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A 시장은 2023년 약 10억 달러에서 2026년 현재 270억 달러 이상으로 급성장했으나, 현재의 블록체인 인프라는 기관급 금융 자산을 다루기에 성능·컴플라이언스·상호운용성에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파로스(Pharos)는 이 인프라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금융 특화 레이어 1 블록체인이다.
파로스는 "병렬화의 정도(Degree of Parallelism)"라는 자체 프레임워크를 통해 블록체인 성능 진화의 단계를 DP0에서 DP5로 정의하고, 현존하는 대부분의 고성능 블록체인(DP2~DP3)을 넘어 DP4 이상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밸리데이터가 동시에 블록을 제안하는 비동기 BFT 합의, EVM과 WASM을 동시에 지원하는 듀얼 VM, 블록 처리 과정을 6단계로 분할하여 동시 처리하는 파이프라이닝, 그리고 기존 블록체인 스토리지 대비 최대 80%의 저장 비용 절감을 달성하는 파로스 Store를 구현했다.
파로스의 SPN(Special Processing Networks)은 메인넷의 보안을 공유하면서 고빈도 거래, 프라이버시 연산, AI 추론 등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는 모듈러 확장 레이어로, 전통 금융의 기관 분화 구조를 블록체인 아키텍처로 재구성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파로스는 체인링크·레이어제로·센트리퓨즈 등과 RealFi Alliance를 결성하여 자산 토큰화부터 유통·정산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홍콩 상장사 GCL New Energy와 에너지 수익권 토큰화, 분산형 에너지 거래 등 실물 자산 연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Finance는 라틴어 'finis'에서 유래했다. 끝, 결말, 완결이라는 뜻이다. 중세 프랑스어를 거치며 금전 거래의 "최종 정산"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후 자금의 조달과 관리라는 현대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금융의 본질은 거래에 "끝"을 부여하는 것이다. 약속된 조건 하에, 약속된 자산이, 약속된 시점에 이전되었음을 양 당사자가 확인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정산이고, 그것이 금융이 존재하는 이유다.
블록체인은 이 "끝"을 기술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기술이다. 파이널리티(finality)라는 개념이 블록체인 설계의 핵심 지표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랜잭션이 확정되면 되돌릴 수 없고,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으며, 중개자 없이도 정산이 완결된다. 이론적으로 블록체인은 금융의 어원적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블록체인이 금융을 다루겠다고 선언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현실 세계의 자산이 온체인 위에서 실제로 정산되는 경험은 여전히 극히 제한적이다. 토큰화된 미국 국채 시장이 100억 달러를 넘어섰고, 블랙록의 BUIDL 펀드가 수십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지만, 이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수조 달러 규모의 전통 금융 자산이 온체인으로 이동할 잠재력이 있다는 전망은 끊이지 않지만, 현실의 속도는 기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토큰을 발행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려는 프로젝트, 파로스를 살펴본다.
RWA(Real-World Assets, 실물 자산) 토큰화 시장의 성장세는 부정할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 온체인 RWA 시장은 2023년 초 기준 약 10억 달러에서 2026년 3월 현재 27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했다. 토큰화된 미국 국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카테고리였고, 프라이빗 크레딧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그먼트가 되었다.
기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JP모건의 Kinexys 플랫폼은 하루 20억 달러 이상의 거래를 처리하고, 로빈후드는 유럽 사용자를 대상으로 토큰화된 미국 주식을 아비트럼(Arbitrum)에서 출시했다. BCG는 토큰화된 RWA 시장이 2033년까지 약 18.9조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RWA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그러나 이 숫자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성장이 얼마나 특정 조건에 의존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현재 RWA 토큰화가 성공한 영역은 공통점이 있다. 토큰화된 미국 국채는 리스크 구조가 단순하고, 법적 틀이 잘 잡혀 있으며, 규제 복잡도가 낮다.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성공은 "토큰화하기 가장 쉬운 자산"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지, 블록체인이 금융 전반을 소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보다 복잡한 자산, 예컨대 부동산, 사모 채권, 구조화 상품, 에너지 자산 등을 온체인에서 다루려면, 현재의 인프라로는 넘기 어려운 구조적 병목이 네 가지 존재한다.
첫째, 실시간에 준하는 처리 속도와 확정성이 필요하다. 기관급 금융 거래는 "이 거래가 정확히 언제 확정되는가"가 핵심이다. 1초 이내에 거래가 확정(서브초 파이널리티)되어야 하고, 네트워크가 혼잡할 때도 속도가 일관되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범용 블록체인은 트래픽이 몰리면 수수료가 치솟거나 거래가 밀리며, 확정 시간도 가변적이다. 거래의 "끝"이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없다면, 금융 인프라라 부르기 어렵다.
둘째, 수십억 개의 계정과 자산을 감당할 수 있는 데이터 저장 구조가 필요하다. 이더리움을 비롯한 기존 블록체인들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성능이 떨어지는 "상태 비대화(state bloat)" 문제를 안고 있다. 쉽게 말해, 장부가 두꺼워질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느려지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려면,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져도 성능이 유지되는 새로운 저장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기관마다 다른 규제와 프라이버시 요구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블록체인 위에서 KYC 의무가 있는 기관용 자산 풀과, 누구나 참여 가능한 디파이 프로토콜이 공존해야 한다. 하나의 실행 환경에서 이 두 세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넷째, 체인별로 흩어진 자산과 유동성을 연결하는 상호운용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 토큰화된 자산 대부분은 발행된 체인에 갇혀 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에 분산된 자금은 자본 효율을 떨어뜨리고, 이는 기관 투자자가 온체인 금융에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이 네 가지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블록체인이 금융의 "끝"을 보장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로스는 바로 이 인식에서 출발했다. 기존 체인에 기능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금융이 요구하는 조건들에서 역산하여 합의·실행·저장·확장 레이어 각각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것. 그것이 파로스가 자체 레이어 1 블록체인을 만드는 이유다.
파로스는 이 네 가지 조건 각각에 대해 체인의 서로 다른 레이어로 응답한다. 섹션 2에서는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 즉 속도와 규모에 대한 기술적 응답에 대해 살펴본다.
파로스는 모듈러 풀스택 병렬 L1을 표방하고 있으며, 네트워크는 세 개의 계층으로 구성된다.
L1-Base: 데이터 가용성과 하드웨어 가속을 담당하는 기반 계층이다. 블록체인에서 "모든 노드가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가"는 보안과 검증 가능성의 전제 조건인데, L1-Base는 이를 하드웨어 수준에서 최적화하여 보장한다. 금융 인프라에서 데이터 가용성이 훼손되면 정산의 검증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이 계층은 파로스 아키텍처의 물리적 토대에 해당한다.
L1-Core: 합의, 실행, 저장이 이루어지는 고성능 핵심 계층이다. 서브초 파이널리티와 높은 처리량을 달성하는 파로스의 기술적 핵심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L1-Extension: L1-Core 위에 구축되는 모듈러 확장 계층이다. SPN(Special Processing Networks)의 생성, SPN 간 상호운용, 네이티브 리스테이킹을 통한 보안 공유가 이 계층에서 이루어진다.
이 3계층은 각각 독립적으로 최적화되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먼저 L1-Core에 해당하는 속도와 규모에 대한 기술적 응답을 살펴본다.
파로스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블록체인 성능 진화를 바라보는 프레임워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로스는 "병렬화의 정도(Degree of Parallelism, DP)"라는 개념을 통해 블록체인의 성능 단계를 DP0부터 DP5까지로 정의한다.
DP0: 트랜잭션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모델
DP1: 합의 메커니즘의 확장성이 개선됨
DP2: 트랜잭션 수준의 병렬 처리가 도입됨
DP3: 파이프라이닝이 추가되어 처리량이 크게 향상됨
DP4: 데이터 저장과 검증(머클화)까지 동시에 처리하여, 데이터가 늘어나도 성능이 유지됨
DP5: GPU, 보안 하드웨어(TEE), 영지식 증명 가속기 등 다양한 하드웨어의 연산 능력까지 동시에 활용
파로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고성능 블록체인은 DP2에서 DP3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파로스는 L1-Core에서 DP4를 기본으로, L1-Extension의 SPN을 통해 DP5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파로스가 현재 어떻게 DP4까지의 구현을 이루어냈는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2.3.1 빠르고 유연한 합의 메커니즘
섹션 1.2에서 언급한, 금융이 블록체인에 요구하는 첫 번째 조건은 빠르고 예측 가능한 거래 확정이었다. 거래가 빠르고, 예측 가능하며,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블록체인 합의의 전형적인 구조는 이렇다. 매 라운드마다 검증자(밸리데이터) 한 명이 블록을 제안하고, 나머지 검증자들이 투표한다. 이 구조에서 제안자는 병목이 된다. 검증자가 100명이면, 제안자 한 명이 전체 블록 데이터를 모두에게 전송하고 나머지 99명은 작은 투표 메시지만 보내는 비대칭적 구조가 형성된다. 검증자가 늘어나면 제안자의 부담이 커지고, 블록 생성 속도에 한계가 생긴다.
파로스의 합의 메커니즘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이 프로토콜은 SOSP 2023(운영체제 분야 최상위 학회)에 발표된 논문에 기반하며, 두 가지 주요 개선을 이루었다.
첫번째는 고정된 대기 시간의 제거이다. 이더리움은 12초마다, 비트코인은 10분마다 블록이 만들어진다. 파로스는 이런 고정 간격을 완전히 없앴다. 네트워크가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실제 네트워크 속도에 맞춰 최적의 타이밍에 블록을 생성한다. 불필요한 대기 시간이 사라지므로, 처리 속도가 물리적 한계에 가깝게 수렴한다.
둘째는 모든 검증자가 동시에 블록을 제안하는 논블로킹(nonblocking) 통신이다. 한 명의 제안자에 의존하는 병목이 사라지므로, 검증자 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전체 네트워크 처리량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가 된다. 기존에는 검증자가 많아지면 성능이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었는데, 파로스는 이를 뒤집은 것이다. 다만 모든 검증자가 동시에 블록을 내놓으면 중복 거래 처리나 블록 간 순서 결정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데, 파로스는 이를 DAG(방향성 비순환 그래프)라는 구조를 활용해 해결한다.
또한, 지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검증자가 네트워크 지연으로 인해 느리게 작동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이 그 속도에 맞춰 느려지지 않는다. 각 노드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독립적으로 블록을 제안할 수 있는 유연한 진행(Flexible Advancement) 구조 덕분이다.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운용하려면 전 세계에 검증자를 두어야 하므로, 이 특성은 실용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구조적 개선에 더해, 파로스는 패스트패스 실행 메커니즘(fast-path execution mechanism)을 구현했다. 검증자들 사이에서 조기에 쿼럼 합의가 이루어진 트랜잭션은 전체 합의 파이프라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확정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이는 합의 과정 내부에 일종의 지름길을 만드는 것으로, 금융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이고 비경합적인 트랜잭션은 현저히 낮은 지연 시간으로 정산되고, 보다 복잡하거나 경합이 있는 트랜잭션만 전체 합의 흐름을 거치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섹션 2.3.3에서 설명할 단계별 파이널리티 모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예컨대 마이크로초 단위의 순서 확정이 중요한 초고속 거래 시나리오에서, 패스트패스를 통과한 트랜잭션은 순서 확정(Ordering Finality)에 거의 즉시 도달할 수 있다. 반면 블록 단위의 완전한 보증을 필요로 하는 규제 정산은 표준 파이프라인을 통해 처리된다. 패스트패스와 단계별 파이널리티를 결합함으로써, 파로스는 동일한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금융 거래가 속도와 확정성의 완결도 사이에서 각자에게 최적인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파로스 팀은 100개 노드 규모의 글로벌 테스트넷에서 초당 13만 건 이상의 거래 처리를 달성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프로덕션 목표치로는 50,000 TPS와 서브초(1초 이내) 파이널리티를 제시하고 있다.
2.3.2 블록 처리 과정의 파이프라이닝
여기에 더해 파로스는 블록 처리의 전체 흐름을 파이프라이닝한다. 하나의 블록이 완성되기까지는 거래 순서 확정, 거래 실행, 데이터 조회, 위변조 방지를 위한 머클 해시 생성, 블록 조립, 최종 저장의 6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기존 블록체인은 이 과정을 한 블록씩 순서대로 수행한다.
파로스는 이를 공장의 조립 라인처럼 재구성한다. 블록 A가 실행되는 동안 이전 블록 B의 머클 해시가 생성되고, 동시에 다음 블록 C의 순서가 확정되는 식으로, 서로 다른 블록의 서로 다른 단계가 병렬로 진행된다. 각 단계를 담당하는 자원이 쉬는 시간 없이 가동되므로, 단위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블록 수가 크게 늘어난다.
물론 여러 블록을 동시에 처리하면 데이터 정합성이 깨질 위험이 따른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블록의 중간 결과를 다른 블록이 참조하거나, 같은 상태를 두 번 읽는 사이에 값이 바뀌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파로스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 단계에서 디스크 접근이 많은 작업과 연산이 많은 작업을 분리하여 스케줄링하고, 확정 전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엄격히 차단한다. 여러 블록이 동시에 흐르되, 결과의 정확성은 한 블록씩 처리한 것과 동일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2.2.3 파이널리티의 단계적 분리
금융의 관점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파로스가 거래의 확정성을 세 단계로 나눈다는 것이다.
순서 확정(Ordering Finality): 거래들의 처리 순서가 결정된 시점. 이 이후에는 어떤 노드에서 실행하든 같은 순서가 보장된다.
실행 확정(Transaction Finality): 거래 실행 결과가 확정된 시점. 사용자는 자신의 잔액 변동 등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블록 확정(Block Finality): 블록 전체가 완결된 시점. 오라클(외부 데이터 공급자)이나 데이터 인덱서 같은 인프라가 완전한 블록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용도에 따라 필요한 "확정"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고속 거래에서는 순서만 확정되면 충분하지만, 자산 정산에서는 블록 단위의 완전한 확정이 필요하다. 디파이 거래소는 실행 확정만으로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이 단계별 설계는 금융의 다양한 요구를 기술 구조 차원에서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은 대규모 계정과 자산을 수용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실행 및 저장 구조이다. 거래가 빠르게 확정되더라도, 규모가 커질수록 시스템의 성능이 떨어진다면 금융 인프라로 쓸 수 없다.
2.4.1 실행: DTVM Stack과 컴파일러 수준의 최적화
파로스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실행 엔진인 EVM과 차세대 표준으로 주목받고 있는 WASM 두 가지를 동시에 지원하는 듀얼 VM 구조를 채택했다.
이는 단순히 두 개의 VM을 나란히 돌리는 것이 아니다. 파로스의 핵심 실행 엔진인 DTVM(DeTerministic Virtual Machine)은 dMIR이라는 통합 중간 언어를 사용한다. EVM용으로 작성된 코드든 WASM용으로 작성된 코드든, 먼저 이 공통 중간 언어로 변환한 뒤, 그 위에서 다양한 최적화를 일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컴파일러 기술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LLVM/MLIR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이 구조 덕분에 EVM 호환성이 단순한 인터프리터 수준의 에뮬레이션이 아니라, 컴파일러 수준의 최적화를 거친 고성능의 실행이 가능해진다. 파로스의 벤치마크에 따르면 ERC-20, ERC-721, ERC-1155 등 주요 이더리움 표준 컨트랙트에서 evmone 대비 최대 2배의 성능 개선을 달성했으며, 연산 집약적 워크로드(피보나치)에서는 3.6배, JIT 모드에서는 인터프리터 대비 58배 이상의 성능 향상을 달성했다.
금융 자산을 다루는 맥락에서 특히 중요한 속성이 하나 더 있다. 결정론적 실행, 즉 같은 거래를 어떤 노드에서 실행하든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일반 WASM 런타임은 소수점 계산, 메모리 배치 순서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DTVM은 중간 언어(dMIR) 단계에서 이런 불확정성을 원천 차단한다. 금융 자산의 잔액이 노드마다 1원이라도 다르게 계산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되므로, 이 속성은 금융 인프라의 본질적 요구사항이다.
DTVM은 솔리디티(Solidity)는 물론 C/C++, Rust, Java, Go, AssemblyScript까지 6개 프론트엔드 언어를 지원한다. 이더리움 생태계와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도, 기관 개발자들이 기존 시스템 코드와 라이브러리를 활용하여 고성능 스마트 컨트랙트를 작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DTVM은 두 VM 사이의 상호호출 또한 지원하기 때문에, 개발자는 상황에 맞는 최적의 도구를 선택할 수 있다.
2.4.2 병렬 스케줄링: SALI와 하이브리드 실행
블록체인에서 병렬 실행의 핵심 과제는 "어떤 거래들을 동시에 처리해도 안전한가"를 판별하는 것이다. 예컨대 A→B 송금과 C→D 송금은 서로 독립적이므로 동시에 처리해도 되지만, A→B 송금과 B→C 송금은 B의 잔액을 둘 다 건드리므로 순서가 중요하다.
파로스는 이를 위해 SALI(Smart Access List Inference)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SALI는 스마트 컨트랙트의 코드를 사전에 분석하여, 각 거래가 어떤 데이터를 읽고 쓸 것인지를 미리 예측한다. 이 예측 정보("병렬 힌트")를 바탕으로, 충돌이 없는 거래들을 최적의 그룹으로 분류하여 동시에 실행한다.
사전 분석이 100% 정확할 수는 없으므로, 파로스는 낙관적 실행도 함께 사용한다. 일단 실행한 뒤, 실제로 충돌이 발생한 거래만 최소 비용으로 다시 실행하는 방식이다. 정적 분석으로 대부분의 충돌을 사전에 회피하고, 나머지만 사후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을 통해 재실행 비용을 최소화한다.
2.4.3 스토리지: 파로스 스토어(LETUS)
저장 구조에서 파로스의 핵심은 파로스 스토어다. 파로스 스토어의 저장 엔진, LETUS는 2024년 데이터베이스 분야 최상위 학회 ACM SIGMOD에 게재된 논문에 기반하며, 앤트 그룹의 AntChain에서 실제로 운영되어 저장 비용을 약 75% 줄인 이력이 있는 검증된 기술이다.
이더리움 등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데이터 무결성을 검증하기 위한 머클 트리(Merkle Tree)와, 실제 데이터를 보관하는 키-값 데이터베이스(LSM 트리 기반)를 2단 구조로 사용한다. 하나의 값을 읽으려면 머클 트리의 여러 층을 타고 내려가야 하고, 각 층에서 다시 데이터베이스의 디스크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이더리움에서는 단 하나의 값을 읽는 데 디스크 접근이 8~10회 필요하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이 비효율이 누적되어 성능이 떨어진다.
파로스 스토어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2단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고 단일 레이어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내부는 세 가지 컴포넌트로 구성된다.
DMM-Tree: 머클 트리를 저장 엔진 내부에 직접 내장하여, 데이터의 위치를 바로 가리키게 만들었다. 변경분만을 기록하는 델타 인코딩 방식을 결합하여 저장 소비를 추가로 절감, 디스크 접근 횟수를 8~10회에서 1~3회로 줄였다.
LSVPS: 데이터 변경분만 누적 기록하다가, 일정량이 쌓이면 전체 스냅샷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읽기 성능을 유지한다.
VDLS: 데이터를 추가만 하는(append-only) 로그 구조로 저장하여, 변조 방지와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한다.
여기에 버전 기반 주소 지정이라는 방식으로 기존의 해시 기반 주소를 대체한다. 블록체인 데이터는 블록 번호(버전)가 계속 증가하므로, 이 순서대로 저장하면 기존 방식에서 필요했던 데이터 정리(컴팩션) 작업이 불필요해진다. 파로스는 자체 벤치마크에서 기존 구조 대비 최대 15.8배의 처리량 향상과 80.3%의 저장 비용 절감을 보고하고 있다.
앞서 파로스가 속도와 규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금융 인프라가 갖춰야 할 조건은 이것만이 아니다. 기관마다 다른 규제와 프라이버시 요구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실행 환경, 그것이 세 번째 조건이다.
현실의 금융은 단일 환경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KYC/AML 규정이 다르다.
자산 종류에 따라 거래 규칙이 다르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프라이버시 수준이 다르다.
초고속 거래가 필요로 하는 "끝"은 마이크로초 단위의 순서 확정이다. 기관용 RWA 풀이 필요로 하는 "끝"은 KYC를 거친 참여자 간의 규제 준수 정산이다. 프라이버시 연산이 필요로 하는 "끝"은 입력 데이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결과가 정당함을 증명하는 상태다. 이 모든 종류의 "끝"을 하나의 실행 환경에서 최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기존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아발란체의 서브넷처럼 독립적인 체인을 생성하거나, 코스모스의 앱체인처럼 IBC 프로토콜로 연결된 독립 체인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보안을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후자는 체인 간 연결이 단순 메시지 전달 수준에 머물러 복잡한 거래의 원자적 처리(전부 성공하거나 전부 실패하는 것)를 보장하기 어렵다.
파로스의 SPN은 이 두 접근의 사이에서 독자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SPN은 파로스 메인넷과 긴밀하게 통합되면서도, 각각 독립적인 실행 엔진, 밸리데이터 셋, 거버넌스 규칙을 갖는 실행 환경이다. 각 SPN은 서로 다른 종류의 "끝"을 맺기 위해 최적화된 전용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구조는 앞서 설명한 L1-Extension 계층에서 구현된다.
SPN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파로스 네트워크의 세 종류 노드를 알 필요가 있다.
밸리데이터(검증자) 노드: 합의에 참여하여 블록을 생성·검증하는 핵심 노드. 수백 개 규모로 운영된다.
풀 노드: 전체 블록과 상태를 저장하되 합의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다른 노드에 빠른 데이터 동기화를 제공하고, 검증자에게 병렬 처리를 위한 분석 정보(SALI 힌트)를 전달한다.
릴레이어 노드: 최신 상태만 보관하는 경량 노드로, 낮은 하드웨어 사양으로도 참여할 수 있으며, SPN 간 메시지 전달을 담당한다.
SPN의 핵심 차별점은 "보안 공유" 방식이다. 파로스 메인넷의 검증자는 $PHRS를 스테이킹하여 메인넷을 보호하는데, 이때 생성되는 stPHRS를 SPN에도 리스테이킹 할 수 있다. SPN은 자체적으로 필요한 검증자 수, 하드웨어 요건 등을 설정하며, 조건이 충족되면 메인넷이 자동으로 SPN을 생성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파로스의 리스테이킹이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로스는 자체 리스테이킹 상호작용 프로토콜을 통해 바빌론(Babylon)이나 아이겐클라우드(EigenCloud)와 같은 외부 리스테이킹 프로토콜들과도 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stBTC, stETH 같은 외부 자산이 파로스 생태계 내에서 유통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파로스가 자체 경제적 보안만이 아니라 비트코인/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보안까지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 구조에서 SPN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메인넷의 경제적 보안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검증자가 부정행위를 하면 리스테이킹된 자산이 슬래싱되므로, 별도의 보안 체계를 처음부터 구축할 필요가 없다.
SPN 간 통신은 메일박스 기반의 메시징 프레임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출발 SPN에서 메시지를 기록할 때 검증자들의 합의 서명을 첨부하고, 도착 SPN이 이 서명을 검증한 후 메시지를 처리한다. 릴레이어 노드가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중계하므로, 신뢰가 필요 없는(trustless) 네트워크 간 통신이 가능하다. 이러한 통신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뿐만 아니라 원자적 실행, 데이터 공유, 그리고 서로 다른 VM 간의 상호 호출을 지원한다.
SPN의 유연성은 다양한 금융 워크로드에 대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인 형태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TEE(신뢰실행환경) SPN: 하드웨어 수준의 보안 모듈을 활용하여 거래의 기밀성을 보장하고, MEV(검증자가 거래 순서를 조작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방지한다.
ZK(영지식 증명) SPN: 실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이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만 증명하는 영지식 증명 기반의 규제 준수 검증을 처리한다.
FHE(완전 동형 암호) SPN: 데이터를 암호화된 상태 그대로 연산할 수 있도록 하는 동형 암호를 활용, 암호화된 잔액에 대해 이체 연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복호화 없이 확정하는 등의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기관 간 프라이버시가 극도로 중요한 금융 연산, 예컨대 다자간 포트폴리오 평가나 신용 점수 산출 등에서 FHE SPN은 ZK SPN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GPU SPN: AI 모델 추론이나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블록체인 환경에서 직접 실행한다.
이 밖에도 IoT 프라이빗 네트워크, 다자간 프라이버시 연산(MPC), 오라클이나 데이터 저장을 위한 경량 네트워크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SPN의 모듈 구조가 "내부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설계라면, 분산형 데이터 교환 프로토콜(Decentralized Data Exchange Protocol)은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담당하는 설계다. 파로스의 Data Layer에 위치한 이 프로토콜은 외부 데이터 센터와의 동기화 및 협업을 가능하게 한다.
금융에서 외부 데이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산 가격, 금리, 환율, 신용 평가, 기업 재무 정보 등 금융 거래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 대부분은 블록체인 외부에 존재한다. 기존의 오라클 네트워크가 이 간극을 채우고 있지만, 파로스는 프로토콜 레벨에서 외부 데이터 소스와의 구조화된 연동을 제공함으로써, AI 추론이나 FHE 연산 같은 고급 온체인 활용 사례를 보다 직접적으로 지원하려는 것이다.
SPN의 구조는 전통 금융의 구조와 닮아있다. 전통 금융은 수백 년에 걸쳐 거래소, 청산소, 수탁기관, 결제기관 등으로 기능이 분화되어 왔다. 각 기관은 서로 다른 규제를 받고, 서로 다른 기술을 쓰지만, 공통의 법적 프레임워크와 정산 인프라를 통해 하나의 금융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SPN은 이 구조를 블록체인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 SPN이 특화된 금융 기능을 담당하되, 메인넷의 보안과 결제 인프라를 공유하는 구조는, 전통 금융의 기관 분화를 프로그래머블하게 재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선 섹션들에서 파로스가 속도, 규모, 유연한 규제 대응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네 번째 조건인 흩어진 자산과 유동성의 연결은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빠르고 유연한 체인이라도, 그 위에서 유통될 자산이 없고, 발행·거래·정산을 잇는 참여자들이 각기 다른 표준 위에 분산되어 있다면, 금융의 "끝"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조건에 파로스는 생태계 구축으로 응답한다.
RealFi는 파로스가 처음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기존의 RWA 토큰화보다 훨씬 넓은 패러다임을 포괄하며 온체인 금융의 구조적 진화를 지향한다. RealFi는 단순히 자산을 온체인에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스템 안에서 실물 자산의 전체 생애주기를 다룬다. 발행과 검증에서부터 유통, 그리고 가치 창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것이다. 파로스는 자산이 온체인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해당 자산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검증되고, 규제를 준수하는 구조 위에 놓이며, 조합 가능한 금융 환경 안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러한 프레임워크 안에서 RealFi는 토큰화 자체를 넘어서며, 다음 세 가지 기반 역량 위에 구축된다.
검증되고 규제를 준수하는 자산 표현: 토큰화된 자산이 집행 가능한 법적 구조와 투명한 검증 메커니즘을 통해 실물 가치와 신뢰성 있게 연결되도록 보장한다.
조합 가능성과 자본 효율성: 자산이 프로토콜 간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담보로 활용되며, 통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수익률과 리스크 프라이싱을 갖춘 새로운 금융 상품의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글로벌 접근성과 유통: 실물 자산을 더 넓은 온체인 참여자 기반에 연결하여, 자본이 지역과 사용자 계층을 넘어 보다 효율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한다.
요컨대, RealFi는 단순히 실물 자산을 온체인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생산적이고 상호운용 가능한 금융 기본 요소(financial primitive)로 전환하여 통합된 온체인 시스템 안에서 유통되고, 지속 가능한 실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관 자본이 온체인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규제 준수다. 대부분의 블록체인에서는 KYC/AML을 각 앱이 개별적으로 처리한다. 이 방식은 앱마다 기준이 다르고, 일관성이 없으며, 관할권마다 상충하는 요구사항이 생기는 혼란을 초래한다.
파로스는 프로토콜 자체에 ZK-KYC/AML 모듈을 내장함으로써 다른 접근을 취한다. 영지식 증명(ZK) 기반의 KYC는 사용자의 실제 신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이 사용자가 규제 요건을 충족한다"는 사실만을 블록체인 위에서 검증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앞서 설명한 SPN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KYC 검증 자체를 영지식 증명 전용 SPN에서 처리할 수 있으므로, 메인넷의 개방적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기관이 요구하는 규제 준수를 충족할 수 있다. 개방성과 규제 준수라는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치를 SPN의 모듈 구조를 통해 동시에 추구하려는 것이 파로스의 설계 철학이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파로스가 취한 가장 주목할 만한 전략적 행보는 RealFi 얼라이언스(Alliance)의 결성이다. 2026년 2월, 파로스는 체인링크, 레이어제로, 센트리퓨즈, 아세토 파이낸스(Asseto Finance), 엠버(Ember), 파루(Faroo), R25, Re7 Labs, 탑노드(TopNod) 등과 함께 RealFi 얼라이언스를 공식 출범했다.
RealFi 얼라이언스는 네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자산 활성화(Asset Enablement): 실물 자산을 안전하고 조합 가능한 형태로 온체인에 가져옴
인프라 및 컴플라이언스 정렬(Infrastructure & Compliance Alignment): 파로스의 병렬 실행 및 내장 컴플라이언스 모듈을 활용하여 기관급 보안 기준을 충족시킴
유동성 및 유틸리티 설계(Liquidity & Utility Design): 토큰화된 자산이 다양한 사용 사례에서 활용되고 시장 가치에 근접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함
시장 투명성(Market Transparency): 참여자들이 리스크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함
2026년 3월에는 인텔리전스 파트너 코호트가 추가되었는데, 듄(Dune), 포필러스(Four Pillars), 웹3캐프 리서치(Web3Caff Research), 앵커리지 디지털(Anchorage Digital), 알케미(Alchemy) 등 리서치와 데이터, 기관 인프라 분야의 참여자들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표준화된 RealFi 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공동 개발하여, RWA의 성과, 리스크, 컴플라이언스를 측정하는 온체인 데이터 표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RealFi의 구체적인 실현 사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GCL New Energy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홍콩 증권거래소 상장사인 GCL New Energy는 2026년 3월, 약 10억 달러 밸류에이션으로 파로스에 대한 투자를 확정했다. 이 거래는 홍콩 증권거래소의 규제 공시 절차를 거쳐 완료되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크립토 업계 내부의 자금 조달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파트너십의 구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려면 GCL의 사업 전략을 알 필요가 있다. GCL New Energy는 중국의 스마트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태양광 발전소 운영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AI 컴퓨팅과 에너지 인프라를 결합하는 "전력-연산 통합(Power-Compute Integration)"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생산자가 직접 컴퓨팅 인프라를 운영하는 수직 통합 모델이다.
파로스와의 협력 영역은 세 가지다. 에너지 수익권 토큰화(발전소의 미래 수익을 토큰화하여 자금 조달에 활용), 분산형 에너지 거래(개인 간 에너지 거래를 블록체인에서 정산), 탄소 발자국 추적(재생에너지 인증서의 투명한 발행·유통)이다. 특히 에너지 자산의 토큰화는 파로스가 강조하는 "복잡한 자산의 온체인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SPN의 모듈 구조가 에너지 거래의 특수한 규제 요건을 수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십은 센트리퓨즈와의 협력이다. 센트리퓨즈는 2017년부터 기관급 실물 자산의 온체인 토큰화를 진행해 온 프로토콜로, MakerDAO의 RWA 볼트에 실물 자산 담보를 공급한 최초의 프로토콜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수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토큰화한 트랙 레코드를 보유하고 있다.
양사의 협력은 토큰화된 미국 국채(JTRSY)와 AAA급 신용 상품 등의 실물 자산을 파로스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파로스가 자산의 발행뿐 아니라 유통과 정산에 이르는 금융 가치사슬 전체를 자체 인프라 위에서 구현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블록체인 산업에서 "X를 위한 체인"이라는 포지셔닝은 빈번하게 등장해왔다. 게임을 위한 체인, AI를 위한 체인, 소셜을 위한 체인. 대부분은 범용 체인의 기능 위에 특정 도메인의 도구를 올린 것에 가까웠다. 파로스의 "금융 특화 L1"이라는 주장이 이전의 시도들과 다를 수 있는 지점은, 합의부터 스토리지까지 체인의 모든 레이어를 금융의 요구사항에서 역산하여 설계했다는 점, 그 핵심 기술들이 학계 최상위 학회에서 검증된 연구에 기반한다는 점, 그리고 컴플라이언스를 프로토콜 레벨에 내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메인넷 출시 이후에야 검증될 수 있다. 테스트넷 성능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금융 거래가 몰리는 환경에서의 성능은 별개의 문제다. 금융 인프라에서 중요한 것은 최대 성능이 아니라 일관된 성능, 즉 트래픽이 급증해도 정산 지연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며, 이를 실전에서 입증하는 것이 파로스에게 남은 과제다.
SPN 모델은 파로스 아키텍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전통 금융의 기관 분화, 즉 거래 실행, 청산, 수탁, 결제를 서로 다른 기관이 담당하되 공통 인프라로 연결하는 구조를 블록체인으로 재현한 것이라면, 그 가치는 단순한 확장성 솔루션을 넘어선다.
다만 이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충분한 수의 검증자가 SPN에 리스테이킹해야 하고, 각 SPN의 경제적 인센티브가 지속 가능해야 하며, SPN 간 메시지 전달 속도가 금융 사용 사례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특히 검증자의 리스테이킹 참여율은 $PHRS의 초기 유통량과 보상 구조에 직접 의존하며, 이또한 메인넷 출시 이후에야 실질적 검증이 가능하다.
글의 도입부로 돌아가보자. 금융이란, 곧 약속된 조건 하에 약속된 자산의 이전이 확인되는 상태의 확정을 의미한다. Finance의 어원이 'finis', 즉 끝인 것은 이 때문이다.
파로스는 그 확정성의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식별하고, 그 조건들에서 역산하여 체인을 설계했다. 서브초 파이널리티 기반 합의, 수십억 계정 규모의 확장성을 가진 스토리지는 학계에서 검증받은 바 있으며, DTVM의 결정론적 실행으로 컴파일러 수준의 성능을 확보하고, SPN의 모듈러 구조로 서로 다른 금융 워크로드가 요구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확정성을 각각의 최적화된 환경에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인프라의 정교함은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이 아니다. 파로스가 궁극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체인의 TPS가 얼마인지, 파이널리티가 몇 초인지가 아니라, 이 인프라 위에서 실제 금융 거래가 완결되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파로스가 선택한 것은 퍼미션리스 개방성과 기관급 컴플라이언스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가장 야심적이면서도 가장 증명하기 어려운 길이다.
RealFi는 기술이 아닌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파로스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