으로 큰 블록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더리움이 겪던 '속도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였다.
또한 실행 레벨에서는 트랜잭션 병렬 처리를 도입하여, 트랜잭션 간 의존성이 없는 경우 동시 처리가 가능해져 네트워크의 확장성을 대폭 개선하였다. 2024년 1분기와 2분기에 "EVM 병렬 처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초창기에는 이러한 시도들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다. 과연 빠르고 저렴한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해서 이더리움의 사용자들과 개발자들, 그리고 블록체인 생태계 외부의 사람들(non-web3)을 유치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의 대표 주자인 솔라나가 그 좋은 예다. 솔라나는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온체인 지표들(DEX 거래량, NFT 거래량, 스테이블코인 전송량 등)에서 이더리움을 앞서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의 실질적인 성공은 결과적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수이(Sui), 모나드(Monad), 세이(Sei)와 같은 다양한 퍼포먼스 중심 체인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심지어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새로운 퍼포먼스 블록체인들이 계속해서 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들이 기존의 블록체인들과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2.1.1 Decentralization
우선 첫 번째로 탈중앙성이다. 빠른 블록 생성 시간과 큰 블록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검증하고 블록을 생산하는 노드의 수가 현실적으로 이더리움보다 적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네트워크의 탈중앙화 정도에 대한 우려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솔라나의 노드 수는 이더리움보다 적다. 그나마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들 중에서 솔라나가 가장 탈중앙화되어 있다고 평가받는데도 그렇다.
물론 "얼마나 많은 노드들이 얼마나 분산되어야 탈중앙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절대적인 숫자와 분산 정도로 봤을 때 이들 모두 이더리움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2.1.2 Customizability
두 번째로는 최적화, 그리고 커스터마이징이다. 필자가 아까도 언급하였지만, 퍼포먼스 중심 블록체인들 대부분이 범용 목적 블록체인이다. 범용 목적 블록체인은 어떠한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이라도 쉽게 온보딩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인프라의 디자인이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목적에 따라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은 각 섹터별로 기본적인 애플리케이션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정말로 해당 섹터에 고도화된 기능을 필요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에는 범용 목적 블록체인이 알맞은 인프라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금융 상품을 다루는 DeFi 애플리케이션이나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더 특화된 블록체인 환경이 필요할 수 있다(필자가 서문에서 이야기 했던, 여러개의 전문적인 마이크로 서비스들이 합쳐져서 넷플릭스라는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듯이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범용 목적 블록체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의미의 범용 목적으로 사용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수용하려다 보니, 오히려 특정 분야의 고도화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블록체인 인프라가 탈중앙화의 문제를 해결하기란 매우 어려운 반면, 커스터마이징 관련된 문제는 충분히 해결해볼 수 있다는 부분이다. 만약 하나의 애플리케이션만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면 어떨까?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블록체인의 인터넷”을 표방한 코스모스와 코스모스 SDK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앱 체인(Application Speicific Chain), 그리고 “플랫폼들의 플랫폼"을 표방한 아발란체와 아발란체 기반 레이어1들이다.
코스모스와 아발란체의 애플리케이션 중심 체인들은 제가 1과 2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잘 해결한 블록체인 인프라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코스모스 SDK와 아발란체 기반 레이어1들이 매우 빠른 인프라를 제공하면서도, 애플리케이션 특화 체인으로서 특정 섹터의 고도화된 애플리케이션에 맞춤형 인프라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범용성과 특화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스모스와 아발란체 생태계 내에서 각 체인은 자신의 고유한 요구사항에 맞춰 최적화된 환경을 구축할 수 있으면서도, 코스모스의 경우 IBC(Inter-Blockchain Communication) 프로토콜을, 아발란체의 경우 ICM(Inter-chain Messaging)을 통해 다른 체인들과의 상호 운용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보여주는 예시로 코스모스에서는 오스모시스(Osmosis), 스타게이즈(Stargaze), 스트라이드(Stride)를 들 수 있다. 오스모시스는 DEX에 특화된 앱체인이고, 스타게이즈는 NFT 마켓플레이스에, 스트라이드는 스테이킹 유동화 서비스에 특화된 앱체인이다. 이들은 독립적인 블록체인이지만 IBC를 통해 서로의 자산을 이동하며 각 체인의 인프라를 상호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발란체의 사례로는 디파이 킹덤즈(DeFi Kingdoms)와 덱스어랏Dexalot)이 있다. 디파이 킹덤즈는 아발란체 기반 레이어1 체인인 DFK 체인 위에서 운영되는 게임파이 프로젝트로, 게임 내 자산 거래와 디파이 기능을 제공한다. 덱스어랏도 오스모시스 처럼 아발란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DEX 중심의 레이어1 체인이며 빠른 속도와 낮은 거래 수수료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전부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ICM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며 소통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은 이들이 각각 다른 체인임에도 불구하고 IBC나 ICM 같은 프로토콜을 통해 목적에 맞게 자산을 이동하면서 원활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는 코스모스와 아발란체 생태계가 제공하는 상호 운용성과 특화된 기능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애플리케이션 특화 체인의 또 다른 장점은 각자의 목적에 맞춘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화된 거버넌스 구조는 해당 애플리케이션의 요구사항에 더욱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인프라가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발전하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에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단점이 존재한다:
3.1.1 Economic Security
첫째, 각 체인의 독립적 운영은 보안 측면에서 취약점을 노출시킬 수 있다. 앱 체인의 경우 개별 체인들이 자체적으로 검증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특히 초기 단계에서 51% 공격과 같은 보안 위협에 취약할 수 있다.
더불어, 앱체인이 초기 단계에서 네트워크 보안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하더라도 단일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체인의 특성상 비즈니스 확장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DEX나 NFT 마켓플레이스와 같이 이미 검증된 PMF(Product-Market Fit)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하나의 온전한 레이어1 체인의 운영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지기는 어렵다.
이는 네트워크의 전반적인 사용성과 활용도를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트랜잭션 수수료가 적게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체인의 지속적인 운영과 보안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토큰을 계속해서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토큰 공급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토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3.1.2 Fragmentation
둘째,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복잡성이 증가할 수 있다. IBC가 체인 간 상호작용을 용이하게 해주지만, 사용자들은 여전히 여러 체인에 걸쳐 지갑을 관리하고 각 체인의 특성을 이해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이와 반대로 범용 목적 체인들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기 위해서 여러 체인을 사용해야하는 번거로움은 없지만, 체인이 너무 범용 목적으로만 쓰이다보니 최적화 되어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찾기 어렵다는 상충이 있다) 이러한 파편화 문제는 ICA, ICQ와 같은 새로운 인터체인 표준들도 보완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발전을 요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블록체인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새로운 블록체인의 프레임 워크가 목적 중심 블록체인(Purpose Built Blockchain)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목적 중심 블록체인(Purpose Built Blockchain)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는 스토리(Story Network)의 공동 창업자이자 CPO(Chief Protocol Officer)인 제이슨 자오(Jason Zhao)가 그의 트위터에서 처음 제안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목적 중심 블록체인은 어쩌면 오늘 필자가 이야기한 블록체인 설계의 프레임워크들이 가진 특장점들을 교묘하게 잘 조합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잘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더리움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성능을 유지한다.
특정 사용 사례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설계했다.
그 사용 사례는 웹3 네이티브한 영역(예: 거래소나 NFT)이 아닌, 기존 산업에서도 문제로 정의되었던(더 큰 영역) 영역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실제 산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서 이러한 방법론은 블록체인 기술의 실용성과 적용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목적 중심 블록체인의 핵심은 특정 사용 사례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프라 레이어에 문제 특화 로직을 주입하여, 범용 블록체인과 달리 특정 사용 사례에 대해 뛰어난 성능을 제공한다. 이는 주로 체인의 핵심 비즈니스 로직을 담은 프리컴파일된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구현된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목적 중심 블록체인이라고 해서 새로운 인프라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오히려 코스모스와 아발란체가 만들어놓은 앱 중심 체인 인프라를 응용해서 목적 중심 블록체인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목적 중심 블록체인은, 애플리케이션 중심 체인을 구축했던 기술인 코스모스와 아발란체를 사용하여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한 시장을 다룬다는 점이 다른 점이기 때문에 목적 중심 블록체인을 구축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프라를 학습하지 않아도 된다.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시를 들어보자. 스토리(Story)는 지식 재산권을 블록체인에 온체인화하는 데 중점을 둔 목적 중심 블록체인이다. 지식 재산권은 복잡한 부모-자식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는 기존의 범용 블록체인에서 다루기 어려운 구조다. 스토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roof-of-Creativity' 프로토콜을 레이어 1에 직접 구현했다. 이는 지적 재산권과 같은 관계형 데이터 구조를 빠르고 비용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스토리의 경우 코스모스 SDK(Comet BFT)를 기반으로 구축한 블록체인이지만, IP시장이라는 거대한 섹터에 알맞는 인프라를 커스터마이징 했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금융을 위해 만들어진 블록체인인 인젝티브(Injective) 네트워크 역시 코스모스 SDK 기반의 목적 중심 블록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젝티브는 금융 애플리케이션들이 네트워크에서 최적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듈들(거래소 모듈(Exchange Module), RWA 모듈(RWA Module) 등)을 인프라에 내재화하고 블록 타임과 트랜잭션 수수료를 최적화하여 복잡한 금융 거래들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을 설계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아발란체 생태계에도 존재한다. 에버그린 레이어1(Evergreen Layer 1)이 바로 그것이다. 에버그린은 금융기관 및 기업을 위해서 특별히 설계된 블록체인으로 KYC와 AML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딴에서의 지원이 기본으로 내장되어있고, 기관이나 기업의 요청에 따라 블록체인을 맞춤형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부분이 다른 블록체인들과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발란체는 Hyper SDK를 통해 개발자들이 고성능의 블록체인과 VM 레이어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기술 스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아발란체 생태계 내에서는 더 다양한 목적 중심 블록체인 사례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코스모스와 아발란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DEX에 특화된 목적 중심 블록체인인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이퍼 리퀴드는 중앙화 거래소(CEX)와 유사한 경험을 탈중앙화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자체 레이어 1 블록체인을 구축하여 특정 사용 사례에 대한 성능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목적 중심 블록체인은 이미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고(제이슨 자오가 이들을 명확하게 분류하기 전까지는 그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목적 중심 블록체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장점도 많지만, 아직 사용 사례의 이점과 운영 오버헤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체 레이어 1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것은 상당한 작업량을 필요로 하며, 앞서 언급했던 충분한 탈중앙화, 체인 간 통신, 유동성 확보 등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목적 중심 블록체인은 다음의 두 가지 상반된 요구사항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추가적인 인프라 오버헤드를 정당화할 만큼 넓은 사용 사례여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앱 체인과 같은 인플레이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둘째, 동시에 특정 분야의 성능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좁은 사용 사례여야 한다. 그러므로 목적 중심의 블록체인을 평가할 때 위와 같은 기준들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블록체인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업계는 기존 산업들처럼 분업의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분업의 개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분업은 초창기에 개인 간의 협력으로 시작해, 점차 기업 간, 나아가 국가 간의 분업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면서 인류 사회에 번영을 가져왔다. 결국 분업의 핵심은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실력과 역량을 갖춘 주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협업하여 더 높은 수준의 품질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데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블록체인을 바라보면, 특정 섹터에 최적화된 블록체인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더 나은 사용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인다.
만약 목적 중심의 블록체인들이 특정 섹터에 대해 최적화된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 지속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블록체인 생태계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여러 블록체인들이 서로 소통하며 분업의 구조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러한 발전 방향은 블록체인 기술이 단순히 기술적 혁신을 넘어, 산업 구조의 진화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각 섹터별로 특화된 블록체인들이 서로의 강점을 살려 협력한다면, 우리는 더욱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블록체인 생태계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가능해지려면, 체인간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는 메시징 프로토콜의 발전이 필수적이다(레이어 제로와 같은 메시징 프로토콜도 어찌보면 목적 중심의 블록체인에 속할 수 있다. 이들은 오직 체인간 메시징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UIUX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선 요즘 대두되고 있는 체인 추상화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봤을 때 이러한 작업들을 수행하는 프로토콜들 역시나 목적 중심의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수의 목적 중심의 블록체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하게 만드는 미래가, 분업이 블록체인에 적용된 사례이자 웹3 업계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분업이 산업혁명과 인류의 번영에 기반이 되었듯, 목적 중심 블록체인들의 등장과 이들의 심리스한 협업이 블록체인 산업에도 생산성 혁명을 가져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